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 벼랑 끝 몰린 사람들] <1> 10년의 절망 IMF학번

2008. 10. 15. 0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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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눈물만은 참았다… 살기위해 얼마나 발버둥 쳤던가… 이젠 눈물마저 말랐다네 집중 한 집 적자… 또 실직·폐업 '악몽'… "10년前보다 힘들어"

수십 층 빌딩 외벽을 밧줄 하나에 의지해 오르내리며 방사선으로 철골구조 안전검사 일을 하는 강모(34세)씨는 요즘 불면증이 도졌다. 4개월 만에 또다시 실업자가 될지 모른다는 불안 때문이다. 1998년 그는 금속업체를 다니다 실직을 당했다. 아버지 빚 때문에 저축을 다 날렸고, 신용카드 돌려 막기로 버티다 신용불량자가 됐다. 주는 대로 받겠다고 해도 신불자를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배가 고파 헌혈만 60번을 했고, 73kg이던 체중은 47kg으로 줄었다. 2004년 밀폐용기 제조회사에 간신히 들어갔지만 매출감소로 2년 뒤 다시 거리로 나와야 했다. "지금 제 월급이 200만원인데, 제가 올린 매출은 130만원 밖에 안됩니다. 이 회사에서 또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1997년 외환위기 직전만해도 안정된 은행원이었던 김모(52세)씨는 이제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다. 'IMF 퇴출'의 칼바람을 맞은 김씨는 퇴직금 등 2억5,000만원으로 한식 음식점을 시작했지만 2년여 만에 정리해야 했다. 남은 건 보증금과 권리금 8,000만원. 다시 치킨점을 차렸지만 조류독감으로 주저앉고 말았다. 그나마 건진 3,000만원에 대출을 보태 6,000만원으로 재개한 업종은 막걸리 전문점. 그러나 최근 불황으로 폐업을 하고 부인은 파출부, 자신은 택시기사를 하며 간신히 생계를 꾸리고 있다.

세계적 금융위기로 인한 경제불황이 저소득 서민들을 또다시 악몽 같은 'IMF 상황'으로 내몰고 있다. 이들에게는 지금이 10년 전보다 오히려 더 힘들다. 또다시 실직과 폐업의 허허벌판에 내몰린다면 이제는 정말 일어설 기력조차 없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버는 것보다 쓸 곳이 더 많은 적자가구는 이미 6년 만에 최고수준을 기록했다. 올 2분기 적자가구비율은 네 집 중 한 집 꼴인 28.1%에 달했다. 벌이가 급등한 물가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 가장 못사는 하위 20% 가구는 매달 버는 것에다 38%는 빚으로 더 메워야 생계가 유지된다. 그러나 저소득 서민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는 불황은 아직 서막에 불과하다. 수출이 줄고 자금줄이 막힌 기업이 구조조정에 들어가게 되면, 중산층이 본격적으로 소비를 줄이기 시작하면 그야말로 저소득 서민들은 기댈 곳이 없다.

누구보다 칼날 위에 선 사람들은 10년 전 눈물을 머금고 직장을 나와 창업으로 살길을 찾았지만, 결국 영세 자영업자로 전락한 수많은 IMF 퇴직자들. 10년 전에는 퇴직금이라는 재기의 밑천이라도 있었지만, 이제 자영업에서조차 퇴출되면 곧바로 빈곤층이다. 이들의 빈곤층화는 이미 현실화하고 있다. 올 상반기 폐업한 음식점만 전국 3만609곳, 휴업한 음식점은 8만9,144곳에 달했다.

참혹한 취업난과 구조조정의 살벌함을 겪고 이제야 겨우 얄팍한 기반의 끝 자락을 잡은 IMF 직후 졸업 세대 역시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미 30대 중반인 이들을 받아줄 일자리도 없을 뿐더러, 이들 스스로 이제 더 이상 버텨낼 의욕조차 없다.

불황의 그림자는 빈곤가족 전체를 한계적 상황으로 내몰고 있다. 생활고에 몰린 기혼여성들이 취업전선에 뛰어들면서 여성경제활동인구는 지난 8월 기준으로 1년 사이 5만5,000명이 늘었고, 서울의 결식아동은 4만 명을 넘어섰다. 유경준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이번 경제침체로 빈곤층이 더 늘어나고, 기존 빈곤층은 극빈곤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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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률기자 bryu@hk.co.kr

진성훈기자 bluej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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