[이현미의 엄마도 처음이야] <23> 여자만 부엌에..제사문화 이대로 괜찮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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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에 대한 느낌은 결혼 전후 완전히 달라졌다. 결혼 전에는 명절 연휴에 틈틈이 책을 읽고 친구를 만났다. 1년에 한번 간소하게 제사상을 차렸던 부모님 덕분이었다. 그런데 시댁은 남성들로 구성된 일가 친척이 여러 집을 오가며 제사 지내는 전통적인 집안이었다.
신랑을 비롯한 집안 남자들은 부엌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며느리는 시집온 출가외인이자 제삿일 거들어야 하는 일손이었다. 오랜 만에 고향을 찾은 남편은 결혼 전 나의 모습처럼 휴식을 취하거나 친구를 만났다. 그에게 명절은 일상의 고단함을 잠시 내려놓는 시간이었고, 내게는 스트레스가 가중되는 시간이 됐다. 맞벌이 부부로 함께 일하는데 왜 내게만 또 다른 노동을 해야 하는 의무가 주어진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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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에 앞치마를 차려입은 한 여성이 명절 음식상을 나르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시어머니가 제삿상을 차리시는 건 맞다. 재료 준비와 요리에 있어 나의 역할은 미미하다. 시어머니는 집에 광이 반짝반짝 날 정도로 청소에 보람을 느끼고 남편과 아들을 ‘섬기며’ 자기 만족을 찾는 분이었다. 집안일을 억지로 했던 친정 엄마와 달리 매일 반복되는, 별로 티나지 않는 일에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을 수 있는 분이었다. “청소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아침에 애들 도시락 쌀 때가 가장 좋았다”고 했다. 직장 생활이든, 집안일이든 자신의 일에서 가치를 발견하고 만족하는 사람에게선 삶의 의욕을 배울 수 있어 좋다.
문제는 이런 성정 탓에 집안일이 서툰 며느리의 참여를 달가워하지 않은 점이었다. 집안 사람들이 모두 보는 음식이라면 정갈하고 깔끔하고 맛있어 보여야 했다. 하지만 내가 남편처럼 마음대로 쉴 수는 없었다. 나는 명절에 ‘시어머니 껌딱지’가 돼야 했다. 별로 하는 일 없이 몇 시간 동안 시어머니가 계신 부엌에 서 있었다.
이런 장면을 보고 남편은 “너는 별로 하는 일 없지 않냐?”고 했던 것이다. 입술을 손가락으로 꽉 꼬집어 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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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상에 만든 이의 노고가 담긴 음식들이 차려져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나는 여자들만 중노동 하는 제사 문화를 이어가지 않겠다. 당신도 참여해라.” 얼마 전 남편에게 선언했다. 남편은 부모님 슬하에서 설거지 한 번 해본 적 없었다. 어머님이 남편에게 집안일을 가르치지 않은 건 개인이 아닌 시대 배경을 놓고 보면 이해할 수 있다. 유교 문화를 삶의 중심으로 받아들였던 시할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장남에게 함부로 일 시킬 수 없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어머님 본인이 가부장제의 역할 구분을 잘 내면화하신 분이었다.
그러나 내게는 이러한 풍경이 보존해야 할 전통 문화가 아니라 바꿔야 할 인습으로 보인다. 동굴 생활을 했던 선사시대는 종족 보존을 위해서라도 신체적으로 우월한 남성이 바깥 일을 하고 여성은 집안일을 하는 게 현명했다. 당시는 동굴 밖을 함부로 돌아다니는 여성을 돌로 쳐서 죽였다고 한다.
그러나 기술이 발달하고 사회가 진화하면서 이제는 남녀의 신체적 차이가 사회 진출에 미치는 영향이 작아졌다. 남자와의 관계, 가족 관계에서 존재 의미를 찾았던 예전 여성과 달리, 자기 자신의 성취를 통해 주체성을 확보하려는 여성이 늘었다. 결혼은 남자의 품에 들어가는 예속이 아니라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나아가려는 공동 생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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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형마트에서 준비한 ‘명절 스트레스 격파 이벤트’에 참가한 여성 주부들이 권투 장갑을 끼고 기왓장을 깨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19개월 아들이 좀 더 자라면 아이에게도 살림을 가르칠 것이다. 아들에게 집안일을 가르치는 건 인성 교육, 생활 교육의 일환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젊은 세대가 한국 사회의 가장 윗세대가 됐을 때는 명절 풍경이 바뀌어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이현미 기자 engin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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