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쇠고기 협상 주무부서는 외교부였다"

입력 2008. 6. 5. 11:42 수정 2008. 6. 5.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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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메이커, 외교통상부 인수위 업무보고서 단독입수외교부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거짓말로 드러나

지난 5월 7일 쇠고기 청문회와 5월 13일 한·미 FTA청문회에서 외교통상부 고위 관리의 답변은 한결 같았다. 쇠고기 협상의 주무부서는 농림수산식품부라는 것이다. 외교통상부에서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5월 13일 청문회에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사실 쇠고기 문제에 대한 것은 주무부서가 농림수산식품부"라고 답변했다. 유 장관은 "제가 여기 오늘 보고 때문에 나왔는데 그 기회에 질의를 하시기 때문에 저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충실하게 제가 아는 선에서 답변을 드리는 것이지 제가 쇠고기 문제의 협상 주무부서의 장은 아닙니다"라고 덧붙였다.

농림수산식품부가 '협상의 잘못을 모두 뒤집어쓴 상황'에서 외교부가 주도적 역할을 했을 것이란 심증은 있지만, 물증은 나오지 않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5월 3일 지지자들과의 비공개 자리에서 "현 정부의 쇠고기 협상은 결국 주무부처인 농식품부가 아닌 외교 안보 부처가 주도한 것으로 보인다"고 발언했다.

하지만 뉴스메이커가 독점 입수한 외교통상부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보고자료에 따르면 외교통상부가 한·미 FTA 비준과 쇠고기 문제에 주도적으로 개입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외교통상부는 1월 4일 인수위 보고자료 10쪽에서 '가. 한·미 FTA 비준/ 쇠고기 문제'라는 항목으로 '향후 조치 계획'을 보고했다. 여기에서 '쇠고기 문제는 한·미 FTA가 아니더라도 국제 기준에 따라 반드시 해결하여야 할 문제'라고 전제한 뒤 '미측의 한·미 FTA 비준을 촉진하기 위해 쇠고기 문제를 조기에 해결하되, 이를 한·미 FTA 이행 법안의 미 의회 제출과 연계되도록 추진'이라고 보고했다.

"한·미FTA 아니라도 해결해야"

주무부서임을 강력하게 부정해온 외교통상부가 실제로는 주무부서가 아니고서는 사용할 수 없는 '향후 조치 계획'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향후 조치 계획'에 앞서 '추진 경과'를 자세하게 설명한 것을 보면 농수산식품부의 협상을 도와주는 유관 부서가 아니라, 주무부서라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한·EU FTA협상, PKO 및 ODA 확대와 같은 외교부의 주요 업무보고에서도 '추진 배경'과 '향후 조치 계획'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와 같은 보고 양식을 보면 외교부가 쇠고기 협상을 외교부의 주요 현안으로 보았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 보고서에서는 '농림부'라는 단어는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다. 인수위 백서의 브리핑 자료(상자 기사 참조)에서도 쇠고기 협상 내용은 농림부 업무보고가 아니라, 외교통상부 업무보고에서 언급된다.

인수위 보고자료 내용을 검토한 강기갑 의원(민주노동당)은 "외교통상부가 인수위 보고서에 쇠고기 협상을 언급한 것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자료는 당면 현안사항 중 북핵문제와 한·미 동맹에 이어 '미국·EU와의 FTA체결'이라는 항목에서 나왔다. 강 의원은 "쇠고기 협상은 위생검역에 관한 문제이므로 국민 건강을 우선적으로 생각해야지 통상 문제가 아니다"며 "검역 사항을 외교통상부가 정치적으로 접근하고 함부로 거론하는 것은 외교부의 월권"이라고 강조했다.

강기갑 의원 "외교부의 월권이다"

쇠고기 협상 발표 이후 외교통상부가 '한·미 FTA와 쇠고기 문제는 별개'라는 변명을 늘어놓았던 것조차 거짓말이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미측의 한·미 FTA 비준을 촉진하기 위해 쇠고기 문제를 조기에 해결하되'라는 문구에서 쇠고기 협상이 한·미 FTA 비준과 별개가 아니라는 사실이 잘 나타나 있다. 강 의원은 "미국이 FTA와 쇠고기 문제를 연계하는데 우리나라 정부가 연계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말했다.

이해영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는 보고자료에서 '이를 한·미 FTA 이행 법안의 미 의회 제출과 연계되도록 추진'이라는 구절에 주목했다. 이 교수는 "농림부가 사료 조치 강화와 쇠고기 협상을 연계하자고 주장했던 반면, 외교부에서 부시 행정부가 미 의회에 이행 법안을 내는 것과 연계하자는 전략을 가졌다는 점에서 뭔가 밀약이 있는 듯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지금 정부가 쇠고기 고시를 강행하는 이면에 쇠고기 협상 타결과 부시 행정부의 이행 법안 제출이 연계돼 있다는 의혹이 이 보고자료를 통해 어느 정도 드러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외교통상부의 인수위 보고 자료와 농림수산식품부의 인수위 보고 자료를 비교해보면, 외교부와 농림부의 입장이 어떤 점에서 공통점이 있고, 어떤 점에서 다른 점이 있는지 알 수 있다. 농림수산식품부의 인수위 보고 내용은 5월 22일 경향신문이 단독 입수한 자료와 5월 7일 쇠고기 청문회에서 정부 측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서 잘 나타나 있다.

농림부는 인수위 보고 자료에서 '미국은 '07.5월 국제수역사무국(OIE)으로부터 '광우병 위험통제국' 지위를 인정받아 연령·부위에 관계없이 쇠고기 수입을 전면 허용해줄 것을 요구'라고 적어놓았다. 외교부의 인수위 보고자료에는 '쇠고기 문제 관련, 미국은 국제수역기구(OIE) 기준에 따라 특정위험물질 제거 시 모든 연령·부위 수입 허용 희망'이라고 적혀 있다.

쇠고기 협상과 한·미 FTA 관련성에서는 두 부처의 표현이 다르다. 농림부는 '미측은 사료금지 조치 이행 시까지 1년 이상 소요되어 한·미 FTA 비준을 위한 미 의회 설득이 어려우므로, 동 조치 공표 시점( '08. 2월께)에 OIE 기준 완전 수용을 요구'라고 적어놓았다. 외교부는 '미국의 경우, 쇠고기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한·미 FTA 이행법안 제출이 불가능'이라는 내용과 함께 '미국의 경우, 이행 법안을 08.3~4월까지 의회에 제출하지 않으면 대선 정국으로 비준 문제 장기간 표류 가능성'이라고 보고했다.

'국민건강'전제조건은 언급 없어

농림부가 사료 금지 조치와 FTA 비준의 시기를 연관시켜 언급했다면, 외교부는 단지 쇠고기 문제와 FTA 비준의 관계를 보고했다. 농림부의 인수위 보고서에서는 향후 추진계획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위생 조건 개정은 한·미 FTA와 연계시키지 않고 국민의 식품 안전 확보 차원에서 검토'라고 나타나 있다. 여기에 괄호 표시를 한 후 '그동안의 일관된 한국 측 입장'이라 명시해 놓았다. 농림부의 보고서가 쇠고기 협상이 FTA 비준뿐 아니라 국민건강과 연계돼 있다는 주장을 펼치는 것과 달리, 외교부 보고서에서는 국민 건강이라는 선결 조건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강 의원은 외교부의 인수위 보고자료에서 '국제 기준에 따라 반드시 해결하여야 할 문제'라는 내용을 문제삼았다. 강 의원은 "외교통상부가 국제 기준을 언급한 것은 비전문가적 발언"이라고 지적했다. 외교통상부가 국제수역사무국의 국제 기준에 대해서 전문성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강 의원은 또 "다른 나라도 따르지 않는 국제 기준보다 더 미국에 유리하게 협상해놓고 국제기준을 이야기하는 자체가 문제"라고 덧붙였다.

쇠고기 협상은 결국 국민 건강에 대한 고려 없이 대부분 미국 측의 요구 사항 그대로 이뤄졌다. 어느 부처의 주장이 협상과정에서 받아들여졌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한·미 FTA 청문회 위원이었던 김종률 의원(통합민주당)은 "이 문건이 아니더라도, 외교부가 실질적으로 협상을 주도했다는 사실이 드러나지 않았을 뿐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해영 교수는 "농림부는 사료 조치 이행을 쇠고기 협상의 선결 조건으로 내걸었고, 외교부는 이행 법안 제출과 고리를 걸었다"며 "협상 결과로 본다면 두 부처가 갖고 있던 두 장의 카드가 모두 날라가버린 꼴"이라고 해석했다. 사료 조치 이행은 공표에 만족해야 했고, 미국의 이행 법안 제출은 아직 이뤄지지 않은 점을 지적한 것이다. 강기갑 의원은 "외교부가 이 문건을 보고했을 때의 입장보다 더 나아가 협상장에서 협상을 주도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인수위 백서에 나타난 쇠고기 협상 실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발간한 백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과연 쇠고기 협상을 주도한 부처가 어디인지 드러난다. 인수위 백서 1권의 388~391쪽을 보면 농림부와 외교통상부의 업무보고에 대한 브리핑 자료가 있다.

농림부 업무보고(1월 4일)에는 '쇠고기 협상'이란 단어가 한 번도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외교통상부 업무보고(1월 4일)에는 "FTA 문제와 관련해서는 인수위 측이 현 정부 내 비준을 위해서 구체적인 대책 마련을 요구했습니다"라고 언급한 뒤 "특히 큰 걸림돌이 되고 있는 쇠고기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다음주 중 구체적 대안을 보고하도록 했습니다"라고 나타나 있다.

이어 북한 인권 문제를 거론하고 있다. 이 역시 외교부에 해당하는 사안이다. 이런 내용만 보더라도 인수위에서 쇠고기 협상 문제는 농림부 소관이 아니라 외교부 소관으로 이해됐고 논의가 진행됐다는 점을 쉽게 알 수 있다.

인수위 백서의 다른 부분에서도 기존의 정부 해명과 배치되는 내용이 공식적으로 언급돼 있다. 백서 1권의 272쪽을 보면, 1월 12일 간사단회의 결과가 요약돼 있다. 이 내용은 다음과 같다.

(6) 미 쇠고기 수입 문제○당선인의 방미, 한·미 FTA 비준 문제 등이 있기 때문에 쇠고기 수입 문제는 인수위 차원에서 입장 정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았음. 이에 따라 2~3일 내로 FTA특위 간사 윤건영 의원, 외통위 진영 의원, 농해수위 권오을 위원장, 최경환·홍문표 위원이 만나서 협의하기로 결정했음.

정부는 지금까지 국회 청문회 또는 해명에서 미 쇠고기 문제는 한·미 FTA와 별개 문제이며, 더군다나 이명박 대통령의 방미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점을 거듭 주장해왔다. 하지만 공식적인 인수위 백서에서조차 미국의 쇠고기 수입 문제가 이 대통령의 방미와 한·미 FTA 비준 문제와 매우 깊은 관련이 있다는 점을 스스로 털어놓은 셈이다.

<윤호우 기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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