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옛터' 이애리수씨 '전설적 생존'

2008. 10. 28.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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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70여년 칩거…일산 거주 98살 건강양호

1928년 발표된 애창가요 <황성옛터>의 가수 이애리수씨(사진·1910~)가 살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씨는 올해 98살로 경기도 일산 백송마을의 아파트 요양시설에서 3년째 간병인과 가족들의 보살핌을 받고 있다. 간병인들은 "휠체어에 의지하고 대화도 어렵지만, 건강은 양호한 편"이라고 전했다.

본명이 이음전(李音全)인 이애리수씨는 개성에서 태어나 9살에 극단에 들어간 뒤 배우·가수로 활동했다. 18살 때인 28년 서울 단성사 막간 무대에서 '황성옛터'를 처음 불러 큰 인기를 모으면서 근대 대중가요사상 첫 국민 가수가 된다.

'황성옛터'는 국내 최초의 창작 대중가요로, 27년 악사 전수린이 고향인 개성 만월대의 폐허를 보고 작곡했고, 배우 왕평이 노랫말을 지었다.

'황성옛터에 밤이 되니 월색만 고요해/ 폐허에 서린 회포를 말하여 주노라/ 아 가엾다 이내 몸은 그 무엇 찾으려고…(1절)' 이씨는 단성사 막간무대에서 이곡을 처음 부를 때 3절 대목에서 감정이 북받혀 청중과 같이 울면서 노래를 했다는 후일담이 전해진다. 이후 이 노래는 식민지의 암울한 시대상을 빗댄 가사와 구슬픈 곡조 덕분에 국민가요로 뿌리를 내렸다.

이씨는 32년 첫 대중가요 음반인 <황성옛터>를 냈고 지금까지 남인수, 패티김, 조용필 등 숱한 가수들이 이 곡을 녹음했다.

이씨의 신데렐라 인생은 22살 때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 재학생 배동필씨를 만나면서 완전히 뒤바뀌게 된다. 집안의 반대로 동맥을 끊어 자살을 시도하는 등 갖은 곡절을 겪은 그는 연예판을 영원히 떠난다는 조건으로 허락을 얻어 결혼했다. 이후 대중과 단절된 채 2남7녀를 낳아 기르면서 70년 넘게 칩거를 해온 셈이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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