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꼭 숨은 대통령 안가..'형님'도 헷갈려
[한겨레] [뉴스 쏙]
* 안가 : 안전가옥
'촛불' 한창때 은밀한 방문 잦아최근엔 '주소 없는' 테니스 별장이상득 의원 옆집 초인종 누르기도
청와대 인근 삼청동에는 대통령만 이용할 수 있는, '번지 없는 주막', 아니 '번지 없는 집'이 있다.
정식 명칭은 '청와대 삼청동 별관'이지만, '안가'(安家)라는 말이 더 자주 쓰인다. 안전가옥을 줄인 말이다. 보안·경호상 안전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안가가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만, 안가 위치는 극비사항이다. 안가가 보이지 않는 곳부터 경찰이 배치돼 있어 일반인은 안가 담벼락도 볼 수 없다.
청와대를 드나들 경우, 상세한 출입 기록이 남을 뿐 아니라, '누가 청와대에 왔다'는 사실이 외부로 알려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또 청와대에서 대통령과의 대화 내용은 모두 녹취된다. 그래서 대통령이 외부 인사를 편하게 만나고 싶을 때 안가를 이용한다. 안가는 청와대로 통하는 문이 연결돼 있다.
안가는 겉으로 보면 평범한 단층 양옥주택이다. 건평이 얼마나 되는지, 방이 몇 개나 되는지도 모두 기밀이다. 다녀온 사람들의 말을 종합하면, 마당이 있고, 실내에는 10명 정도가 앉을 수 있는 큰 식탁을 갖춘 식당과 주방 시설, 그리고 침실 등 몇 개의 방이 있다고 한다. 바깥에는 테니스 코트 두 면이 갖춰져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주말이면 테니스를 치느라 안가를 종종 찾는다.
이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부터 안가를 사용했다. 서울 가회동 자택 앞 골목이 좁아 경호에 어려움이 있다는 이유로, 경호처가 먼저 권해 이뤄졌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 이 안가에서 새 정부의 각료 인선 등 중요한 사항들이 논의됐다고 한다. 지난 3월 뉴라이트의 김진홍 목사를 초청해 예배를 본 곳도 청와대 아닌 안가였다.
새 정부 들어, 안가가 제일 바빴을 때는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지난 5월이었다. 5월 한 달 동안 대통령이 안가에서 만난 사람은 외부로 알려진 것만 꼽아도,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1일), 김형오 국회의장(2일·당시는 의장 취임 전), 대선 언론특보단(10일), 이재오 전 최고위원(12일), 김영삼 전 대통령(24일), 홍준표 원내대표-임태희 정책위의장(24일) 등 여권 핵심인사들이었다. 박희태 대표와도 청와대 주례회동 외에 안가에서 몇 차례 만난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6월9일에는 이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과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안가에서 이 대통령과 아침을 함께 들며 인사개편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회동 직후, 류우익 대통령실장 등 1기 청와대가 대폭 개편됐다. 이날 아침 회동에서는 이 의원이 안가인 줄 잘못 알고 안가 부근에 있는 대통령실장 공관의 초인종을 누르는 바람에 인사개편 대상인 류 실장과 이 의원이 '깜짝 조우'하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안가는 '밀실 정치'의 상징처럼 비치어 청와대에서는 대통령의 안가 모임이 알려지는 것을 꺼린다. 실제로 '안가의 역사'는 어둡다. 안가가 처음 생겨난 것은 1960년대 말 박정희 대통령 시절 중앙정보부의 제안으로 이뤄진 것으로 전해진다. 박정희 정권이 3선 개헌, 유신독재에 돌입하기 직전이었다. 삼청동 안가 외에도 궁정동·효자동 일대에 여러 채의 안가가 있었다. 궁정동 안가는 10·26 현장이기도 하다.
전두환 대통령이 83년 일해재단 설립을 결정한 곳도 안가였다. 전두환·노태우 대통령 시절, 기업 총수들이 거액의 정치자금을 건넨 곳도 대부분 청와대 아닌 안가였다. 91년 정원식 총리가 외국어대에서 학생들로부터 밀가루 세례를 받은 뒤, 각료와 청와대 참모들이 모여 대책회의를 연 곳도 삼청동 안가다.
이런 안가들은 문민정부를 표방한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대부분 사라졌다. 궁정동 안가는 건물을 헐어 무궁화동산이라는 이름의 시민휴식 공원으로 꾸몄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곳이 삼청동 안가다.
이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주말에는 청와대 밖에 머물며 바깥 사람들도 편하게 만나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주말에는 안가에서 묵겠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보안을 이유로 경호처가 난색을 보인데다, 안가를 자주 이용하는 것이 '밀실 정치' 논란에 휩싸일 여지도 많고, 경제위기 탓에 공식업무가 산적해 최근에는 안가 이용을 삼가고 있다는 것이 청와대의 이야기다.권태호 기자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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