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호감 한국 무시 열받아요

2009. 7. 9.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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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매거진 esc] 임경선의 이기적인 상담실

어설픈 민족주의와 백인 콤플렉스는 아닌지 자가진단부터 해보시길

Q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대학 재학중인 MJ라고 합니다. 일본인 친구 2명과 같이 삽니다. 제가 다니는 대학에는 일본 학생 동아리와 한국 학생 동아리가 있는데요, 일본인 친구와 같이 살다 보니 일본학생회 모임을 종종 저희 집에서 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저희와는 달리, 꽤 많은 백인 남녀와 다양한 아시아인들도 가입해 있더라구요. 저번엔 일본인 동아리에 가입한 노르웨이 남학생이 처음엔 제게 반갑게 인사하더니, 한국인임을 안 순간부터 태도가 살짝 변하면서 일본과 한국을 비교하더군요. 일본에 갔을 땐, 환영도 해주고 좋던데, 한국에 갔더니 별로 프렌들리하지 않더라, 등. 뭔 말인지 이해가 가면서도 울컥해서 급히 한국인을 어설프게 방어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또 한 식사모임 때 그가 갑자기 'Hey Korean, can you pass me the water?'(헤이 코리안, 물 좀 건내줄래?) 이러는 거 있죠. 그러고선 약간 겸연쩍었던지 'Oh so what was your name again?'(참, 너 이름이 뭐였더라?) 이러더군요. 기분 더러웠습니다. 일본인에게 열등감도 생기더군요. 왜 그들은 백인들한테 그렇게 호감인데 한국인들은 안 그런 걸까. 왜 일본인 동아리는 그렇게 인터내셔널한데, 왜 한국인 동아리는 그렇지 못할까. 맘 상하고 기분도 더러워서 어쩔 바를 모르겠습니다.

A 빨간 티 입고 떼 지어 대한민국을 외칠 때보다 이렇게 타지에서 한국을 평가하는 솔직한 외국인을 직면할 때, '아, 난 한국인이었지' 하고 깊게 체감하게 되지요. 비우호적인 솔직한 평가는 애국심을 신성불가침처럼 주입받고 커온 우리들을 당혹시키지요. 우리 자신이 부정당한 것 같아 상처도 받습니다. 그것치고는 대다수 한국인들은 '리틀 코리아'를 만들어 뭉쳐 다니며 그 안에서 보호받는 걸로 만족합니다. 그래서 일단 당신이 어설픈 방어였을지언정 발끈하고 저항했음을 높이 평가합니다. 한국 사람이면 당연히 한국 편을 들고 방어해야지, 라서가 아니라 당신이 안전한 곳으로 도망가지 않고 이 비논리적인 울컥함의 정체를 밝혀 보려고 애쓰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인간으로서, 학생으로서 좋은 삶의 태도라고 생각됩니다.

자, 유러피언 백인들이 왜 일본 애들한텐 깜빡 죽고 한국 애들은 개무시하냐면,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단순히 길 가던 일본인이나 한국인이 누가 누가 더 친절했나의 차원이나 일본인 룸메이트보다 당신의 인간적인 매력이 떨어져서가 아닙니다. 이건 '시스템'의 문제입니다. 어느 나라와도 사이좋게 지내야 안심하는 실리적인 외교정책을 가진 일본의 시스템. 그들은 국가자본의 힘으로 막강한 일본문화 전파 시스템을 갖추었습니다. 그리고 이 체계적인 문화 교류의 역사는 과히 우습게 볼 수 있는 만만한 게 아닙니다. 사소해 보이는 하나하나가 국가 인지도와 대외이미지를 만들어 결론적으로 세계 곳곳에 (그 노르웨이 남자를 비롯) '친일파'를 양산해낸 것입니다. 일본이 일관적으로 꾸준히 매달려온 견고한 '일본 알리기 운동'의 우수성은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만 합니다. 그러니까 개인 기준으로 무력함을 느끼기엔 배후가 너무 크다고요.

그런데 왜 당신이 기분이 더럽냐 하면,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일본 애들이 뭐 우리보다 그리 잘날 게 없는 것 같거든요. 실제로 조직이 아니라 개인으로 보자면 뭐 솔직히 우리가 더 나은 것도 같고. 게다가 우리나라에 있을 땐 늘 구도가 '한·중·일=각자 개성 있는 삼인방의 각축전', '한·일=평생의 숙적' 식의 동격 대우 해석을 해왔거든요. 그런데 외국에선, 특히 유럽에서는 일본과 한국의 간격이 매우 크고 결정적으로 일본은 선진국이고 한국은 아니라는 것이 표면으로 드러나니까. 여러 나라 학생들이 한데 모이는 국제모임에 가면 이 또한 묘합니다. 국력에 따라 끼리끼리 노는 거죠. 난 당연히 여기 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애들은 "넌 뭐니?"라며 세련되게 눈치 줍니다. 하지만 우리 역시도 베트남 애들보다는 싱가포르 애들과 섞이고 싶어하고, 포르투갈 애들보단 프랑스 애들이 왠지 더 대하기 어렵거든요. 개개인의 인간적인 매력이 인기를 좌우하기도 하겠지만 그 전에 그 사람이 속한 국가 이미지는 불가항력이라는 거.

열받죠? 하지만 당신은 유학생입니다. 그리고 애국자가 되는 게 유학의 목적이 아닙니다. 애국 강박에 휘둘리지 마세요. 인정할 건 인정하고 넘어가고, 과장되지 않은 진실만을 알려주고, 사람들 대우가 나아 보인다고 일본인인 척만 안 하면 됩니다. 차라리 이참에 어설픈 민족주의에서 스스로를 해방시키는 걸 고민하십시오. 민족주의의 단골 앙상블인 반일 감정도 지켜보십시오. 왜 일본 대 한국의 구도로만 바라봐야 하는지? 창의적인 다른 나라 학생들의 대안 모델은 없는지? 그리고 민족주의의 숨겨논 자식, 백인 콤플렉스 말입니다. 노르웨이 금발남에게 압도당하고 있나요? 금발이 그리도 눈에 부십디까? 큭, 그래 봤자 노르웨이인이고 일본인이고 한국인이고 결국엔 다 영어의 위세에 눌려 멀고 먼 남쪽 땅까지 가서 영어 공부하고 있는 게 아닙니까.

학생이라면, 현재의 열받음의 감촉을 고이 간직해서 '경험'이 '탐구'로 맥을 이어가게 해야 합니다. 이런 차별 구도를 감정적으로 겪음으로써 그 배경에 깔린 괴물 같은 시스템과 그런 시스템이 개개인의 삶에 얼마나 무시 못할 영향을 미치는지 이성적으로 이해하고 거시적인 큰 그림을 볼 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식한 시비에 무식한 싸움으로 되갚음할 만큼, 우리는 밍밍한 북구 아이들처럼 여유롭지 않거든요.

임경선 칼럼니스트

고민 상담은 go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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