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뜸으로 120살까지 살아볼라요"

2008. 10. 10.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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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뉴스 쏙] 한겨레가 만난 사람 '침구사 부활운동' 펴는 구당 김남수 선생

'90대 스타'의 탄생이다. 아흔세살 구당 김남수 옹이 떴다. 지난 9월 중순 한 방송사의 추석특집 프로그램 '구당 김남수 선생의 침뜸 이야기'가 방영된 게 계기다. 덩달아 12년 전 첫 출간된 그의 책 <나는 침뜸으로 승부한다>도 단번에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라섰다. 출판업계 역사상 최고령 베스트셀러 작가로 기록될 참이다. 구당 본인은 어떤 사람일까? '뜸집'(灸堂)을 아호로 삼은 것처럼, 이 90대 노인은 침·뜸에 모든 인생을 걸고 살아온 사람이다. 50여년 전 법과 제도 밖으로 사라져버린 침·뜸을 제도로 되살리기 위해 싸워온 '투사'이기도 하다.

일요일인 지난 5일 오전, 서울 홍릉 네거리 구당빌딩 4층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1층은 침술원이고, 그가 사는 집은 5층이다. 2~4층은 뜸 교육 강의실과 사무실이다. 기자 개인적으로는 '노인의 날' 취재로 만난 100살 넘었던 할머니 이후 두번째 고령의 인터뷰 상대였다. 그는 나이보다 20년은 젊어보였다.

'청년'같은 아흔셋…하루 50명 환자 돌봐"침뜸은 비과학이 아니라 음양철학 이치서양의학 틀로 평가하려 나서면 안돼"

-직접 만나뵈니 정말 건강하십니다. 어떻게 이렇게 젊어보이십니까?

"다 침 하고 뜸 덕분이죠. 저하고 뜸 공부하는 회원들이 다 똑같이 이래요. 그래서 내가 침·뜸 살리기 하는 거요."

나이를 뛰어넘는 그의 건강함은 이미 방송에서 봤지만, 직접 보니 새삼 놀라웠다. 꼿꼿한 걸음걸이, 또렷한 발음, 깨끗한 피부, 그 어느 것도 아흔 노인의 것은 아니었다.

-일요일 아침에도 치료를 하시나요?

"정말 몸이 어려운 분들이 오시니까…. 평생 매일 환자 50명씩 치료해왔어요. 아침 6시부터 오후 5시까지 하루 종일 서서 치료합니다. 오줌도 안눠요. 사람이 늙으면 오줌을 자주 보는데, 종일 서서 침 놓고 뜸 뜨면 등이 땀으로 홀딱 젖어요. 오줌으로 나올 물이 없는 게지."

구당이 아흔 넘어서도 '부부관계'가 가능했다는 소문도 얼핏 들었지만, 올 초 세살 아래 부인을 잃은 그에게 확인하려 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인터뷰하러 들어오다 본 건물 1층에 붙은 '자격정지' 고지문에 대해 물었다.

"11월15일까지 45일 영업정지를 당했어요. 평생 처음이죠. 침사 자격증만 가지고 뜸까지 떴다고 그러네. 구사 자격증 있어야 한다면 우리나라에 뜸 할 수 있는 사람 아무도 없어요. 쉬라고 하니 나는 고맙지. 뜸에 동의하는 변호사들이 자격정지 취소 소송을 걸어야 한다고 하고 있어요."

-유명해져서 생기는 일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겠지요. 3년 전에도 방송에 나왔어요. 그 때도 사람들이 몇백명씩 왔는데, 주민들이 민원을 해서 경찰 백차가 오고 그랬어요. 다들 아파서 오는 사람들인데 누구는 치료해주고 누군 안 해줄 수가 있어야지. 괴로워서 그때 미국으로 가버렸지요."

-미국에요? 3년 전이면 연세가 아흔이셨을 땐데요?

"싸우기도 힘들고 해서 그래, 미국이나 가자고 혼자 갔지. 그런데 누가 미국에선 침 놓으면 잡혀간다고 합디다. '그럼 백인들한테 한번 해보자' 그랬죠. 백인들만 사는 데가 있냐, 오레곤이라고 해서 오레곤에 가서 침 놓고 뜸 떴습니다. 금세 소문이 나서 워싱턴에도 가고 뉴욕, 엘에이에 알래스카까지 침놓고 돌아다녔어요. 백인이라고 다른가? 환자는 병 낫게 해주면 다 고마워해요. 당연한 이치지."

그러나 그는 석달 만에 돌아오고 말았다. "그때 영주권을 준다고 해서 서류까지 가져갔었어요. 미국 공항에 내리니까 바로 영주권 준다고 달려들더라고. 상당히 고민했죠. 나라를 버려야 하나 하고 말야. 결국 그냥 돌아왔잖아요."

-다른 침구사들은 미국으로도 많이 이민갔다고 하던데요.

"나라가 인정을 안 해주니까. 침이나 뜸을 멸시하기 시작한 건 일제 때부터요. 조선 전통문화는 모두 배척했던 때잖아요. 그러다가 1951년에 국민의료법으로 하루 아침에 '의료유사업자'가 된 거지."

1960년대 침구사 시험이 없어져 새로운 세대의 침구사 될 길이 막히자 그는 당시 서울 태평로 국회의사당을 찾아가 '투쟁'을 시작했다. 정치인들에게 침·뜸의 효과를 알리고 법안도 내라고 촉구하는 일종의 '로비 겸 시위'였다. 지금도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구당을 모르는 이가 없다고 한다. 국회의원과 공무원들, 국회 출입기자들까지 그의 침·뜸을 경험한 이들이 수두룩하다. 90년대 중반에는 국회에 침뜸 봉사실이 따로 생겼다. 방송을 통해 알려지기 전에, '고관대작'들은 이미 그의 실력을 알고 있었던 셈이다.

-치료받은 유명인사가 한둘이 아니겠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침뜸이 비과학적이라고 무척 싫어했어요. 그 밑에 군 장성들은 한밤중에 몰래 날 불러다, 대통령 모르게 침 맞고 그랬지. 일(박 대통령 시해사건) 내기 하루 전날까지 김재규도 맞았고, 김영삼 대통령도 맞았어요. 국회의원은 너무 많고…, 힐러리 클린턴 보좌관도 왔다 갔는데."

-효과를 봤다면 국회의원들이 법을 만들었을텐데요.

"비겁한 사람들이에요. 저한테 병 고친 정치인들 수두룩한데도, 한의사들이 반대해서 어렵다는 거야. 된다고 한 적도 여러번인데 결국은 안 되더라고. 김재규는 박 대통령과 만나게 해주겠다고 했었고, 김영삼 대통령은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을 소개했었죠. 그래도 매번 되지는 않고…. 당신들은 좋다고 하면서 국민들은 앓아죽어도 좋냐고 대놓고 말하기도 했지요."

-한의사들은 왜 반대하는 걸까요?

"양의사들이 법 못 만들게 하는 거지. 국회의원들 얘기는 잘못된 거요. 이 법을 없앤 건 한의사들이 아니라 양의사들이야. 옛날 보사부 장관부터 직원들까지 전부 다 양의사들이고, 또 옛날엔 한의사라는 게 없었어요. 강도가 반대한다고 형법을 안 만들건가? 그대로 쓰세요, 그대로. 전에는 눈치 보고 그랬는데 이젠 안 그래요. 법 만들자는 건 아픈 사람 위해서, 국가 위해서 하는 거에요."

-의학계에선 침뜸이 검증되지 않아 위험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아무 말도 못하게 해놓고 비과학적이라고 말하면 되나? 이건 과학 이야기가 아니에요. 서양의학은 과학이고, 이건 음양철학의 이치요. 자기들 게 아닌데 자기들 틀로 이걸 생각하면 안되지."

그는 책장에 빼곡한 일본 침구학 잡지를 보여줬다. 침구사 제도와 이론이 잘 정립된 일본을 예로 들면서 침구학 이론이 서양의학 못잖다고 설명했다.

구당은 옛날에는 침·뜸이 위험한 면도 있었다고 인정했다. "옛날에는 뜸을 크게 떠야 좋다고 생각해서 화상을 입기도 하고 염증도 생기고 그랬지. 이젠 발달해서 쌀 반톨 만하게 여러 군데를 하지요. 침도 옛날처럼 굵지 않고 가늘어져서 신경이 끊어지고 그러지 않아. 지금은 죽이려고 해도 죽일 수가 없어요."

기자도 한번 웃통을 벗고 치료를 받아봤다. 앞뒤로 20여곳에 침과 뜸을 놨다. 결리던 어깨가 시원해진 느낌이었다. 배꼽 아래에 뜸을 뜨면서, 구당은 "여기가 기해, 관원 자린데, 기자 양반 부인 셋 둬도 될 거요"라며 웃었다.

구당은 부인 얘기를 꺼내자 눈물을 내비쳤다. 평생 그를 보살펴준 부인은 올 초 저세상으로 떠났다. "요기 홍릉 17평5작(17.5평) 연립주택에서 50년을 살았소. 침뜸 살린다고 침술원도 닫고 뛰어다니느라 고생깨나 시켰지요."

-수제자는 아드님이신가요?

"제자라는 말 난 안 써요. 침·뜸 배운 사람들은 다 붕어빵이요. 뜸자리만 알면 누가 하나 똑같이 할 수 있는 건데. 나한테 배웠다는 소리도 못 허게 합니다. 자식들한테만 가르쳐서 대 잇는 거 안하고 여러 사람이 알고 배우게 하는 게 좋은 거지."

하지만 구당의 침·뜸을 배운 이들은 모두 합법적인 침구사가 아니다. 일제 때 자격을 딴 합법적인 침구사는 현재 40여명뿐. 대부분 고령으로 손을 놓았거나 세상을 떠났다.

-언제까지 현역으로 뛰실 수 있으실 것 같습니까?

"송해(81·방송인) 선생이 다리 아파서 혼났다는데 지금은 뜸으로 안 아프다고 해요. 그 분하고 그랬지, 두 늙은이가 죽을 때까지 해보자고. 저 사람들 왜 그래 그러면 '뜸 떠서 그래' 그러자고. 해봐야 압니다. 120살까지 살아서 장가 한 번 더 갈라요."

글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사진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구당의 건강철학은약은 몸 스스로 만들게…침과 뜸은 '약발' 자극제

구당은 "오장육부가 제약공장"이라고 말한다. "몸에 필요한 모든 것이 우리 몸에서 만들어지므로 약을 빼 쓰면 된다"는 것이다. 이 '약창고'의 열쇠 구실을 하는 게 침·뜸이라고 설명했다. 침과 뜸으로 몸 속 약성분들이 원활히 흐르게 한다는 이야기다. 구당의 침뜸은 '무극보양뜸'. 전통 뜸을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단순화해 만든 것이다. 무극은 보편적이고 간편하다는 뜻에서, 보양은 건강의 가장 기본인 음식물 소화가 잘 되도록 한다는 의미로 붙여졌다. 몸에 있는 8개 경혈 12자리(여성은 13자리)를 골라, 쌀 반톨 크기로 쑥뜸을 뜬다. 침은 스스로 못해도 뜸은 혼자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한의학계와 기존 의료계에서는 "전문 지식 없이 함부로 집에서 뜸을 뜨다가는 오히려 병을 키우고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한다. 그러나 구당은 "과거에는 그랬을지 몰라도 이제는 그런 일이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구당은 자신이 현대의학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의사들이 적극적으로 침을 활용할 길이 열린다고 주장한다. "의학은 본디 하나요. 양의학이니 한의학이니 구분한 건 자기들 좋으라고 한 거지. 병 고치는 게 옳은 거죠. 의사들도 침 배워서 수술해야 할 땐 하고, 침으로도 될 땐 침 놓으라 이겁니다."

김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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