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압 없었다면서 '직영 무리수'..부처님은 납득할까

2010. 3. 2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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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봉은사 직영전환 전말

분과위서 부결되자 자승스님 긴급발의

'총무원장 의지' 확인뒤 본회의 전격통과

명진 "내게 입 열개라도 할말 없다고 얘기"

조계종 총무원은 왜 갑자기 봉은사를 '총무원 직영사찰'로 지정했을까. 명진 스님 거취에 대한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의 외압 발언이 사실로 드러났음에도 그 이유는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조계종 총무원은 지금까지도 '봉은사 직영 지정'은 외압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만약 안 대표의 외압이나 정치권력과의 교감 때문에 정부 비판적인 명진 스님을 겨냥했다면 불자들이 반발할 것이므로 이를 두려워해 그런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총무원의 주장대로 외압 때문이 아니라면 다른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총무원 인사권자이자 최고 결정권자인 자승 총무원장조차 속시원히 그 이유를 설명해주지 못하고 있다. 명진 스님이 지난 21일 봉은사 일요법회에서 공개한 내용에 따르면 봉은사 직영 건이 종회에 상정된 이후인 지난 3월9일 자승 총무원장을 만난 자리에서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자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고 답변했다"고 밝혔다. 명진 스님이 이어 "'어디서 압력받은 것 아닙니까, 귀신에 씐 것입니까'라고 물으니 '귀신이 그런 것 같습니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귀신은 실체가 없으니 의혹이 더 커지는 것이다.

'봉은사 직영' 논란의 시발은 지난 3월3일이었다. 총무원은 이날 긴급종무회의에서 '선본사(갓바위) 직영사찰 해제 및 봉은-도선사 직영사찰 전환' 승인 동의안을 총무원 입법부격인 종회에 올렸다. 현재 총무원의 직영사찰은 총무원과 함께 있는 조계사, 그리고 최고의 기도처로 알려진 팔공산 선본사와 강화도 보문사 등 세곳이다. 선본사와 보문사는 1994년 종단 개혁 때 불자들의 기도비가 '눈먼 돈'이 되어 엉뚱한 데 새지 않고 종단의 공적 자금으로 쓰이도록 총무원 직영으로 지정했다. 직영사찰은 총무원장이 주지를 맡으며 재산관리인인 관리주지를 파견한다. 이 안에 대해 최대 기도처인 갓바위를 돌려받을 것을 기대한 갓바위 본사 은해사는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그동안 온 힘을 다해 가꾸어온 절을 총무원이 접수한다는 소식을 들은 도선사와 봉은사는 결사반대하고 나섰다. 결국 이 안건은 총무분과위에서 5대 4로 부결됐다. 이것으로 이 제안은 없던 일이 되는 듯했다.

하지만 '총무원장 긴급발의'로 다시 '선본사 직영사찰 해제 및 봉은사 직영사찰 전환' 승인이 종회 본회의에 요청됐다. '도선사 직영 지정'만 빠진 안이었다. 하지만 총무원의 재정 충당을 이유로 봉은사까지 직영으로 지정한다면서 가장 큰 재원처인 선본사의 직영을 해제하는 것은 명분이 없었다.

결국 종회 의원들은 '선본사 직영 해제'를 부결시키고 총무원장의 강력한 의지가 실린 '봉은사 직영 전환'을 관철시키는 쪽을 택했다. 법정 스님 입적일인 지난 11일 오후 진행된 '봉은사 직영 전환' 표결은 찬성 49대 반대 21이었다. 총무원에서 주요 소임을 맡은 적이 있는 한 중진 스님은 "국회라면 상임위에서 부결된 안건을 본회의에 직권 상정해 통과시킨 것과 마찬가지"라면서 "이런 중대한 건을 해당사찰과 사전에 상의조차 않는 것도 이해할 수 없고, 더구나 아무런 토의 없이 급히 통과시킨 게 도대체 무슨 이유인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총무원 안팎에선 조계종 주요 4대 계파로부터 모두 추대를 받아 지난해 말 당선된 총무원장이 선거 과정에서 일부 계파에 모종의 약속을 했고, 이 때문에 봉은사 직영을 단행한 것이 아닌가 하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사실이라면 총무원장은 더 큰 곤경에 빠질 수도 있다. 총무원장과 절친한 지홍 스님도 "직영 사찰은 관리주지가 소신을 갖고 운영할 수 없는 '정치적인 절'이 되기 때문에 '봉은사의 직영 지정'은 안된다"고 반대하고 있는 처지다.

도법 스님과 수경 스님, 지홍 스님 등 조계종 내에서 신망받는 중진 세 스님이 보다못해 24일 총무원장과 명진스님을 찾아 잘못 꿰진 단추를 풀기 위해 나섰다. 하지만 이 일을 벌인 총무원장이 함구로 일관하고 있어, 직영지정 배경에 대한 의구심이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궁금증을 풀 열쇠를 쥐고 있는 총무원장의 입에 세간의 눈길이 모아지는 이유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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