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목격자 PD수첩 사라지나

주진우 기자 ace@sisain.co.kr 2010. 1. 18.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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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저앉는 소'는 '광우병 소'가 아니었다. 눈물짓는 흑인 어머니 딸의 사인도 광우병과 무관했다. 그것 말고도 영어 번역자에 의해 프로그램 전체에 걸친 날조와 왜곡, 과장과 거짓이 낱낱이 폭로됐다." 2009년 4월29일자 조선일보 사설이다. 제목은 '날조 < pd수첩 > 이 나라 뒤엎은 지 1년, 책임진 사람이 없다'였다. 2009년 6월18일 청와대 이동관 대변인은 < pd수첩 > 을 "사회적 흉기"라고 표현했다. 뒤이어 한나라당은 "허위·조작방송"이라며 < pd수첩 > 폐지를 촉구하고 나섰다.

2009년 1월 800회를 맞이한 . 은 1990년 5월8일 첫 방송을 했다.

이명박 정부와 검찰 그리고 보수 언론은 왜곡·조작·패륜·날조·좌파라는 낙인을 찍어 < pd수첩 > 을 왜곡된 틀 안에 가두었다. 이들이 < pd첩 > 을 공격하는 근거 중 하나는 '주저앉는(다우너) 소'를 '광우병 소'라고 속였고, 다른 하나는 아레사 빈슨이 광우병으로 죽었다고 의도적으로 거짓말했다는 것이다. 이는 모두 현 정권에 대한 PD의 개인적인 적개심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주장이야말로 왜곡되고, 조작되고, 날조된 측면이 있다.

검찰은 공소장에서 '주저앉은 소들이 광우병에 걸렸거나 걸렸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보도는 허위라고 주장했다. "1997년 8월 이후 출생한 소에서 광우병에 걸린 소가 한 마리도 발견되지 않았고, … 실제 광우병 검사 통계 결과에 비추어 광우병에 걸렸을 가능성이 거의 없음." 검찰의 주장은 열두 살이 안 된 미국 소는 광우병에 걸렸을 가능성이 거의 없음을 말한다. 하지만 미국 검찰도 이렇게 주장하지는 않는다.

검찰 "미국 소 광우병 가능성 거의 없음"

검찰 주장대로 < pd수첩 > 이 허위 사실을 단정한 것도 아니다. < pd수첩 > 진행자가 "아까 그 광우병 걸린 소도 도축되기 전 모습은 충격적이다"라고 한 표현은 문제가 있다. 하지만 < pd수첩 > 은 방송에서 "이 동영상 속 소들 중 광우병 소가 있었다고 단정할 순 없다. 그러나 이 소들이 광우병 소인지 여부도 알 길이 없다"라고 밝혔다. < pd수첩 > 에서 주저앉은 소 동영상은 광우병 위험으로 검사받아야 하는 주저앉은 소가 검사 없이 도축되어 유통되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주저앉은 소를 광우병 의심 소로 간주한 것은 < pd수첩 > 뿐만이 아니었다. 2007년 발표한 자료에서 미국 농무부는 "주저앉은 소 도축 금지는 광우병 예방 조처다"라고 밝히고 있다. 2008년 1월 미국 동물 보호단체에서 다우너 소 동영상을 공개하자, 조선·중앙·동아 모두 주저앉은 소의 광우병 감염 가능성을 언급했다. "미국 농무부는 다우너 소의 경우 식중독균이나 광우병 등에 감염될 가능성이 높아 식용으로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조선일보)

주저앉은 미국 소가 광우병과 무관하다고 주장하는 집단은 전 세계에서 한국 정부와 검찰 뿐이다. < pd수첩 > 이 의도적으로 아레사 빈슨이 광우병으로 죽었다고 거짓 보도했다는 주장도 터무니없어 보인다. 검찰 공소장의 일부분이다. "로빈 빈슨이 인터뷰에서 'CJD(크로이츠펠트 야코프병)'를 임의로 'vCJD(인간광우병)'로 바꾸어 'MRI 검사 결과 아레사가 vCJD(인간광우병)일 가능성이 있다고 하더군요'라고 왜곡하여 자막 처리하였고…." 이는 검찰이 < pd수첩 > 번역의 일부를 담당한 정지민씨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정지민씨는 < pd수첩 > 외국어 번역자 13명 중 한 사람이다). 정씨는 "자신은 CJD라고 번역했는데 제작진이 의도적으로 vCJD로 고쳤다. 이는 명백한 왜곡이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 과정에서 정씨의 주장은 여러 대목에서 모순점이 드러난다.

2008년 4월15일 < pd수첩 > 사전 취재와 번역을 맡았던 오 아무개씨는 아레사 빈슨의 어머니 로빈 빈슨 씨와 전화로 최초 접촉했다. 재판에서 오씨는 "로빈은 '아레사 빈슨이 사망 전 인간광우병으로 진단받았다. 의사가 MRI 결과 vCJD라고 했다"라고 말했다. 아레사가 광우병 환자가 아니라면 < pd첩 > 이 미국까지 가서 로빈 빈슨씨를 인터뷰할 이유가 없었다.

로빈 빈슨씨는 김보슬 PD와의 현지 인터뷰에서 "아레사가 광우병에 걸렸다"라고 10차례 정도 이야기했다. 정지민씨의 폭로 이후 로빈 빈슨의 인터뷰 왜곡 논란이 생기자 김보슬 PD가 다시 미국에 갔다. 로빈 빈슨 씨는 "내가 4월에 했던 인터뷰 당시 'CJD'라고 말한 것은 모두 'vCJD'를 의미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2008년 7월 검찰의 수사에 반발해 촛불문화제(위)가 열렸다.

정지민씨는 "빈슨의 어머니는 CJD와 vCJD를 분명히 구분해서 말하고 있으며 특히 MRI상 진단으로는 'CJD'만을 말했다"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재판에서 공개된 정씨가 번역한 부분 동영상에서 아레사 빈슨의 어머니는 "MRI를 통해 'a variant of CJD'라는 진단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미국 농무부와 미국 질병관리센터에서 'a variant of CJD'는 인간광우병을 의미한다. 김보슬 PD는 "결정적 오역은 정씨가 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검찰·보수 언론이 사실 왜곡

2009년 6월15일 중앙일보는 검찰이 확보한 빈슨 유족의 의료소송 소장과 재판 기록 등 어디에도 인간광우병이라는 언급이 없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아레사 빈슨의 가족들이 의료진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소송 소장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빈슨은 2008년 4월2일 MRI 검사를 받았고, 이를 Dr. Kim이 판독했다. 빈슨은 흔히 광우병이라 불리는 변종 크로이츠펠트 야코프병 진단을 받아 2008년 4월4일 퇴원 조처됐다."

< pd수첩 > 의 의도적인 오역이 없었다는 점은 재판 과정에서 밝혀졌다. 오히려 검찰과 보수 언론이 사실을 왜곡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형편이다. < pd수첩 > 이외의 다른 언론에서는 아레사 빈슨을 광우병 환자로 의심하지 않았다는 검찰의 주장 역시 사실과 다르다. "의사들은 아레사가 변종 크로이츠펠트 야코프병, 즉 vCJD를 가지고 있지 않나 의심한다."(nbc12.com 2008년 4월9일) "병원 의사들은 그녀를 변종CJD로 진단했다고 어머니는 말한다."(wvec.com 2008년 4월7일)

< pd수첩 > 을 좌파 방송이라고 몰아붙이는 주장도 아귀가 맞지 않는다. 지난해 6월 검찰이 수사결과를 발표하자 조선일보는 " < pd수첩 > 작가는 MB에 대한 적개심으로 광적으로 일했다. 국민의 알 권리나 건강권은 말뿐이고 자신들이 반대하는 정권을 흔들고 무너뜨리려는 것이다"라고 적었다. 동아일보는 "광우병 프로그램이 갓 출범한 이명박 정부를 거꾸러뜨리기 위해 대선 불복운동 차원에서 만든 노골적인 '정치 프로그램'임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라고 했다. 재판에서 검사는 "PD 개인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 pd수첩 > 제작을 지휘한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 pd수첩 > , 참여정부 때도 쇠고기 협상 비판

< pd수첩 > 이 쇠고기 협상의 문제점을 비판했다고 해서 개인의 정치적 목적이라고 몰아가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다. < pd수첩 > 은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6년 7월 '론스타와 참여정부의 동상이몽-한·미 FTA' 1·2편을 통해 한·미 FTA 협상 과정의 문제점을 보도했다. 선결조건 중 하나가 쇠고기 협상이라는 점도 지적했다. 이 프로그램은 참여정부에서도 크게 논쟁이 됐다. 정부가 < pd수첩 > 방송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는 신문 광고를 내기도 했다. 그때 노무현 대통령은 담당 PD와 1대1로 끝장토론을 제의하기도 했다고 한다. 고소·체포·기소가 아니라 토론을 제안한 것이다.

2008년 8월 사과방송을 하자 시사교양국 PD들이 엄기영 사장(왼쪽)을 향해 피켓시위를 했다.

조능희 < pd수첩 > 책임PD는 2007년에 9월 < mbc스페셜 > '오해와 진실, 끝나지 않은 한·미 FTA'를 통해 쇠고기 문제를 파헤쳤다. 조능희 책임PD는 피고인 최후진술에서 "지난 정부에서도 이번 정부에서도 < pd수첩 > 에게 쇠고기 문제는 쇠고기 문제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그 쇠고기를 우리 국민이, 우리 아이들이 먹는다는 것이지, 통치자가 누구인지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1월13일 서울고법 민사13부(부장판사 여상훈)는 보수 변호사 단체가 모은 시민 200여 명이 ' < pd수첩 > 의 선동적인 허위·왜곡 보도로 엄청난 사회 혼란이 초래됐다'며 MBC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항소심에도 < pd수첩 > 손을 들어주었다. 1심에서도 < pd수첩 > 은 승소했다. 재판부는 "피고들이 방송을 통해 불법 집회를 개최하도록 의도했거나, 그런 집회를 예상하고 방송을 했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라고 밝혔다.

재판에서 이겼다고 하지만 < pd수첩 > 의 앞날이 밝지만은 아니다. 소송의 산은 높고, 넘어야 할 고비는 더 많다. < pd수첩 > 보도에 대해 진행 중인 민·형사 소송은 8건에 달한다. 그중 가장 큰 고비는 정운천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등이 제작진 6명을 명예훼손 혐의로 형사고소한 재판이다. 선고일은 1월20일이다.

정운천 전 장관과 민동석 전 농식품부 정책관 등은 국민으로부터 받은 비난이 < pd수첩 > 때문이라고 소송을 걸었다. "복어 독 제거하듯 특정 위험물질만 제거하면 안전하다" "이 협상은 미국의 선물이다" 등 자신들의 돌출 발언이 국민적 공분을 샀다는 점에 대해서는 말이 없다. 이 재판에서 검찰은 < pd수첩 > 제작진에 대해 징역 2∼3년의 중형을 구형했다. "허위 사실을 알면서도 왜곡보도를 해 국론을 분열시키고 사회적 비효율을 초래했다"라는 이유에서였다. 검찰의 한 고위 관계자는 "언론사에 대한 형사소송은 민사소송에 비해 이기기 힘든 게 사실이다. 하지만 검찰의 승소를 자신한다"라고 말했다.

만약 이 재판에서 < pd수첩 > 이 패한다면, MBC가 < pd수첩 > 을 접는 절차에 들어갈 가능성은 매우 높다. < pd수첩 > 이 이긴다 해도 스무 살 < pd수첩 > 이 살아남을 확률은 그리 높지 않다. 방송통신위원회의 한 핵심 관계자는 사석에서 " < pd수첩 > 폐지는 거의 결정 난 상태다. 어떻게 없애느냐만 남았다. MBC 임원과 이번에 선임되는 임원들 사이에도 공감대가 형성되었다"라고 말했다.김광동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는 "뉴스 프로그램의 통폐합 등 과감한 조처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최홍재 이사는 "법원의 판결이 중요한 게 아니라 MBC 경영진과 제작진의 사과와 책임 있는 판단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엄기영 사장은 < 시사IN > 기자와 전화통화에서 "방문진에서 물고 늘어지는데 < pd수첩 > 문제는 이미 사과했다"라고 말했다. 기자가 형사소송에서 < pd수첩 > 이 질 경우에 대해 묻자 엄 사장은 "형사소송에서 진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다. 정부 비판은 말라는 소리도 아니고. 재판을 지켜보겠다"라고 말했다.

현재 방문진 이사들은 엄기영 사장과 MBC 임원 인사를 놓고 줄다리기 중이다. 방문진은 엄기영 사장에게 임원 합의의 전제조건으로 < pd수첩 > 진상규명위원회 설치를 요구했다. MBC 노동조합 김주만 간사는 "방문진 이사들이 < pd수첩 > 에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인사들이 포함된 진상조사위원회 구성을 요구했다. 임원 인사 후 < pd수첩 > 에 대한 공격이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조능희 < pd수첩 > 책임PD는 " < pd수첩 > 을 없애는 것은 현 정부 인사들이 항상 소망해왔던 일이다. 이는 민주주의를 하지 말자는 것이다. 비판 언론을 죽이는 건 독재국가에서 나오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주진우 기자 / ace@sisain.co.kr- 정직한 사람들이 만드는 정통 시사 주간지 < 시사IN >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 시사IN 구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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