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농사꾼, 드디어 씨 뿌렸습니다

2008. 5. 6.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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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강기희 기자]

▲ 호미.

요즘 호미로 농사짓는 이 얼마나 될까요.

ⓒ 강기희

▲ 옆집 옥수수.

하우스에서 키워낸 옆집 옥수수는 벌써 의젓합니다. 옥수수는 6월까지 심어도 되니 조금 늦는다고 염려할 일이 아닙니다.

ⓒ 강기희

정선 가리왕산 자락에 사는 게으른 농사꾼입니다. 올해 들어 처음으로 농사를 시작했습니다. 참 게으른 농부입니다. 밭은 벌써 콩풀이 가득한데 이제야 옥수수 씨앗을 넣었습니다. 농사짓는 일이 소꿉장난 같은 일이 아닌데도 소꿉놀이 하듯 씨를 심었습니다.

땅은 화학비료나 농약을 싫어합니다

작년엔 1000평 가까운 밭에 피마자를 비롯해 줄광쟁이와 고추·토마토·토란·더덕·도라지·황기·곰취·곤드레 등과 곡식으로는 옥수수와 검은콩·메주콩 등을 심었습니다. 이것저것 심다 보니 남는 땅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농약이나 비료를 전혀 주지 않는 밭이라 소출은 형편 없었습니다. 농약이나 비료를 주지 않는 이유는 적게 일하고 적게 먹자는 나름의 신념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 해 농사 지어서 어머니와 아들 두 사람이 먹고도 조금 남으면 성공이라는 농사법이지요. 옥수수는 봄에 씨를 넣을 때 보고 여름철 옥수수통을 딸 때 만났습니다. 그럼에도 저 스스로 작은 씨를 틔우고 대궁을 밀어올려 튼실한 옥수수통을 만들어내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습니다.

물론 비료를 주지 않았기에 다른 집 옥수수보다 옥수수통은 작았습니다. 그럼에도 다른 옥수수보다 맛이 더 좋다고 큰 소리 칠 정도니 초보농사꾼 제 흥에 겨워 춤을 춥니다. 한편으로는 옥수수를 대하는 게 미안하기도 합니다. 자주 찾아가 헛골에 있는 풀이라도 뽑아주어야 하는데 그것마저 하지 않았으니 무심하기 짝이 없는 주인이었지요.

작년 가을 메주콩은 수확했지만 검은 콩(서리태)은 수확하기 민망해 며칠 전까지 밭에 두었습니다. 지난 가을부터 봄까지 콩밭은 새 떼들의 놀이터였습니다. 한 무리의 새 떼가 나타나 콩을 쪼아먹고 하늘을 날면 다른 무리가 콩밭으로 날아 들었습니다.

콩을 먹기 위한 걸음은 새들만이 아닙니다. 들쥐도 오고 너구리도 오고 오소리도 왔습니다. 저마다 시차를 두고 콩밭을 다녀간 탓에 서로 먹겠다며 싸움을 벌이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 농사 시작.

올해 처음으로 농사를 시작했습니다. 피마자를 심고 있는 어머니. 마른 잡풀이 밭 곳곳에 남아있네요.

ⓒ 강기희

자연과 나누는 마음 없으면 농사꾼 자질 없습니다

올해는 어머니와 작당해 다른 것은 심지 않고 옥수수와 피마자·줄광쟁이만 심기로 했습니다. 고추나 상추·배추 모종은 몇 개만 사기로 했습니다. 그것들이 아니라도 마당가엔 먹을 것이 지천이니 손님용으로 몇개씩 심기로 했습니다.

이른 아침 어머니는 피마자(아주까리)와 줄광쟁이를 심고 아들은 옥수수를 심었습니다. 그러니까 옥수수는 아들이 먹고자 심는 것이고, 피마자와 줄광쟁이는 어머니가 필요해 심는 것입니다.

호미로 땅을 파고는 옥수수 알을 넣습니다. 보통 세 알 정도 넣으면 되지만 손에 집히는 대로 넣습니다. 어떤 곳은 일곱 개, 많은 곳은 열 개의 씨를 넣기도 합니다. 어머니께서 알면 야단 맞기 알맞는 일이지만 아낄 게 따로 있다는 생각에서 듬뿍 넣어 주었습니다. 아래 정채봉님의 글을 읽으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들이 감을 따고 있었다.

아버지가 감을 광주리에 담으면서 말했다.

"까치밥으로 감 서너 개쯤은 남겨 두어야 한다."

아들이 물었다.

"우리 먹기에도 부족한데 왜 까치밥을 남겨야 하지요?"

아버지가 말했다.

"새들과도 나누어야지. 우리만 독식해서는 안 된다."

이해가 안 된 듯한 아들에게 아버지가 물었다.

"농부가 콩을 심을 때 세 알씩 심는다. 왜 그러는 줄 아느냐?"

아들이 고개를 갸우뚱하자 아버지가 말했다.

"한 알은 공중의 새들 몫이다."

"또 한 알은요?"

"땅 속의 벌레들 몫이지."

아들이 말했다.

"그럼 한 알만이 주인의 몫이군요."

아버지가 말했다.

"나누는 마음 없이 한 알만 심어 수확을 기대하다가는 빈손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 정채봉 글 '콩 세 알' 전문

듬뿍 넣은 씨앗은 하늘을 나는 새가 날아와 파먹고 나머지는 땅 속의 벌레들이 먹으면 되겠다 싶습니다. 그 중 하나라도 남으면 그것을 인간이 먹는 것이지요. 옥수수를 유난히 좋아하는 아들은 그렇게 생산한 옥수수를 냉동실에 넣어 두고 겨우 내내 먹습니다. 지난 해 수확한 것이 아직 남아 있으니 작년 농사도 성공한 셈입니다.

▲ 옥수수씨.

인간에게 필요한 옥수수씨는 단 한 개 뿐입니다.

ⓒ 강기희

초보농사꾼의 호미질에 생을 다한 지렁이 '미안하다'

어머니는 피마자씨를 온 밭에다 심습니다. 피마자는 어머니의 용돈벌이용입니다. 잎은 나물로 쓰고 열매는 기름을 짜 장터에 팝니다. 작년보다 많이 심었으니 올해는 어머니의 돈주머니가 조금은 두둑해질 듯 싶습니다.

땅을 파는데 지렁이가 많습니다. 손가락만한 굵기의 지렁이도 있고 성냥개비 굵기의 지렁이도 있습니다. 작은 녀석은 덜 징그러운데 큰 놈은 어쩐지 뱀을 닮았다는 생각에 한 발 물러서게 됩니다. 아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뱀이라는 사실을 지렁이도 아는가 봅니다.

호미질을 하다 지렁이의 허리를 끊어 놓기도 합니다. 두 동강이 난 지렁이가 고통스럽다며 꿈틀댈 때는 징그럽다가도 미안하다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그렇다고 지렁이의 아픔을 달래 줄 뾰족한 방법도 없습니다.

"지렁이양, 미안. 앞으론 조심함세."

서둘러 지렁이를 땅에 묻어주며 그런 말밖에 하지 못합니다. 지렁이가 사는 땅은 살아있는 땅이라고 합니다. 이태 전 농사를 지은 이가 이 밭에 고추 농사를 하면서 제초제를 엄청 뿌린 탓에 뭇 생명들이 살아나려면 시간이 더 흘러야 할 밭입니다.

▲ 지렁이.

옥수수씨를 심다 지렁이를 만났습니다. 초보농사꾼의 호미질에 죽었습니다. 미안합니다.

ⓒ 강기희

땅 속 생명들을 위협하는 초보농사꾼 '이런, 호미질도 못하겠네'

땅엔 지렁이만 있는 게 아니라 굼벵이도 있습니다. 하얀 속살을 간직한 굼벵이 녀석은 난데없는 호미질에 화들짝 놀란 표정입니다. 부끄러운 듯 몸을 동그랗게 만 굼벵이 또한 땅 속에서 얼마간의 시간을 보낸 뒤 어디론가 떠날 것입니다.

맑은 하늘에 비행기구름 두 줄

생겨났다 이내 사라진다.

'저 흔적을 남기려고 제트비행기가 날고 있는 건 아니겠지요?'

'그러믄요'

'비행기구름은 오래 가지 않나 보죠?'

'그러믄요, 그림자 없는 하늘이니까요.'

잠시 하늘 보던 시인과 농부는 다시 밭일을 한다.

호미 끝에 대가리가 찍힌 지렁이가

갈 생각을 않고 몸을 뒤틀고 있다.

죄 없기가 이처럼 힘들다.

콩 밭의 모기들이

대낮인데 목덜미를 쏘아댄다.

적 없기가 이렇게 힘들다.

'아무하고나 싸우면 웃음거리가 되겠지요?'

'그러믄요, 헛것과 싸워도 흔적은 남지요'

- 최승호 시 '흔적' 전문

옥수수 씨앗을 넣으면서 자연에 대해 엄청난 죄를 짓습니다. 지렁이 허리를 무참히 동강 내기도 하고 굼벵이 대가리를 호미 끝으로 찍기도 합니다. 어렵게 지은 개미집을 허물었을 땐 난감하기까지 합니다. 허둥지둥 흩어지는 개미들을 어찌해야 하나 하고 아무리 고민해도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 피마자씨.

이것을 심으면 어른 키보다 큰 피마자가 자랍니다.

ⓒ 강기희

늦게 찾아 오는 가리왕산의 봄 '농사는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철없이 집안으로 날아든 박새 한 마리를 밖으로 내쫓아야 하는데 이것이 도망친다며 자꾸만 유리창을 박을 때와 비슷한 심정입니다. 유리창을 박은 박새는 주르륵 방바닥에 떨어졌다가는 다시 날고 또 박고. 며칠 전 박새 한 마리 때문에 마음 졸이던 때와 옥수수 심는 일이 다르지 않습니다.

아무리 조심한다 해도 땅 속 생명들을 다치지 않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모른 척 먼산 보면서 땅을 파면 모를까 그렇지 않고서는 다치고 죽어가는 것들과 피할 수는 없습니다. 미안한 마음에 옥수수 씨앗을 더 많이 넣어줍니다. 미안하지만 게으른 농부가 할 일은 그것뿐입니다.

작년에 수확한 옥수수로 씨를 심는 것이니 올해 옥수수가 어떤 맛을 낼 지 궁금합니다. 아들이 하는 농사는 해마다 옥수수 종자를 신청해 씨를 심는 일반 농사법과는 다른 19세기 농사법입니다. 그러하니 지금 심는 옥수수 종자가 미백인지 대학찰인지도 알 수 없습니다. 토종 옥수수씨도 섞여 있지만 그것이 어느 것인지도 모르는 한심한 농사꾼입니다.

올 여름 금방 쪄낸 옥수수를 먹을 생각을 하니 쪼그리고 앉아 밭일을 하는 게 그리 힘들지는 않습니다. 오늘 심은 옥수수를 따면 세 접은 족히 될 듯 싶습니다. 잠시 일하고 300통을 수확하면 게으른 농사 치고는 성공한 농사가 아닐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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