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키마우스, 너 성형수술 했지?

2008. 4. 26.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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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중국 산둥성 칭다오에서 생산되는 칭다오 맥주라는 게 있다. 세계 몇 대 맥주니, 무슨 무슨 타이틀의 맥주를 뽑을 때 반드시 상위에 오르는 기가 막힌 맥주다. 그렇지만 솔직히 이 맥주, 뭔가 허전한 구석이 있다. 밍밍한 것도 아니고, 원조 평양냉면 집을 물어물어 찾아갔더니 맹탕 국물에 맥 빠진 국수 말아주더라는 식의 느낌이랄까? 조미료 하나 안 들어간, 순수한 맛의 조상 같은 느낌이 칭다오맥주에 있다. 왜 그럴까? 이 맥주가 탄생한 1900년대 초를 살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이건 이름만 같은 이물질이야!"

당시 칭다오 일대는 독일의 조차지역, 다시 말해 독일 땅이었다. 1897년 칭다오에 파견되었던 독일 선교사가 살해당한 사건이 일어나는데, 독일은 이를 빌미로 무력을 행사해 그 일대를 99년간 강제 조차했던 것이다. 그 조차 기간에 탄생한 것이 칭다오 맥주다. 독일인들이 그 지역의 지하수가 뛰어나다는 것을 알고 독일 현지의 맥주 기술자와 장비를 들여다 맥주를 만들게 한 것이다. 그 이후 중국의 근현대 폐쇄정책이 끝나고 다시 외국과의 교류가 시작되면서 칭다오 지방으로 돌아온 독일인들은 깜짝 놀라고 만다. "이것은 바로 그 전설의 맥주!" 지난 100년간 독일인들이 맥주 맛을 개량하고 양조법을 수정하는 동안 중국인들은 묵묵히 100년 전 독일인들이 전수해준 그 방법, 그 양조술 그대로 맥주를 빚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서론이 길었지만, 이제부터 캐릭터 얘기를 시작해 보자. 80년 전의 미키마우스를 보면, 뭐 나름대로 귀엽다면 귀여울 수도 있겠지만 1920년대 특유의 거친 작화지와 탁한 잉크로 표현해 낸 그 모습은 시커먼 몸에 콩 2개를 붙여 놓은 듯한 고전적인 얼굴과 현실적인 꼬리를 하고 있다. 국민과자에 침투했던, 바로 그 친구의 느낌이 그대로 전해진다. 80년의 세월이 흐르고, 이제는 '귀여움'투성이의 미키마우스 인형을 끼고 사는 누군가가 80년 동안 세상과 단절되었던 어느 곳으로 가 예전의 모양새 그대로의 미키마우스를 사랑하는 이들을 만나게 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또 그 예전 그대로의 그들은 이제는 뚱뚱이가 되어 버린, 얼굴의 절반만한 눈을 가진 이 2000년대의 미키마우스를 본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1970년대 경영난으로 회사의 주인이 바뀌고 대중형 저가 모델을 내놓은 '미제 오토바이' 할리 데이비슨을 타 본 원조 할리 라이더가 "이건 이름만 같은 이물질이야!"라고 외쳤다. 좋든 싫든 모든 상품은 인간의 기호에 따라 변하게 된다. 미키마우스며 빨강머리 앤이며 스머프와 레고들이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이 무슨 이유일까? 장인 정신이나 묵묵한 전통이 아니라, 어쩌면 그들은 살아남았다기보다는 세상에 아부하고 공손한 자세를 유지하기 위해 전혀 새로운 '물질'로 둔갑해 간신히 그 이름만을 유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문화의 속성이며 모든 캐릭터들의 운명이다.

손가락이 4개에서 5개로, 5개에서 4개로

실제로 일본 만화의 상징 <아톰>의 손가락이 처음에는 4개였지만, '그게 뭐 인간형인가'라는 질문과 비판이 쏟아진 이후 5개로 그려졌다. 미키마우스의 경우 손가락이 4개인 것이 더 사랑스럽다는 여론 이후 다시 4개로 그려진 적도 있다. 미키마우스의 눈은 초기에는 달랑 검은콩을 붙인 것 같았지만 변화를 거듭해 30~40년대에는 파이 한 조각을 베어 먹은 것 같다고 해서 '파이 아이'(Pie eye)라 불리기도 했다. 이제는 '들장미 소녀 캔디' 같은 커다란 눈을 하고 화려하게 변신한 미키마우스는 캐릭터라는 자본주의 최고의 상품이 가진 숙명의 물화다.

캐릭터 몇을 두고 역사와 진보와 자본주의를 이야기하는 것은 우습지만 같은 이름으로 수십년, 100년 동안 살아남았다는 사실 하나만을 기억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남았으며, 그 과정에서 살아남은 것은 이름뿐이며, 그것이 진정한 문화와 캐릭터의 속성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옳고 그르고, 나쁘고 좋고의 문제를 떠나, 이제는 몇 갑절 화려한 맛을 생산하는 독일의 맥주 마이스터가 기록만으로만 봐오던 100년 전 맥주 맛을 한 모금 머금으며 '우리가 이렇게 변해 왔구나'를 깨닫는 감동과, 역설적이긴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지금 그의 손으로 만들어내는 현대 맥주의 우월성과 완성도를 즐기는 듯한 이중성을 눈여겨봐야 할 필요가 있다.

김혁/장난감수집가·테마파크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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