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원회 줄줄이 해체 "과거사 묻히나"
국가 차원의 과거사 위원회들이 활동시한이 종료되며 줄줄이 문을 닫고 있다. 미제 사건들이 산적한 데도 활동시한이 연장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활동시한이 남은 기구 역시 엄정한 과거사 규명에 대한 의지가 떨어지는 인물로 교체되면서 사실상 '식물화'하고 있다. 9일 오후 국회에서는 민주화운동계승연대·민변 과거사위원회 주최로 '과거 청산 및 전망' 토론회가 열렸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의지가 없는 이상 국가 차원의 위원회 존속이 무의미하다"며 "외부조건에 흔들리지 않도록 과거사 관련 법 제도의 정비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줄줄이 문닫는 과거사기구=군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는 오는 31일로 4년간의 활동이 끝난다. 지난해 12월 유가족들의 요구로 시한을 1년 연장했지만 활동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현 정부 들어 위원장의 직급이 장관급에서 차관급으로 하향조정된 데 이어 실무진이 대폭 교체되고 인력도 크게 줄었다. 접수된 600건을 모두 처리했지만 진상을 밝혀낸 것은 246건(41%)뿐이었다. 48건은 '진상규명 불능'으로 처리됐다. 조사권한 부족으로 증거자료 수집이 어려웠다는 불만이 제기됐다.
앞서 친일진상규명위원회도 지난달 활동을 종료했다. 친일인사 1005명의 행적이 담긴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보고서'를 최종 결과물로 내놨다. 규명위 관계자는 "위원회 특별법상 규정된 일은 100% 처리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친일규명이 미흡하다는 목소리 역시 높았다. 활동종료 행사에서 성대경 위원장은 "40년간의 일을 마무리하기에 4년 6개월이란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내년 4월 업무를 마치고 10월에 모든 활동을 종료한다. 처리 대상인 총 1만1031건 중 8229건(74.6%)에 대한 처리를 완료했다. 이 중 진실규명은 6434건(58.4%), 137건은 진실규명불능으로 처리됐다. 2년까지 활동연장이 가능하지만 가능성은 낮다. 위원회 관계자는 "현 정부나 신임 이영조 위원장이 연장을 하지 말자는 쪽이어서 활동시한 연장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과거사 이대로 묻히나=과거사 위원회들은 대개 시한이 끝나면 추가 활동 계획이 없다. 위원회마다 법률상 후속조치로 재단 등을 설립해 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돼 있지만 현실적으로 이뤄진 경우는 없다.
진실화해위의 경우 사건 대다수를 차지하는 '민간인 집단 희생 사건'(3592건)에 대한 우려가 크다. 사건 특성상 장기간의 조사 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해체 이후 이 같은 사건들을 장기적으로 조사할 '과거사 연구재단' 설립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현재로선 계획이 불투명하다. 민간인 집단 희생 사건의 배상 문제도 남아 있다. 진실화해위의 결정은 배상과 관련해선 구속력이 없다. 때문에 피해자 유가족들이 개별적으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잇따라 제기하고 있다.
◇후속조치 마련돼야= 위원회의 미흡한 조사 결과에 피해자와 유가족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한국전쟁전후민간인피학살자전국유족회 오원록 상임대표는 "한국전쟁 때 100만 민간인이 희생됐는데 겨우 1만여건 정도만 규명이 된 상태다. 미신청 유족들의 사건 처리, 사과 표명 등 명예회복, 배·보상, 추모 위령사업 등 수많은 후속 조치가 남아 있다"며 "정치적 목적으로 과거사 청산 움직임을 뒤집으려는 시도에 유족들은 분노한다"고 말했다. 김희수 전북대 교수는 "민주화운동보상심의위가 기간 연장을 했는데 거꾸로 예전 결정사항까지 번복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과거사 청산 문제가 정권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흔들리지 않도록 관련 법체계를 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서중석 성균관대 교수는 "과거사 관련법들의 제정 취지를 살릴 수 있는 과거사 통합 법안 등 법 재정비가 필요하다"며 "위원회가 해체되더라도 관련 재단 등을 만들어 추모 위령사업, 역사 교과서 기록사업 등이 가능케 해야 과거사 청산 활동을 제대로 마무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이로사·황경상기자 ro@kyunghyang.com >- 대한민국 희망언론! 경향신문, 구독신청(http://smile.khan.co.kr) -ⓒ 경향신문 & 경향닷컴(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경향닷컴은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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