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일 '숨가쁜 합종연횡'..동북아 외교지형 바뀐다
[한겨레] 오바마 "미-중, 세계문제 해결할 유일한 두 나라"
일 '미-일 동맹' 재조정…중국과 관계 복원에 혼신
미중일 3자관계의 변화로 동북아의 지정학적 구도가 변화하고 있다. 세계적인 차원에선 미국과 중국의 위상이 빠르게 바뀌고 있고, 이는 다시 일본을 자극해 미-일 동맹 약화와 중-일의 협력 강화라는 도미노 현상을 불러오고 있다. 미국의 영향력 쇠퇴로 미·중·일 사이에 새로운 이합집산의 양상이 나타나는 모양새다. 국제정치학자인 즈비그뉴 브레진스키의 표현을 빌리면 동북아의 거대한 체스판이 움직이고 있다.
지난해 말 닥친 세계적인 금융위기와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의 등장을 계기로, 미국은 중국과의 협력관계를 한층 강화하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는 대 중국 봉쇄 정책을 포기하고 개입(포용) 정책을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존 헌츠먼 주중 미국 대사는 지난달 20일 중국에서 열린 한 강연에서 "우리(미국과 중국)는 오늘날 이들 이슈(기후변화, 세계적 경제침체 등)를 함께 풀 수 있는 유일한 두 나라이며, 그외 다른 어느 나라도 그럴 수 없다"는 오바마 대통령의 백악관 회의 발언을 소개하기도 했다.
오바마 행정부의 이런 대 중국 정책 노선 변화는 중국이 8000억달러에 이르는 미국 채권, 곧 미국의 돈줄을 쥐고 있다는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오바마 미 대통령과 후진타오 중국 주석의 지난달 정상회담은 양쪽의 달라진 위상을 실감케 하는 자리였다. 미국은 티베트와 대만을 중국의 영토로 인정했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6일 "미국이 중국의 인권 문제를 제기했지만 공세적이었던 부시 행정부 시절의 미국은 찾을 수 없었다"고 평가했다.
미-중이 공동성명에서 표방한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전면적인' 관계는 주변국에 연쇄 반응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고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지금까지 미국 정부의 정책은 중국과 협력을 하더라도 미국을 정점으로 하고 미-일 동맹을 기본 축으로 하는 범위 안에 있었다"며 "그러나 미-중 간 구조적인 변동으로 이런 틀이 흔들릴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동북아의 양강 구도 흐름에서 소외된 일본의 민주당 정부는 독자적인 외교 행보를 서두르고 있다. 미국과의 동맹이라는 기존 전략만으로는 자국의 안전과 이익을 확보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에 따라 1990년대 이후 철의 동맹을 과시했던 미-일 동맹은 후텐마 해병대 비행장 이전 문제로 갈등을 표출하며 동맹 재조정 단계에 들어섰다.
일본은 지난 세기 중국 대륙 침략 등으로 불편했던 중국과는 되레 긴밀한 협력의 다리를 놓고 있다. 일본 집권 민주당의 실세인 오자와 이치로 간사장이 10일 방중 때 국회의원 140명을 포함한 600여명의 대규모 수행단을 대동하는 것은 중-일 관계에서 상징적이다. 한 외교 전문가는 "일본을 통째로 들고 가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날카롭게 해군력 증강 경쟁을 해왔던 양국은 지난달 27일 량광례 중국 국방부장의 방일을 계기로 해상 합동 군사훈련 실시 등 9개의 군사적 협력방안에 합의했다.
합종연횡이 어떤 모양으로 귀결될지 예측하기는 어렵다. 다만, 미국은 중국을, 중국은 미국을 자극하지 않으며 양쪽이 일본을 끌어들이려 할 경우 동북아는 미-중-일 3국의 '강대국 정치'가 득세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미 국무부의 제임스 스타인버그 부장관과 커트 캠벨 동아태 차관보 등의 주도로 지난해 작성된 한 보고서는 기존의 미-일 동맹관계와 부상하는 중국과의 관계를 접목하기 위해 미·중·일 3국의 고위급 협의기구 설치를 제안했다. 미·중·일은 이미 3자 전략대화에 시동을 걸었고, 한국 정부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역사를 보면, 세력 재편 과정에선 강대국끼리의 협력과 배신, 음모와 술수가 난무했다. 1905년 일본은 필리핀에서 미국의 통치를 인정하고, 미국은 한반도에서 일본의 지배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카쓰라-데프트 밀약을 맺었다. 지금 한국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이용인 기자 yy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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