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대 조롱·자극..도 넘은 남대문경찰서장

2008. 5. 31. 10:4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겨레] 김원준 서장 "추잡한 모습을 보이지 않기 바랍니다"

'돌출발언' 시위대 자극하다 결국 다툼 이어지기도

30일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3만여 시민과 경찰이 2시간 동안 대치한 서울시청 앞 태평로 왕복 11차선 도로 위에서 난데없는 '입심대결'이 벌어졌다. '시민 지킴이' 예비군들의 국방색과 전경 기동단의 남색 선이 2m사이를 두고 서울 남대문경찰서 김원준 서장과 촛불을 든 시민들이 벌인 설전이었다.

■ 마주선 대열, 시작된 대화

이날 저녁 10시께 시청 앞 서울광장-종각역-숭례문을 거쳐 시청 앞 태평로에 이른 시민들은 경찰이 쳐 놓은 저지선과 마주쳤다. 김원준 서장이 시민들을 향해 말문을 열었다. 김 서장은 "여러분의 의견이 소중한 만큼 시민들의 퇴근길 편의도 중요합니다. 모두 시청 앞 광장으로 올라가 주십시오. 여러분의 아름다운 마음만큼 아름다운 마무리를 보여주십시오"라며 시위대의 해산을 유도했다. 이에 시민들은 "협상무효 고시철폐" "이명박은 퇴진하라" 등의 구호로 화답했다. 뒤로도 김 서장은 "여러분이 촛불을 드신 그 마음만큼 아름다운 마무리를 보여달라"고 부탁했다. 그 때마다 시민들은 구호와 노래로 화답했다.

■ 회유에 대항하는 유머

잇따른 '읍소 작전'이 효과를 거두지 못하자 김 서장은 '회유'를 더했다. 김 서장은 "'집으로'라는 영화도 있습니다. 이제 갑시다. 집으로", "지하철·버스로 이동하는 시민들 대단히 감사합니다. 마무리를 하시고 아름다운 정리를 해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또 시민들이 단체로 애국가를 제창하자, 김 서장은 이에 대해서도 "노래 잘 들었습니다. 일절만 하고 시청 앞 서울광장으로 올라가는 것으로 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한 시민들의 무기는 유머였다. 시민들은 애국가를 부른 뒤, 서장에게 "노래해. 노래해. 노래하면 올라간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전국민에게 애국가만큼 익숙한 노래, "노래를 못하면 '진급'을 못해요 아 미운사람~"이 태평로 거리를 가득 메웠다. 이에 김 서장이 "여러분이 시청광장에 올라가시면 노래하는 것을 생각해 보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시민들은 "여기서 여기서"를 연호하는가 하면 한발 더 나가 "개인기 개인기. 춤춰라 춤춰라"로 점차 요구 수위를 높였다.

■ 유머의 선을 넘나드는 조롱

그러나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계속 유지되지는 않았다. 김 서장의 입담이 '회유'와 '유머'를 넘어 '조롱'을 넘나들면서, 시민들은 격앙되기 시작했다. 김서장은 11차선을 가로막은 시민 대열 사이에서 구호가 일치되지 않자, "여러분끼리도 통제가 안되십니까?"라고 말했고, 시민들끼리 결집하기 위해 서로 팔짱을 끼자, "이탈자가 생길까봐 서로 팔짱을 끼고 있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 때마다 시민들은 "너네 월급 세금이다. 전경들만 불쌍하다. 어청수 성매매" 등의 구호로 맞섰다. 대치 시간이 길어지면서 김 서장은 시민들을 상대로 "여러분 그렇게 왔다갔다 하고 악을 쓴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김 서장은 또 시위대와의 대치가 밤 12시를 넘어서자, "여러분은 돈이 많으셔서 전부 택시를 타고 돌아 가십니까?"라고도 말했다.

결국 시위대 자극과 다툼으로도를 지나친 김 서장의 발언은 오히려 시민들을 자극해 흩어져 가던 대오를 재결집시켰다. 시민들의 애국가 제창이 끝나자, 김서장은 "우향우"라고 명령조로 말했고, 이에 시민들은 "우리에게 명령하는 것이냐?"라며 경찰을 향해 "뒤로 돌아"라고 소리질렀다. 경찰이 채증 사진을 찍는 탓에 고개를 숙인 '예비군 시민 지킴이'들에게도 "부끄러워 고개를 숙이고 계시는 예비군복 입으신 분들"이라고 말해 야유를 받았으며, "여러분 추잡한 모습을 보이지 않기 바랍니다. 이렇게 왔다 갔다 하며 악을 쓴다고 해서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등의 발언이 쏟아져 나왔다. 또 시민들이 도로에 가득찬 전경 버스를 가리키며 "불법주차 단속하라"고 외치자, 김 서장은 이에 대해서도 오히려 "불법점거 즉시중지"라고 구호를 외쳤다. 이때마다 시민들의 구호는 "어청수 성매매. 쇼를 해라 쇼를 해." 등으로 수위가 높아졌고, 인도 등으로 이탈했던 많은 시민들이 다시 도로로 나서기도 했다.

■ 이어지는 돌출행동

김 서장의 돌출발언은 돌출행동으로도 이어졌다. 도로에 넘어진 임아무개(32)씨를 보지 못한 전경 버스가 그대로 직진해 큰 부상을 입을 뻔한 아찔한 상황에, 화가 난 시민들을 만난 자리였다. 김 서장은 경찰-시민 대치선을 넘어, 시민 100여명이 차를 막고 있던 플라자 호텔 앞 길로 향했다. 화난 시민들이 서장을 둘러싸고 사과할 것을 요구하는 이 때, 김 서장은 "여러분은 지금 경찰서장을 불법 감금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해 일촉즉발의 분위기를 만들었다. 이 가운데 한 중년 시민이 김 서장에게 고함을 지르며 침이 튀자, "침 뱉지 마십시오"라고 말하기도 했다. 결국 시민 50여명이 김 서장과 10여명의 경찰 관계자를 둘러싸고 고성이 오가자, 전경 병력이 김 서장을 '구출'하기 위해 몰려들었고, 갑작스런 몸싸움이 일기도 했다.

'오히려 시민을 자극한 것 같지 않느냐'는 질문에 김 서장은 "부드럽게 넘어가려고 그렇게 말했던 것이고, (재결집됐던 것은) 일부 센 사람들이 그랬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안진걸 참여연대 민생희망팀장은 "시위대 진압 메뉴얼 같은 것을 보면 시위대를 자극하는 발언을 하지 않도록 돼 있다"며 "불필요한 발언으로 오히려 시위대를 자극하는 것은 사고의 위험성만 높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 한겨레(http://www.hani.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신뢰도 1위' 믿을 수 있는 언론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한겨레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