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타에 주눅든 한국영화 '3D 딜레마'

2010. 1. 21.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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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외화관객 1000만' 탄식 혹은 희망

3디(3차원 컴퓨터 그래픽)를 내세운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영화 <아바타>가 이번주 안에 1000만 관객을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외국 영화로는 처음 '천만 영화' 대열에 오르게 된 <아바타>에 대해 관객들의 일방적인 환호와 달리, 국내 영화인들의 반응은 복잡하다. 대자본을 앞세운 할리우드의 습격에 망연자실하면서도, 대안 찾기에 분주하다. 이것이 바람직한 영화의 미래인지에 대한 문제 제기도 잇따르고 있다.

봉준호 "캐머런, 전세계에 민폐 끼쳐"이상무 "10년뒤 영화 지금 만나 충격"정성일 "줄거리 거의 바보에 가까워"김봉석 "기술 아닌 이야기로 경쟁을"

"2디도 힘든데"

봉준호 감독은 "제임스 캐머런이 전세계적으로 민폐를 끼치고 있다"며 "2디도 힘들어 죽겠는데 3디를 어떻게 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털어놨다. 농담만은 아니다. 컴퓨터 그래픽을 동원한 2차원 영화에서 겨우 할리우드를 따라잡을 만하자, 한 차원 높은 곳으로 멀찌감치 도망치고 있는 데 대한 허탈감이 묻어난다. <전우치>를 제작한 이유진 영화사 집 대표는 "다른 영화들이 영화같이 느껴지지 않는다"며 "주눅이 든다"고 했다. 그러나 당장 국내 영화 시장이 3디 중심으로 재편될 것 같지는 않다. 이상무 씨제이엔터테인먼트 투자팀장은 "5년이나 10년 뒤 볼 것으로 예상했던 영화를 지금 만났기 때문에 충격이 큰 것"이라며 "하지만 당분간 이런 영화가 또 나올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라고 말했다. 캐머런이 워낙 특출한 감독이라는 얘기다.

우리도 할 수 있나

3디 영화는 촬영 단계부터 3디로 찍는 방식과 2디로 찍어 3디로 변환하는 방식으로 나뉜다. <아바타>는 모두 3디로 찍었지만, 팀 버턴 감독이 올해 개봉하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2디로 찍어 3디로 전환한 것이다. 국내는 3디 개봉작이 한 편도 없다. 3디로 촬영한 작품은 단편영화 <못>(최익환 감독)이 유일하다. <해운대>의 윤제균 감독은 올해 에스에프 스릴러 <제7광구>와 가족 모험물 <템플 스테이>를 3디 영화로 준비하고 있다.

2디를 3디로 변환하는 국내 기술은 할리우드 수준에 근접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사에서 2디 영화를 3디로 변환하는 작업에 참여할 예정인 김종률 리얼이미지 대표는 "시장이 없어 영세하지만, 오랫동안 3디 촬영 장비와 기술 개발에 공을 들여온 업체들이 많이 있다"고 소개했다. 가장 큰 난제는 돈이다. 업계에서는 3디가 2디보다 1.5~2배가량 제작비가 늘어날 거라고 추정한다. 그렇지 않아도 투자가 얼어붙은 한국 영화계에는 큰 부담이다.

게임체험관으로 전락한 극장

<아바타>의 내용이 실은 백인 우월주의를 설파한다는 등의 정치사상적 논쟁과 더불어 영화 미학 측면의 논쟁도 불이 붙고 있다. 영화평론가 정성일씨는 <씨네 21> 최근호에서 "<아바타> 줄거리는 거의 바보에 가깝다"며 "만일 누군가가 이 영화의 서사를 분석한다면 나는 그게 <트랜스포머>를 분석하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대답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영화를 예술로 만든 것은 그 기술적 한계 때문"이라며 "지금 영화는 자기를 예술로 만든 한계를 무효로 만드는 도전에 열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배창호 감독도 "영화를 단순 위안거리로 생각하는 대중들의 눈과 귀를 최대한 즐겁게 하려는 시도들과 노력의 결실은 이제 영화관을 게임 체험관으로 변화시켜 놓았다"고 꼬집었다.

탈출구는 이야기의 힘

심재명 명필름 대표는 "테크놀로지에 경도된 세대의 감수성을 받아들여야겠지만, 돈을 쏟아붓는다고 <아바타>만한 영화가 나오는 게 아니"라며 "기술이 감당할 수 없는 이야기의 힘에 대해 더 뼈아프게 고민해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영화평론가 김봉석씨도 "할리우드와 경쟁의 핵심은 기술이 아니"라며 "한국 관객들이 한국 영화에서 보고 싶어 하는 것은 한국적 정서와 드라마"라고 말했다.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사진 이십세기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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