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노무현과 영원한 동행은 역사 바로잡기"

2009. 12. 10.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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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노 전 대통령 유족 후원 온라인동호회 '노영동'… 월평균 1500만원 전달

지난 5월 벼락 같은 충격을 던져주며 서거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족들에게 매달 후원금을 보내는 온라인 카페가 있다. 이름은 '노영동'(cafe.daum.net/ to5000). '노무현과 영원한 동행'이란 뜻이다. 정치인 팬클럽은 많지만 특정 정치인의 유족을 후원하는 모임은 유례가 없다. 노영동은 그러나 처음부터 유족을 후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카페가 아니다. 사정은 이렇다.

검찰이 노 전 대통령을 소환 조사한 뒤 수사에 더욱 속도를 내던 무렵인 5월 8일 오후. 포털 사이트 다음 아고라 '경방'(경제토론방)에 다음과 같은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긴급제안 노무현을 후원하실 분 계십니까.'

카르키시아노프라는 필명으로 이 글을 올린 사람은 서울의 한 대학에서 연구교수로 일하는 박진호씨(43). 박씨는 "노무현의 위신과 품위는 우리가 세워준다. 5000명이 매달 1만원씩 5000만원을 모아 노무현에게 보내는 운동을 전개하자"면서 "200명이 모이면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하겠다. 뜻을 함께하는 이들은 메일로 동참 의사를 밝혀 달라"고 제안했다. 박씨는 'Weekly 경향' 과의 인터뷰에서 "돈이 없고 '빽'이 없으면 전직 대통령조차도 이렇게 휘둘릴 수 있다는 생각에 참담한 심정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여태껏 고인을 지지해 온 사람으로서 자존심이 걸린 문제이기도 했다. 경제적인 짐을 벗고 맘껏 활동할 수 있도록 돈을 보내드리자는 취지로 글을 올렸다"고 설명했다.

같은 날 밤 11시쯤 직장인 김영숙씨(여·50)는 선뜻 동참하겠다는 내용으로 회신했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이의 제안이었지만 김씨가 결정을 내리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이 검찰 수사에 시달리는 걸 보면서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에 글을 봤다. 진정성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5월 10일 동참 의사를 메일로 보낸 이상현씨(여·31)도 "검찰 수사를 지켜보면서 별 도리 없이 답답하기만 했는데 먼저 깃발을 드는 사람이 나타나서 반가웠다"고 반응했다. 5월 중순까지 김씨와 이씨 같은 시민 697명이 박씨에게 메일을 보내왔다.

올 5월 개설 5000여 회원 1억 모금

본격적인 모금 채비를 서두르던 무렵에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5월 23일 노 전 대통령이 갑자기 서거한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을 금전적으로 후원하겠다는 애초의 계획을 실현하는 일은 불가능해졌다. 5월 말 박씨는 697명에게 '우리의 시도는 무산됐다. 원래 계획은 접고 조의금을 보내드리는 것으로 정리하려 한다'는 내용의 메일을 보내고 의견을 모았다. 온라인상에서 모인 다수의 집합지성은 새로운 출구를 찾았다. 노 전 대통령은 고인이 됐지만 유족을 후원하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은 것이다. 메일을 통한 의견 교환보다 효율적인 방식의 쌍방향 소통 수단이 필요했다. 6월 2일 포털 사이트 다음에 '노영동' 카페를 개설하고 6월 25일부터 후원금 모금을 시작했다.

카페 개설 당시 회원수는 350명. 카페 운영자는 박씨가 맡았다. 12월 3일 현재 카페 회원은 5122명. 이 가운데 매달 후원금을 내는 후원 회원은 1141명이다. 7월에 비해 4배쯤 불어났다. 11월 29일 현재 누적 모금액은 8930만6389원이며, 8771만2500원이 유족에게 전달됐다. 매달 평균 1500여 만원이 모금됐으니 올해 안에 누적 모금액이 1억원을 넘어설 것이라고 박씨는 전망했다. 10월까지는 박씨 개인 통장으로 모금한 뒤 봉하마을을 직접 방문해 전달하는 방식을 취했지만 11월부터는 권양숙 여사가 재단 이사장으로 있는 재단법인 '아름다운 봉하' 명의 통장으로 후원 계좌를 통일했다. 후원금 전달의 투명성과 직접성을 강화한 것이다.

노영동은 '노무현과 영원한 동행'이라는 이름 그대로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애정과 그리움을 간직한 사람들이 모인 공간이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팬클럽 성격이 강하다는 점에서 자연스레 노사모를 떠올릴 법하다. 그러나 노사모가 경선과 대선, 탄핵 등 중요한 정치적 변곡점에서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적극적인 행동으로 표명한 이들이 주류를 이루는 반면에 노영동은 행동으로 표출하는 데 인색했거나 수줍어했던 이들이 상당수를 차지한다. 그래서 이들은 스스로 '비활동성 노빠'라고 부른다. 이 말에는 노 전 대통령이 시민들의 지지를 꼭 필요로 했을 때 그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회한의 감정이 스며 있다. '메모리'라는 필명의 이 카페 한 회원은 6월 30일 카페 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행동하지 않는 비활동성 노빠였기 때문에 많은 후회를 안고 평생을 살아야 한다"고 토했다. 그는 "대통령 선거 때 그 많은 사람이 동참한 희망돼지 저금통을 준 적도 없고, 선거유세장에도 취임식장에도 귀향길에도 봉하마을에도 가본 적이 없습니다. 언제든 봉하마을에 가서 (노 전 대통령을) 뵐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그 기회가 연기가 되어 날아가 버렸습니다"면서 "이제라도 활동을 시작해 보세요. 후회하지 않을 여생을 위하여"라고 썼다.

나서야 할 때 나서지 못한 아쉬움으로 연대한 모임이지만 노영동의 '활동'은 철저하게 '후원'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노사모는 물론 다른 친노 정치인들의 팬클럽과도 카페 차원에서는 연대하거나 공조할 생각이 없다. 카페 차원의 조직적인 정치적 활동은 하지 않는다는 게 노영동의 원칙이다. 게시판에서의 정치 논쟁도 엄격하게 제한한다. 특정 정치인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는 허용하지만 감정적으로 깎아내리는 글은 배제한다. 공식적으로는 '리더 없는 모임'을 지향하지만 이 부분에서만은 운영자가 강력하게 개입한다. 박씨는 "유족을 후원하는 일 이외에 다른 활동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좋은 취지로 시작한 모임이 섣불리 활동 범위를 넓히다가 초심을 잃고 변질되는 경우를 많이 봐온 탓이다.

"정치활동 철저 배제 시대양심 지켜"

이들이 이처럼 유족 후원에 중요한 의미를 두는 이유는 무엇일까. 회원 이상현씨는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는 것"이라고 말했다. 권력을 쥔 이들이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과정에서 시민들을 위해 희생한 사람들이 오히려 곤궁한 처지에 빠지는 우리 근현대사의 과오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지난 7월 14일 이 카페의 한 회원은 "우리는 노 대통령만큼 하면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그 품위를 유지해 줄 수 있다는 시대정신을 만들고자 하는 데 뜻을 함께하는 것"이라고 글을 올렸다. 이들이 소망하는 것은 양심적인 정치인들에게 "당신도 노무현처럼 하면 우리가 지켜주겠다"는 메시지를 던짐으로써 한국 정치가 '제2, 제3의 노무현'을 갖게 되는 일이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적인 힘입니다.' 노 전 대통령 묘비에 새겨진 문장이다. 카페 운영자 박씨는 "모든 사람이 정치를 할 수는 없다. 지금은 깨어 있는 시민들이 함께 모여 있는 것만으로도 소중한 의미가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표명했다.

<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 경향신문 & 경향닷컴(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경향닷컴은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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