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신창이 의료개혁안 차라리 죽여버리자?

2010. 1. 3.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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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이유경 기자]크리스마스 이브인 지난 24일 아침 7시, 99명의 미국 상원의원들은 우여곡절 끝에 의료개혁 법안을 통과시켰다. 정확히 정당 의석수에 따른 투표 결과였다. 60 대 39.

지난 한 세기 동안 민주당, 아니 미국 진보진영의 숙원이었던 '유니버설 헬스케어(전국민 의료보험)'. 가장 힘든 고비인 상원의 문턱도 무사히 넘겼건만 그 후유증이 심상치 않다. 미국 진보진영의 분열은 물론 이들 내부에서 오바마 리더십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감이 쏟아져나오고 있다. 진보 진영이 주장했던 것의 많은 부분이 상원안에서 철회되거나 축소됐기 때문이다.

정부 주도의 의료보험인 퍼블릭 옵션(공공보험)이 철회되어 사보험과의 가격 경쟁을 통한 보험료 인하 계획이 무산됐고 저렴한 외국약의 수입이 금지됨으로써 미국인들은 비싼 미국약에 계속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됐다. 낙태비용 지불 방식을 더욱 까다롭게 만들어 사보험 회사의 낙태 보험 제공을 더욱 불가능하게 했고 불법 이민자들의 건강보험 구입은 더욱 어려워졌다.

무엇보다 진보진영이 분노한 가장 큰 이유는 이같은 개혁성의 후퇴가 바로 오바마가 월가와 워싱턴의 기득권층에게 철저히 항복한 결과라고 보기 때문이다.

의료보험 개혁안이 보수층의 반발에 부딪쳐 상당 부분 후퇴한 채 통과되자, 오바마에 기대했던 미국 진보진영의 실망감이 커지고 있다.

ⓒ 백악관 홈페이지

국민세금으로 기득권층 수호하는 오바마?

인터넷신문 < 허핑턴 포스트 > 의 편집장 아리아나 허핑턴은 노스웨스턴 대학의 보고서를 인용, "이번 법안과 관련해서 13명의 전직 의원과 166명의 의원 보좌관들이 338개에 달하는 로비 회사의 전직 동료들과 활발한 거래를 했으며, 이 과정에서 6억 3500만 달러(약 7천억원)에 달하는 로비자금이 사용됐다"고 지적했다.

그 결과 "미국 국민들은 조잡한 (보험)상품을 강제로 구입하게 됐고, 보험회사들은 국민의 세금으로 이득을 거둘 발판을 마련했다"며, "지난 1년간 오바마 행정부를 지켜본 결과, 국민 세금으로 사기업의 이익을 보조하는 것이 그들의 버릇처럼 됐다"고 비난했다.

에모리 대학의 드류 에스튼 교수는 "그가 믿는 것이 뭔지 모르겠지만, 있다 해도 그 믿음을 위해 싸울 열정을 끌어모으지는 못하는 것 같다"며, "원하는 것을 항상 얻을 수는 없다고 (오바마는) 말하지만, 원칙에 대한 문제에서는 돌을 들기도 해야 하며 그것만이 국민들의 존경을 얻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계속 오바마가 지금처럼 한다면, 그는 민주당과 진보진영의 흐름을 수십년 뒤로 퇴보시킬 것"이라며, "일반 미국인들은 그들이 목도하는 것을 '리버럴리즘'이라 믿을 것이기 때문"이라며 오바마를 맹비난했다.

"개혁성 없는 의료 개혁안, 차라리 죽이자!"

민주당은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는 하원과 달리, 상원에서는 공화당의 의사진행 방해를 막기위해 무슨 수를 써서라도 60표를 확보해야만 했고, 그 과정에서 중도-보수 성향의 민주당 의원과 무소속 의원을 잡기 위해 '곶감 빼 먹듯이' 의료개혁안의 핵심 사안들을 하나 둘씩 빼줬다.

진보 진영에서는 당연히 퍼블릭 옵션 등이 빠진 상원 의료개혁안에 반대를 했고, 민주당 의장이었던 하워드 딘은 "이 안은 (작년 금융위기때) AIG를 구제했던 것보다 더 큰 규모의 보험회사 구제안인데다 보험회사들에게는 꿈의 법안"이라며, "의료 개혁안이 실질적으로 미국 상원에서 무너졌으며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은 상원 안을 죽이는 것"이라고 의료 개혁안 자체의 폐기를 주장하고 나섰다.

민주당 상원과 오바마에게 배신을 당했다고 생각하는 미국의 노조 연합단체 AFL-CIO와 미국 최대의 노조인 SEIU(Service Employees International Union)도 "오바마 대통령은 선거 유세에서 자신이 했던 말을 기억해내야 한다"며 "'예스 위 캔'이라는 그의 구호는 우리에게만 향한 것이 아니라 그 스스로에게도 해당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그들은 이어 "(오바마는) 의료보험 개혁의 의미를 되살리기 위해, 진정 의미있는 개혁을 국민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죽을 각오로 싸워야 한다"고 설파했다.

데일리코스(Daily Kos)나 무브온(MoveOn.org)등의 진보 단체들도 오바마가 적과 맞서 싸우기에 충분히 강하지 않으며, 싸우기도 전에 항복부터 하려 든다고 그를 비난했다.

이미 오바마의 경기 부양책과 월가 규제책을 지켜보면서 그의 개혁성과 진정성에 의구심을 던지기 시작했던 미국의 진보 진영. 아프간 파병 결정으로 그 회의감이 커지더니, 이번 의료 개혁안 진행과정을 통해 오바마와 완전히 등을 돌릴 기세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정말 그들의 말처럼 오바마가 변심한 걸까?

"오바마는 체제 안에서 변화를 도모하는 정치인"

26일 < 뉴욕 타임스 > 의 아담 맥거니 기자는 지난 대통령 유세기간 동안 많은 사람들이 오바마를 자기가 보고싶은 대로만 봤다고 주장했다. 리버럴과 진보주의자들은 그를 자신들과 같은 부류로, 무당파는 '당파성을 뛰어넘은 정치인'으로, 심지어 공화당에 실망한 유권자들은 그를 부시가 못 지킨 약속을 지킬 정치인으로까지 여겼다는 것이다.

그러나 워싱턴의 '아웃사이더'로 인식된 것 만큼이나 오바마는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서 기존의 시스템과 언제든지 함께 일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라고 맥거니는 지적했다. 빵의 반을 기꺼이 포기하더라도 남은 반쪽의 빵을 얻고야 말겠다는 사람이 바로 오바마라는 것이다. 그가 주 상원의원과 연방 상원의원을 거쳐 백악관에 입성했다는 사실, 그리고 그의 비서실장 또한 미 하원 내 서열 4위의 의원 출신이라는 점은 오바마가 얼마나 정치적 타협에 익숙한 사람인지를 보여준다.

이같은 시각은 이미 < 뉴욕커 > 의 라이언 리자 기자도 피력한 바 있다. 그는 "오바마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아마도 그가 '기득권에 반대하는 혁신주의자'로 인식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그의 정치경력을 살펴보면 매 지점마다 그는 기존의 제도를 무너뜨리거나 교체하려기 보다는 그것에 스스로를 맞추려고 노력해왔다"고 적었다.

< 뉴욕 타임스 > 의 칼럼니스트 로스 다우뎃도 25일 사설에서, "오바마가 워싱턴의 냉소를 씻을 무당파적인 치유자인양 선거 유세를 했지만, 그는 기성 시스템을 믿고 그 작동방법을 알며, 그 안에서의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전형적인 리버럴처럼 국가를 경영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24일 해리 리드 미국 민주당 원내대표가 의료개혁법안의 통과를 발표하고 있는 모습을 전하고 있는 < 워싱턴타임스 > 인터넷판.

ⓒ 오마이뉴스

등돌린 진보진영 대부분은 경제적으로 자유로운 계층

그러나 12월에 발표된 NBC/월스트리트저널 공동 여론조사를 보면, 오바마에 대한 진보 진영의 지지도는 여전히 79%에 이른다. 또한 같은 기간 갤럽의 경우도 민주당 지지자의 76%가 오바마의 의료 개혁안을 지지하고 있다.

24일 < 내셔널 저널 매거진 > 의 로널드 브라운스테인 기자는 의료 개혁안 때문에 오바마를 비난하는 좌파들 대부분이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대졸 이상의 백인으로, 경제 침체나 의료 보험 문제로부터도 비교적 자유로운 사람들이라고 지적했다.(미 통계청에 따르면, 흑인의 19%, 히스패닉의 31%가 무보험 상태이며, 대졸 백인은 6%에 그친다.)

오바마 행정부의 경기 부양책과 월가 규제안의 대표적 비판자인 폴 크루그먼 교수는 최근 < 뉴욕 타임스 > 사설에서 "오바마에게 실망했다고, 구역질 난다고 선언하자…(중략) 하지만 그래도 의료 개혁안은 통과시키자"고 주장했다. 이 법안이 통과되기만 하면 불과 몇 년전만 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의료 혜택이 미국 국민들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현재 3천만명에 달하는 무보험자들이 건강 보험을 얻을 수 있고 무한대로 치솟는 의료수가 행진을 막을 수 있다.

그는 "더 좋은 것을 얻고자 불완전한 법안을 파기하는 것은 결국 아무 것도 얻지 못하는 길로 갈 뿐"이라며 일부 진보진영의 자성을 촉구했다.

딕 더빈 상원의원(민주, 일리노이)은, "하워드 딘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의사인 그는 3천만명의 미국인들이 드디어 의료보험을 얻게 된다는 것의 의미를, 생애 처음으로 마음의 평화와 보호를 갖게됐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93년 의료개혁안 통과에 실패했던 빌 클린턴은 "미국은 역사적인 기로에 놓여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책임있는 선택은 행동하는 것이다. 이 법안이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을 담고 있는가? 물론 아니다. 그러나 미국은 완벽함이 좋은 것의 적이 되도록 놔둘 여력이 없다, 이제 와서 이번의 노력을 수포로 돌리는 것은 거대한 실책이다"며 일부 리버럴들의 의료개혁안 반대를 비판했다.

오바마가 놓인 정치적 현실

전임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물려받은 경기 침체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을 빼고도 오바마가 해결해야 할 난제는 쌓여있고, 그 문제를 해결할 미국의 정치 지형은 극도로 악화돼있다.

미국 의회는 극심한 당파성으로 그 어느 때보다 양당 공조가 불가능한 실정이다. 이미 드러난 바와 같이 역사적인 의료 개혁안에서조차 공화당은 오로지 한 명의 하원의원만이 민주당과 공조했을 뿐이다.

당파성이 문제되기 시작한 클린턴 재임시에도 의원들은 상대당 의원들에게 손을 내밀곤 했다. 특히 역사적인 법안에서는 더욱 그랬다. 가령 1965년의 메디케어 법안에서는 68대 21로 13명의 공화당 의원들이 55명의 민주당 의원들과 힘을 합쳤고, 7명의 민주당 의원들은 14명의 공화당 의원과 함께 반대를 했다.

올림피아 스노우 상원의원(공화, 메인)은 "(요즘은)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위험한 일은 결코 하지 않으려 한다. 분열을 뛰어넘어 더 많은 유권자에게 가까이 하려는 노력에 어떠한 이득도 따라오지 않는다. 타협은 완전히 물건너갔다"며 현재 미국의 정치 현실을 개탄했다.

멕스 바커스 상원의원(민주, 몬태나)도 "아무도 더 이상 그 곳(상원 의원전용 식당)에 가지 않는다, 지난 30년 동안 그 곳에서 다른 동료의원들을 만나 서로 머리를 숙이고 의견을 나누곤 했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비었다"고 했다.

"우리가 필요한 것은 숫자다"

크루그먼은 "역사가 주는 교훈을 마음에 새기자, 사회보험 제도는 그 시작이 매우 불완전했으나 세월이 흐를수록 점점 더 개선되고 많은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었다"고 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터프하지 않다, 만약 우리가 공화당 의원들이었다면 벌써 이 법안이 통과됐을 것"이라고 토로하는 하워드 딘에게 MSNBC의 정치 평론가 크리스 매튜는 이렇게 맞섰다.

"그것은 대중 선동이다, 당신도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없다는 것을 알지 않는가? 민주주의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당신은 모르나? 바로 그렇기때문에 당신이 대통령이 못된 것이다. 숫자다. 우리가 필요한 것은 숫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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