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안 해서 더 좋아.. 아직까지는"

2009. 5. 17.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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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준희 기자]"언제 결혼해?"30대 중반이었던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이런 질문을 많이 받았다. 그러면 나는 "뭐 때가 되면 하겠죠"라고 대충 얼버무리곤 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도 내가 결혼할 생각을 하지 않으니까 주변 친구나 선후배들은 다른 질문을 한다.

"결혼 안 할 거지? 그래, 주위에 결혼 안 한 놈도 한 명쯤은 있어야 좋지." 이건 질문이라고 할 수도 없는 이야기다. 결혼 안 한 친구가 있어서 뭐가 좋으냐고 물으면, 술 고플 때 만만하게 불러낼 수 있는 상대가 있으니 좋다는 이야기가 돌아온다.

"결혼 안 할 거지?"라고 묻는 사람들

여자의 경우, 남자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부케를 받고 6개월 이내에 결혼을 못하면 빨리 결혼하긴 힘들다는 속설도 있다지만 상관없다.

ⓒ 최은경

결혼과 관련해서 또 다른 질문도 많이 받았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왜 결혼 안 해?"라는 것이다. 그때마다 나는 대충 둘러대기만 했다. "제 몸 하나 제대로 건사하기도 힘든데 무슨 결혼요?"라든가 "요즘 같은 불황에 제 입에 풀칠하는 것도 어려워요"라는 식의 핑계 아닌 핑계였다.

내가 이런 말을 늘어놓으면 어떤 사람은 색다른 방식으로 반응하기도 한다. "네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드니까 와이프한테 맡겨 버려", "네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우니까 와이프한테 빈대 붙으면 되잖아"라는 식이다.

물론 농담이라는 것을 아니까 그냥 웃고 만다. 연말연시 모임 같은 때에 다른 친구들이 와이프를 대동하고 나타나더라도, 나는 혼자인 것이 그리 어색하지 않다. "결혼 안 해?"라는 질문도 워낙 많이 듣다보니까 이제는 지겹지도 않을 정도다. 그냥 "밥 먹었어?"라는 인사말 정도로 취급하게 되는 경지에 이른 것이다.

한때는 그런 질문을 받으면 "왜 결혼해?"라고 반격하기도 했었다. 그러면 이미 결혼한 상대방들은 다양한 논리로 결혼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남자는 가정이라는 자신만의 울타리를 만들어야 한다, 지금이야 젊으니까 혼자라도 상관없지만 나이 먹고도 혼자면 어떡할래, 결혼해서 자식을 키워봐야 세상을 알게 되는 거다, 라는 이유들이다.

부나비처럼 떠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 그 울타리는 어쩌면 발길을 가로막는 장벽으로 돌변할지도 모른다. 나이 먹고 혼자인 것이 쓸쓸하다면 그때 가서 결혼해도 상관없다. 세상을 알기 위해서는 열심히 세상을 방랑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자유와 외로움은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이다. 혼자라서 외롭지만, 혼자이기에 자유를 만끽할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상대방에게 이런 식의 말을 한다. 그러면 결혼을 둘러싼 한바탕 토론이 시작된다.

'결혼 안 하는 삶' 그게 뭐 잘못일까

그런데 사실 이건 토론의 대상이 되기도 어렵다. 세상을 사는 수많은 방식 중에서 나는 '결혼 안 하는 삶'을 선택한 것 뿐이다. 결혼을 둘러싼 온갖 질문들을 듣더라도 이제는 웃어 넘긴다. 어렸을 때부터 몽상가 기질이 많았던 나는, 남들이 듣기에는 철부지 같은 소리만 늘어놓으면서 결혼 안 한 행위를 정당화하려 한다.

하지만 가끔씩은 할 일 없이 빈둥거리다가 진지하게 생각할 때도 있다. 정말 왜 나는 이 나이가 되도록 결혼을 안 했을까? 내가 결혼했더라면 지금쯤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거기에는 또렷한 답이 없다. 결혼했더라면 나는 좀 더 현실적인 인생을 살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혼자서 떠나는 장기간의 배낭여행은 꿈도 못 꾸고, 직장과 집을 오가면서 주식과 펀드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이런 글을 쓰는 것 대신에 인터넷으로 부동산 시장의 동향을 훑어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결혼 안 한 삶은 나에게 현실이 아니라, 그 반대편에 있는 나만의 이상에 관심을 두게 해준 셈이다.

대신에 단점도 있다. 외부에서 보내오는 무언의 압력과 내부에서 생겨나는 묘한 자책감이다. 모든 적은 내부에 있는 법. 주위의 시선이야 그러려니 하더라도, 자신의 내면에서 생겨나는 자책감만큼은 어쩔 수가 없다. 그런 감정은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키우면서 사는 친구들을 보면 생겨난다.

그럴 때면 술잔을 기울이면서 고개를 젓는다. 언제든지 훌훌 털고 어디로든 떠나기를 원하는 내가, 안정된 가정생활을 동경할 수는 없다. 그러니 결혼 안 한 삶은 나에게 또 다른 현실적인 문제를 던져준 셈이다. '내가 이 나이가 되도록 나잇값을 못하고 있구나' 하는 자책감을.

이런 생각들을 해나가다보면 결혼 안 한 이유가 대충 나온다. 내가 무슨 거창한 독신주의자도 아니고, 결혼이라는 제도가 딱히 싫었던 것도 아니다. 나는 단지 지금까지 '굳이 결혼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후회하지 않을 싱글 생활, 자신 있지?

▲ 끝없는 길

우즈베키스탄의 키질쿰 사막. 떠나고 싶을 때 떠날 수 있는 특권, 그게 지금 내 모습이다.

ⓒ 김준희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 주변에는 나이 먹고도 결혼 안 한 사람들이 많다. 40살을 훌쩍 넘기고도 혼자 사는 사람도 있고, 독신인 채로 나이 40을 맞이하는 친구들도 여럿이다. '독신자 클럽'을 하나 만들어도 좋을 만큼 많은 노총각들이 주위에 있다. 그래서 "언제 결혼해?"라는 질문을 받으면, "주위에 있는 노총각들 다 장가가는 거 보고 제가 마지막으로 가려고요"라고 말도 안 되는 답을 하기도 한다.

어떨 때는 '결혼 안 해서 좋으냐?'라고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아직까지는 좋다. 아니, 특별히 나쁜 점이 없다고 하는 것이 솔직할 것이다. 초라한 더블보다 화려한 싱글이 되라고 하던가? 화려한 생활을 누릴 처지는 못 되지만, 적어도 싱글 생활의 온갖 장단점을 만끽하며 살고 있다.

그 장단점의 양쪽 끝에 서있는 것이 훌쩍 떠날 수 있는 자유와 자책감이라는 감정이다. 그 자책감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게 될 때, 그때가 아마 내가 결혼을 선택하게 될 때가 아닐까. 그런 날이 오더라도, 지나간 싱글 생활을 후회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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