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드랑이털 내놓은 공효진을 처벌해주세요

2013. 3. 15.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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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신상호 기자]

▲ 러브픽션

의 한 장면

ⓒ 삼거리픽쳐스

영화 < 러브 픽션 > 의 한 장면. 구월(하정우)과 희진(공효진)은 구월의 집에서 '러브러브'를 하기 위해, 옷을 벗는다. 희진의 옷을 벗기던 구월이 멈칫한다. 희진의 겨드랑이에 있는 무성한 털을 본 것이다. 멈칫하는 이유를 묻는 희진에게 구월은 "아니, 이런 건 익숙하지 않아서"라며 말을 흐린다. 그는 여성의 '겨털'에 대한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여자의 겨드랑이 털은 알래스카에서라면 몰라도,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것이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우리 사회는 여성의 겨털을 인정하지 않았다. 예전 공중파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소개팅에 나온 여성이 무성한 겨털을 보이자, 소개팅남은 주선자에게 당혹감과 불쾌감을 숨기지 않았다.

"남성의 불쾌감을 유발하는 겨털! 용서하지 않겠다."

한국은 속이 좁은 나라다.

최근 개정된 경범죄 처벌법 시행령 개정안을 두고 이런 쓸데없는 상상을 해봤다.

겨드랑이 털을 풍성하게 기른 여성이 끈 민소매 티를 입고, 명동 한복판에서 두 팔을 올리면서 다닌다. 그녀의 겨드랑이 털은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의 눈을 찌푸리게 했다.

"아, 기분 나쁘네"라면서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표하는 사람도 있다. 그녀가 겨드랑이털에 대해서 일반적인 시각(여성의 겨털은 불쾌하다)을 가진 경찰관과 조우하게 된다.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 우선 이번에 개정된 경범죄 처벌법 시행령 개정안 제3조 제1항 제33호를 보자. "

여러 사람의 눈에 뜨이는 곳에서 공공연하게 알몸을 지나치게 내놓거나 가려야 할 곳을 내놓아 다른 사람에게 부끄러운 느낌이나 불쾌감을 준 사람"은 범칙금 5만원을 부과한다고 되어 있다.

그녀는 여러 사람의 눈에 뜨이는 곳(명동)에서 가려야 할 곳(겨드랑이 털)을 내어 놓아 다른 사람(행인 및 단속 경찰관)에게 부끄러운 느낌이나 불쾌감을 주었다. 범칙금 부과에 필요한 구성 요건을 충족시켰다.

경찰청은 "과다노출로 처벌되는 범위는 사회통념상 일반인들이 수치심을 느끼는 수준으로 알몸의 중요부위를 노출하는 것을 말합니다. 요즘 여성들이 착용하는 미니스커트나 배꼽티는 처벌대상도 아니고 그와 같은 행위를 처벌하려는 것이 아니므로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일단 미니스커트와 배꼽티는 열외다. 그래도 모호하다. 사회 통념상 일반인들이 수치심을 느끼는 수준'은 무엇이며, '알몸의 중요부위'는 가슴인지, 팔인지, 겨털인지 명확하지 않다.

경찰서에 전화해서 "여자의 겨드랑이 털은 타인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드러내놓고 다녀도 되나요?", "엉덩이 노출 의상을 입고 싶은데, 어디까지 허용이 되나요?", "쫄쫄이 내복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고 싶은데, 중요 부위가 두드러지게 나오는 거 괜찮나요?"라고 물어보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고, 심지어 노출 의상을 입고 경찰서에 가서 검사를 받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 경찰청

경찰청은 이곳에 있다.

ⓒ 경찰청 홈페이지

잠깐 헌법재판소의 판시문을 보자.

헌법재판소는 "범죄의 구성요건이 추상적 또는 모호한 개념으로 이뤄지거나, 그 적용범위가 너무 광범위하고 포괄적이어서 불명확하게 되어 있어 통상의 판단 능력을 가진 국민이 법률에 의해 금지된 행위가 무엇인가를 알 수 없는 경우에는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에 위배(헌법재판소 1997.9.25. 96헌가 16 전원재판부)"된다고 했다.

한마디로 금지 행위에 대해 모호하게 정의하지 말라는 것이다. 하지만 과다노출 조항은 모호하다. 지적하고 싶은 것은 잉여적 상상력이 가능하게 하는 것이 '법'이라는 점이다.

경찰에게 직접 물어봐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해당 행위(과다노출)에 대한 처벌 권한이 판사가 아닌 경찰관에게 있기 때문이다.

기존 법안에 따르면 해당 행위는 판사에 의해 즉결 심판을 받는다. 그런데 이번 개정안이 시행되면, 해당 행위는 즉결 심판 대신 경찰관이 직접 범칙금을 부과하게 된다. 즉, 경찰관이 딱지를 끊는다는 것이다. 과다노출에 대한 처벌 권한이 경찰관의 판단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경찰의 의견은 막강하다.

그래서 (몇 가지 전제가 필요하지만) 개정안만 놓고 본다면, 명동 겨털녀에 대한 처벌은 '가능'할 수 있다. 법령에서 겨드랑이 털 노출을 처벌하지 말라는 조항이 없고, 겨털을 보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불쾌감을 느꼈고, 단속 경찰관도 그 상황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물론 경찰이 과다 노출에 대한 내부 지침으로 몇몇의 특정 행위만 단속하라는 지침을 내린 상황이거나(한 경찰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중요부위"란 '성기'라고 말한 바도 있다) 겨털을 내놓는 행위에 대해서 열린 사고를 갖고 있는 경찰관을 만난다면, 처벌을 받지 않을 수 있다.

글을 쓰면서 또 하나의 상상을 해봤는데, '목욕탕에서 불이 나서, 안에 있던 손님들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거리로 나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준 경우' '수영을 하다가 급류에 수영복이 떠내려가 찾지 못하는 경우'는 어떻게 될까?

상상이 지나쳤지만, 과다노출에 대한 법안은 이른바 '바바리맨'에게 한정될 것 같다. 그렇다면, 과다 노출에 대한 규정은 '알몸에 바바리만 걸치고 다니다, 여성 혹은 대다수의 사람들 앞에서 의도적으로 알몸을 노출시키는 행위'로 규정하는 것이 다소간의 혼란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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