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역·원산지 단속 공무원 96% "쇠고기 협상 잘못"
ㆍ간부들이 "설문조사 결과 공표 말라" 압력
미국산 쇠고기 검역과 원산지 단속업무를 맡고 있는 수의과학검역원(검역원)과 농산물품질관리원(농관원) 소속 공무원들을 상대로 한·미 쇠고기 협상 결과에 대한 설문 조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두 기관의 간부 직원들이 노조 측과 직원들에게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하지 말라는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농림수산식품부 산하기관인 검역원과 농관원의 공무원들은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실무를 담당하면서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설문조사 결과가 공개되면 국민 여론에 미칠 파장이 만만치 않아 두 기관의 간부 직원들이 설문조사 결과 공표를 막으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30일 전국민주공무원노조(민공노) 검역원과 농관원 소속 6급 이하 노조원 664명을 대상으로 한·미 쇠고기 협상에 대해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96%가 "문제가 있으므로 보완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 "설문조사 하지 말아 달라" = 1일 민공노 등에 따르면 검역원의 한 간부는 한·미 쇠고기 협상에 대한 설문조사가 실시된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검역원과 농관원이 설문조사를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입장을 검역원 노조 측에 전달했다. 또 농관원의 일부 간부 직원들도 설문조사를 실시하지 말고, 결과도 공표되지 않도록 노조 등에 요청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설문조사는 두 기관의 6급 이하 공무원 664명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설문 응답자들이 중·하위직인 데다 공무원 사회의 분위기를 감안하면 설문조사를 하지 말아달라는 간부 직원들의 말은 요청이나 권유가 아닌 압력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크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여론조사 결과 발표를 막으려고, 두 기관에 비상이 걸렸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분위기 때문인지 지난달 29∼30일 이뤄진 설문조사는 검역원과 농관원의 내부 전산망에 있는 설문조사 프로그램을 이용하지 않고, 무료로 설문조사를 대행해주는 업체를 통해 실시됐다. 내부 전산망으로 설문조사가 이뤄지면 직원들이 불안해 하고, IP를 추적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전산망을 차단하면 설문조사가 중단될 수 있다는 점도 고려됐다.
◇ "96%가 쇠고기 협상 문제있어" = 민공노가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쇠고기 협상을 양국간 기술적 협의·타결로 보느냐, 아니면 정치적 타결로 보느냐'는 질문에 93%가 '정치적 타결'이라고 답했다. 또 '쇠고기 수입과 관련해 검역 강화대책을 수행할 인력 및 예산 등 자원은 충분하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94%가 부정적으로 응답했다.
한편 민공노 검역원과 농관원 노조 지부 홈페이지에는 "국민의 편에 서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재협상을 촉구하는 글들이 잇달아 올라오는 등 공무원 사회의 동요 조짐이 뚜렷해지고 있다.
<오관철·정제혁기자 >
-"우리가 영혼 없는 홍보부대인가…단속원 확대는 숫자놀음-
전국민주공무원노조가 검역·원산지 단속 공무원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기타 의견'란에는 이들의 답답함과 격정이 고스란히 나타났다. "수입 쇠고기 급식의 마루타가 되기 싫다" "우리가 영혼없는 홍보부대냐"는 자조까지 다양했다.
농산물품질관리원의 한 공무원은 "이번 협상은 대통령의 방미 일정과 연관시켜 졸속타결됐을 가능성이 99%"라며 "이렇게 굴욕적이고 졸속적인 협상이 이 나라의 협상능력인지 자괴감이 든다"고 말했다. 다른 직원은 "무조건 밀어붙이는 방식은 군사정권때나 통했다. 민심이 천심인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상식"이라고 울분을 토했다.
수의과학검역원의 한 공무원은 "정책을 결정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현재 주장하고 있는 모든 내용을 기록으로 남기고, 그 기록에 따라 추후 벌어질 모든 불행에 대해 하나하나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정부가 내놓은 검역·원산지 단속 강화방안도 신랄한 비판대에 올랐다. 한 공무원은 "원산지 단속 인력 증대는 한 마디로 숫자놀음"이라며 "다른 일은 접어두고 원산지 단속만 할까? 지나가는 개도 웃을 일"이라고 말했다.
공무원 신분에 대한 고뇌도 이어졌다. 한 직원은 "정부의 정책을 무조건적으로 옹호하는 것이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없는 행동인지 고민"이라며 "신분상의 이유로 과학적 진실을 외면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정제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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