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한국의 끔찍한 미래다?

2008. 4. 4.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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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미국 보험제도를 파헤친 마이클 무어 감독의 영화 <식코>, 시민사회단체가 관람 운동 나서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t@hani.co.kr

마침내 <식코>(Sicko)가 한국에 온다. 단순히 필름만 오지는 않는다. 보기 힘들게 '<식코> 보기 운동'과 함께 온다. 보건의료단체연합, 참여연대 등 무려 100개가 넘는 시민단체·노동조합·보건의료단체가 4월3일 <식코>의 개봉에 때 맞춰 '함께 봐요 <식코>' 캠페인에 나섰다.

<식코>는 미국 보험제도를 파헤친 마이클 무어 감독의 영화다. 무어는 자동차산업 정리해고를 고발한 <로저와 나>, 콜럼바인 고등학교 집단살해 참극을 통해 미국의 총기 문제를 파헤친 <볼링 포 콜럼바인> 등으로 유명하다. 이렇게 무어의 다큐멘터리는 지구촌 강성대국 미국의 이면을 파헤쳐 사실을 '갈켜주마'와 진실을 '까발리마'로 가득 찬 영화였다. 아메리칸드림의 이면에 감춰진 '아메리칸 나이트메어'(미국의 악몽)를 들추는 무어가 전하는 미국 보험제도의 진실은 도대체 무엇이기에 이렇게 한국의 사회단체들이 나서서 영화보기 운동까지 벌일까.

상처를 스스로 꿰매는 장면으로 시작

미국은 한국의 미래다. 적어도 의료제도에 관해선 그럴지 모른다. 민영보험 활성화, 영리병원 허용,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완화처럼 이명박 정부가 제시하는 의료제도 '개혁'이 진행되면 미국은 한국의 미래가 될지 모른다. <식코>가 보여주는 미국은 민영보험을 중심으로 의료산업화가 완성된 사회다.

<식코>는 유명하고 충격적인 장면으로 시작한다. 실업자인 애덤이 자신의 오른쪽 다리에 생긴 상처를 바늘로 '스스로' 꿰매는 장면이다. 의료보험이 없어서 병원에 갈 만한 형편이 안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미국에는 의료보험이 없는 5천만 명이 살고 있다. 이들에게 병원은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호사'다. 그래서 해마다 의료보험이 없어서 숨지는 사람이 1만8천 명에 이른다. 가히 '디스토피아'다.

디스토피아가 무보험자만의 현실은 아니다. 그래서 서두에 이것은 "의료보험이 있는 미국인"을 위한 영화라고 <식코>는 선언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현실은 악몽에 가깝다. 보험에 들어도 민영보험사는 각종 다양한 치료비 지원 거절의 이유를 준비하고 있다. 그들이 애용하는 말은 "실험적"(Experimetal). 임상효과가 검증되지 않아서 실험적 치료법이란 이유로 의료비 지원을 거절한다. 그렇게 거절의 벽에 막혀서 남편을 잃은 아내의 눈물이 보이고, "자궁경부암은 22살에 걸릴 병이 아니다"라는 이유로 수술비 지원을 거절당한 여성의 하소연이 등장한다. <식코>는 이런 보험회사의 거부 목록이 "집을 도배하고 남을 만큼 길다"고 전한다.

다행히 의료비를 지원받아도 끝이 아니다. 보험회사에서 근무했던 사람은 "살인사건 다루듯 병력을 철저히 조사해 의료비를 회수한다"고 영화는 전한다. <식코>에는 보험회사에 근무했던 사람들의 눈물 섞인 내부고발이 이어진다. "한 명씩 사연을 들으면 도저히 거절하기 힘들어" "기계적으로 거부 서명을 찍었던" 의사들의 증언이다. 물론 거부하는 건수만큼 회사의 이익이 쌓이고 고액의 연봉으로 돌아온다.

그리하여 벌어지는 현실은, 미국의 파산 가정 절반이 의료비 때문에 생기고 파산자의 75%는 의료보험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렇게 사람의 목숨을 팔아서 절약한 돈으로 워싱턴엔 의원보다 4배 많은 보험회사 로비스트가 활동하고, 의료 '개혁' 법안을 입안한 정치인들은 '황금 티켓'을 가지고 보험회사 고위직으로 이동한다.

응급환자도 계약 병원 아니면 문전박대

<식코>를 보면서 한국의 관객은 안도의 한숨을 쉴지도 모른다. 아직은 한국이 저렇진 않다고. 그것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생각이다. 미국의 의료 현실은 진행 중인 미래다. 이미 한국의 민영보험 시장은 국내총생산(GDP)의 1.2%인 10조원 이상으로 커졌다. 건강보험 당연지정제의 폐지도 남의 얘기가 아니다. 지금은 모든 병원이 당연히 건강보험 가입자를 받아야 하지만, 당연지정제가 폐지되면 건강보험이 있어도 못 가는 병원이 생긴다. <식코> 초반에 나오는 흑인 소녀처럼 갑자기 아파서 병원에 갔지만 소녀의 가족이 가입한 민간보험과 계약된 병원이 아니란 이유로 진료를 거절당해 숨지는 사태가 생기는 것이다.

미국은 세계에서 1인당 의료보험 지출이 가장 높은 나라지만 의료서비스는 선진국 중에서 최하위 수준이다. 이러한 미국의 역설을 <식코>와 조홍준 울산의대 교수의 설명(1월27일 '2008 보건의료진보포럼' 강연)에 바탕해 정리하면, '오히려'로 묶인다. 영리병원의 환자 사망률이 비영리병원에 비해 '오히려' 2% 높다. 영리요양원의 진료 잘못이 비영리요양원에 비해 '오히려' 56% 많다. 미국 디트로이트의 영아사망률(15.5%)은 '오히려' 엘살바도르의 영아사망률(9.7%)보다 높다. 미국의 민간보험사는 공적 의료보험기관보다 '오히려' 더 많은 비용을 행정비용으로 지출한다. 민영화가 효율적이란 논리가 틀린 것이다. 그리고 영국의 극빈자가 미국의 부유한 사람보다 오래 살 가능성이 '오히려' 크다.

그리하여 <식코>는 캐나다, 영국, 프랑스로 향한다. 미국 미시간주에 사는 여성은 자동차로 국경을 넘는다. 캐나다 병원에서 치료받기 위해서다. 미국에선 도저히 진료비를 감당하기 어려웠던 그는 캐나다에서 무상에 가까운 진료를 받는다. 그는 자신을 도와주는 남자친구들 옆에서 "미국인이 병 때문에 캐나다인과 결혼할지 모른다"고 말한다. 캐나다인들은 "여기선 아파서 파산하는 일은 없다"고 장담한다. 캐나다와 견줘 미국의 의료보험제도를 비판하는 사람은 공산당도, 녹색당도 아닌 보수당 지지자다. 다음엔 영국이다. 무어는 영국의 병원에서 돈을 내는 수납창구를 찾지 못해 헤맨다. 그가 겨우 병원 구석에서 '수납'(Cashier)을 발견한다. 하지만 여기는 돈을 받는 곳이 아니라 돈을 주는 곳이다. 응급치료를 받고 먼 곳으로 가는 환자를 위해 영국은 교통비도 지급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영국 의사는 가난할까? 천만에, 돈벌이에 매달리지 않고 치료에 전념하는 영국 의사는 20만달러의 연봉을 받는다.

같은 약이 미국서 120달러, 쿠바선 5센트

도버해협 건너의 현실은 더욱 가관이다. 프랑스에 거주하는 미국인들은 양국의 현실을 비교하며 증언하고 무어는 그들의 얘기에 "그럴 리가!"(No way!)를 연발한다. <식코>에서 무어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은 "No way!", 미국에선 놀라서 외국에선 놀라워서 나오는 말이다. 프랑스의 미국인이 한마디 덧붙인다. "프랑스 정부는 국민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국민이 정부를 두려워한다." 의료체계는 단순히 하나의 제도가 아니라 사회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다.

무어의 마지막 행선지는 뜻밖에 쿠바다. 무어는 병마와 싸우는 9·11 영웅들을 배에 태우고 쿠바의 포로수용소 관타나모로 향한다. 무어에 따르면, 첨단 의료시설을 갖춘 관타나모 수용소는 미국에서 유일하게 무상의료가 실시되는 곳이다. 9·11 당시에 구조활동을 하다가 병을 얻었지만, 기관에 소속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치료비 지원도 받지 못하는 9·11 영웅들은 요구한다. "악당들에게 해주는 것만큼만 우리에게 해달라!" 하지만 그들은 접근을 저지당하고 쿠바로 들어간다. 9·11 영웅들은 '폭정의 전초기지'에서 비로소 제대로 치료를 받는다. 미국에서 120달러인 약값 때문에 약을 복용하지 못했던 여성은 같은 효능의 약을 겨우 5센트에 쿠바의 약국에서 사고는 운다. 울면서 말한다. "가방에 약 싸가면 안 될까요."

이렇게 약값은 어디나 똑같지 않다. 아니 비슷하지도 않고 천차만별이다. 심지어 한국의 일부 약값은 미국보다 오히려 비싸다. 백혈병 환자들이 복용하는 글리벡의 한국 가격은 한 알에 2만3045원.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의 2006년 조사를 보면, 글리벡의 미 연방정부 공급가격은 1만9135원, 미 국방부와 보건소 등 이른바 '빅4' 공급가는 1만2490원으로, 한국보다 낮다. 글리벡에 내성이 생긴 환자들이 복용하는 스프라이셀 한 알 가격으로 제약사인 브리스틀마이어스스퀴브(BMS)가 신청한 금액은 6만9135원. 하루에 두 알을 복용해야 하니 하루 약값만 14만원에 가깝다. 안기종 한국백혈병환우회 대표는 "순금 한 돈이 현재 12만8천원 정도 하니까 말 그대로 금값보다 비싸다"고 말했다. 아직 스프라이셀의 약가는 결정되지 않았지만, 제약사 요구대로 매겨진다면 한 해 약값이 5천만원에 이른다.

이명박 대통령도 극장에 나와 보길

이렇게 한국의 약값이 비싼 이유는 신약의 가격을 미국, 일본, 독일, 스위스 등 선진 7개국(A7) 평균약가에 바탕해 결정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약값에 불만을 품은 제약회사는 신약을 공급하지 않기도 한다. 푸제온은 후천성면역결핍증(HIV)·에이즈(AIDS) 환자를 위한 약이다. 푸제온은 2004년 11월 한 병당 2만4996원으로 보험에 등재됐다. 이렇게 3년여가 지났지만 여전히 약국에서 푸제온을 구할 수 없다. 제약사인 한국로슈가 A7 조정평가에 미치지 못한다는 이유로 공급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푸제온은 면역세포 안으로 HIV 바이러스가 들어오는 것을 막는 새로운 방식의 에이즈 약이다. 현재 시판 중인 약에 내성이 생긴 300여 명의 HIV 감염인이 애타게 푸제온을 기다리고 있다.

다행히 한국 건강보험은 HIV 감염인의 약값을 후불제이긴 하지만 전액 지원한다. 백혈병 환자도 글리벡 약값의 90%를 건강보험에서 지원받는다. 만약에 한국에 건강보험이 없다면? 민간보험에 가입하기 힘든 사람이 대부분인 HIV 감염인, 지금도 의료비 부담이 버거운 백혈병 환자는 더욱 살기가 어렵다. 지금도 비싼 약값은 보험재정 부담으로 돌아온다. 변혜진 보건의료단체연합 기획국장은 "건강보험 지출에서 약제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30%로, 다른 나라의 두 배에 이른다"며 "한국의 현실에 맞게 약값이 조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먹을 수 없는 약은 약이 아니다. 의료는 산업만이 아니고, 건강은 상품만이 아니다. 약값은 선진국 대접을 받아서 하늘을 찌르고 의료의 시장화는 미국의 '모범'을 따라서 확대되면, 혹시나 제작될지 모르는 <식코2>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등장하지 않을까? 오, 노! 미국은 한국의 오래된, 아니 끔찍한 미래다? 이러한 미래를 막기 위해 4월2일 이명박 대통령에게 <식코> 초청장 보내기 퍼포먼스, 4월3일과 5일엔 보건의료인 <식코> 보기 캠페인이 시작된다. <식코>를 보는 일은 이제 하나의 정치가 되었다.

한국백혈병환우회 안기종 대표·박진석 팀장 인터뷰

"이명박 대통령이 영화평 해줬으면"<식코>가 때로는 절절히, 때로는 섬뜩하게 와닿았을 사람들을 만났다. 한국백혈병환우회 안기종 대표와 박진석 영상미디어팀장은 때로는 서글픈, 때로는 단호한 목소리로 영화와 현실에 대한 얘기를 토해냈다. 박 팀장은 급성백혈병을 앓았던 당사자이고, 안 대표는 부인이 만성백혈병과 싸우고 있다. <식코>를 보는 소감이 남달랐겠다.박진석(이하 박·사진 왼쪽) 지난해 한 세미나에서 어느 대학병원 원장이 한국도 미국처럼 돼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 영화를 보면서 떠올랐다. 정말로 저렇게 돼야 한다고 생각한단 말이야, 그렇게. 안기종(이하 안) 아내가 골수이식을 받으면서 병원비가 1억7천만원이 나왔다. 그래도 의료보험이 있어서 3천만원만 부담하면 됐다. 만약 미국이었다면, 가슴이 철렁한다. 제약사는 고가의 약값이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연구개발비로 투자할 이득이 나와야 신약을 만든다는 것이다.필요 이상의 약값을 요구하는 것이 문제다. 제약회사가 맨땅에 헤딩하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약품 개발은 공적자금이 들어간 대학이나 연구소의 개발 성과 중에서 상품화 가능성이 있는 것을 제약회사가 사는 방식이다. 그들의 지적재산권에 인류의 공동 지식과 공적자금이 이미 들어가 있다. 더구나 판촉홍보 비용이 연구개발비의 두세 배다. 그런데도 지나친 지적재산권을 요구하면 곤란하다. 제약사에 최상의 약은 치료제가 아니라 유지제다. 환자들이 완치는 되지 않고 계속 약을 사먹어줄 만큼 생존하게 하는 것이다. 미국을 보니 잘사는 나라가 반드시 보험제도가 좋지는 않은 것 같다.멀리 갈 필요도 없다. 대만의 보험 만족도가 미국보다 높다. 우리도 국민들의 합의를 통해 이미 민간건강보험 시장에 들어간 금액만 건강보험으로 돌려도 암까지 무상 치료가 가능하다. 상상력의 문제다. 나라마다 정말로 제도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민단체에서 백번 떠드는 것보다 <식코> 한 번 보는 편이 낫겠더라. <식코>의 극장 상영이 끝난 뒤에는 지상파로 꼭 보여줬으면 좋겠다. 참, 그전에 이명박 대통령이 <식코>를 보고 한마디 해주면 좋겠다. 제발. 대통령 이전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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