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진]현대판 부관참시가 백주대낮에 일어나다

2005. 12. 7.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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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연산군시절 죽은 자에 대한 테러가 있었으니 바로 훗날 영의정으로 추증된 김종직(金宗直, 1431~1492)의 부관참시였다. 21세기 백주대낮에 이와 비슷한 사건이 일어났다 하니 필자는 조선시대로 되돌아간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파주 보광사에 안장된 미송환 장기수들의 묘비를 대한민국애국청년동지회(회장 오복섭)와 지역 주민들이 파손했다(한겨레 12월6일)는 보도를 접하며, 아직도 냉전의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있구나 하는 착찹함을 갖는다.

북파공작원(hid) 모임은 두 곳이 있나보다. 위에서 언급한 "대한민국애국청년동지회"와 "대한민국 특수임무수행자 유족동지회"라는 모임이다. 필자가 두 곳의 홈페이지를 검색한 결과 청년동지회는 다분히 정치적인 결사체이고 유족동지회는 순수 친목회라는 느낌을 받았다.

이번에 문제가 된 것은 묘지 자체가 아니라 묘비의 내용을 문제 삼은 것이다. 조선일보가 11월 30일 보도하고 12월 1일 대한민국안의 "애국열사릉" 운운하며 사설을 실었다. 이에 화답하듯 대한민국애국청년동지회에서는 묘비철거를 선언하고 실행하였다.

그곳에 묻힌 사람들은 스스로 전향했는데도 고문과 폭행에 숨진 사람(손윤규 76년 사망)이거나, 전쟁 통에 남편을 찾아 산으로 들어갔다 체포되어 23년을 옥살이 하다가 결국 고향이 남한이고 전향을 했다는 이유로 북송이 거부되다 암으로 세상을 떠난 사람(정순덕 2004년 사망)이며, 남쪽 혁신운동 출신(류낙진 2005년 사망)도 있으나, 나머지 세 명은 남파된 후 곧 체포되어 그 값을 치른 이들(정대철, 최남규, 금재성)이다.

그들의 동료나 지인들이 고인들의 평소 뜻을 받들고, 자신들 입장에서 해석한 내용을 조각하여 비석을 세웠을 것이다. 이는 그 누고도 나무랄 수 없는 사적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것을 침소봉대하여, 마치 정부의 묵인 하에 조직적으로 이루어진 대한민국 정체성 부정행위로 간주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남북이 공동으로 유엔에 가입하고, 남북 정상이 상봉했을 때 온 겨레가 얼마나 희망에 부풀었는가. 그런 성과로 남쪽기업이 개성공단에 진출하여 왕성한 생산 활동을 벌이는가 하면 금강산을 내 집 드나들 듯 하는 이때,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비문하나로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한편 고인이 된 6인의 장기수들이 한평생을 지켜온 신념 또한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는 민주사회에서 다양성으로 포용하고 존중되어야할 기본 가치인 것이다. 유엔인권위나 국제사면위원회에서 국가보안법의 폐지를 끊임없이 권고하는 이유는 그것이 사상과 양심에 대한 인간의 기본권이기 때문이다.

묘비에 쓰인 글귀가 다소 신경을 건드린다 할지라도 평화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얼마든지 풀 수 있었다. 그 시간 관계자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었기에 더욱 안타깝다. 진보건 보수건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애정이 있어야 한다. 그 혹독한 군사독재 시절에도 소위 간첩의 시신은 염하여 북녘 땅이 보이는 곳에 묻어 주었다(경기도 파주 장파리 북한군 묘역). 하물며 냉전이 물 건너간 21세기에 이루어진 죽은 자에 대한 해코지는 어떠한 정치, 이념으로도 정당화 할 수 없다.

따라서 이번에 성역이라 할 수 있는 종교영역을 침탈하여 망자에 대한 테러를 저지른 행위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또한 냉전의 시대가 가고 한반도에 화해의 물결이 넘치는 이때 냉전의 부활을 부추기는 조선일보는 스스로 반성하기 바란다.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필자, 기자가 참여한 <필진네트워크>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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