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징그럽게 풀을 뽑았습니다

2007. 6. 25. 11:18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풀무생협·보건의료노조·전교조·학교급식네트워크 등이 모인 '푸른연대'와 환경농업단체연합회와 함께 우리 먹을거리의 현실을 짚어보고 현재 판로가 막혀있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유기농업에서 그 대안을 모색하는 특별기획을 마련했습니다. 이 기간동안 유기농가에서 직접 생산한 쌀을 할인된 가격에 직거래하는 '푸른쌀 주문하기' 캠페인도 진행합니다. 우리의 먹을거리를 살리는 데 독자여러분의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오마이뉴스 편집자 주>

[오마이뉴스 송성영 기자]

▲ 산비탈 밭으로 향하는 길 한 옆이 싯누렇게 죽어 있다.
ⓒ2007 송성영

우리 집으로 들어서는 길목에는 두 계절이 공존한다. 옆집할머니네 밭쪽은 죽어있는 늦가을이다. 농약 세례를 받은 풀들이 싯누렇게 죽어 있다. 그 반대편은 온통 푸르다. 싱싱한 여름이다. 풀꽃도 피어있다.

집 뒤쪽 형편도 마찬가지다. 산 쪽으로 올라가는 길목 역시 밭쪽은 농약에 싯누렇게 타들어갔다. 밭길 낸다고 대나무까지 왕창 베어버린 그 길을 지나면 비로소 내가 지어먹는 산비탈 밭이 나온다. 온통 푸르다. 야채도 푸르고 야채 사이사이 무성한 풀들도 푸르다.

나는 푸르게 살아 있는 풀밭이 좋다. 400여 평의 채소밭이 온통 풀들로 뒤덮여 농사에 지장을 준다할지라도 푸른 기운이 좋다.

나는 농약이며 화학비료 대신 유기농 거름으로 300여 평의 논농사에 400여 평의 야채밭과 500평의 콩밭 농사를 짓고 있다. 아직 자급자족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것도 모두 소작이다. 농사로만 먹고 살수 없어 농한기를 이용해 막일을 하는 농사꾼들처럼 나 역시 가끔씩 글을 팔아먹고 산다.

유기농이 뭔지는 모르지만...

▲ 풀 반 채소 반인 산비탈밭. 때로는 채소밭에 물을 주거나 벌레를 잡아주는 우리집 아이들의 땀흘리는 자연학습장이 되기도 한다.
ⓒ2007 송성영

나는 유기농에 대한 정의를 잘 모른다. 자세히 알고 싶지도 않다. 단지 언어에 대한 정의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내가 짓고 있는 농사법을 남들에게 그냥 편리한 대로 유기농법이라 말하곤 한다. 나의 유기농법은 뱃속 편한 마음자리에서 부터 시작된다. 하지만 그만한 대가가 뒤따른다.

하늘은 차별하지 않는다. 단비를 내려 밭작물들은 물론이고 풀들 역시 싱싱하게 키운다. 밭작물보다 생명력 왕성한 풀이 더 잘 큰다. 뿐만 아니라 온갖 해충들이 달려들고 알게 모르게 익충들도 꼬여든다. 자연의 이치가 그러하듯 필요한 것만 생기지 않는다.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기 마련이다.

▲ 풀뿐만 아니라 배추벌레 역시 닭의 모이가 되고 닭의 계분은 다시 밭으로 돌아간다.
ⓒ2007 송성영

이런 자연의 이치를 받아들여 거의 매일같이 풀과 벌레를 솎아낸다. 풀을 뽑을 때는 날 잡아 이발하듯 한꺼번에 사그리 뽑지 않는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가 잠시 굽어진 허리를 펴고 산책 가듯 밭으로 나가 풀을 뽑는다. 아이들과 놀다가 뽑고 손님들이 놀러 왔다가 돌아가면 뽑고 도시에 나갔다가 와서도 뽑는다. 새벽녘에 나가 뽑고 늘어지게 낮잠을 자다가 부스스 일어나서도 뽑는다.

늦은 봄, 풀밭에서 늦잠 자는 개구리를 미안하게 만난다. 밭일을 도와주는 지렁이도 반갑게 만나고 덤으로 닭들이 좋아하는 배추벌레도 잡는다. 풀 뽑는 기구는 따로 없다. 호미와 손이 전부다. 땅은 그런 내게 부드러운 흙으로 보답한다. 유기농 3년째 접어들고 부터는 더 이상 땅을 갈아엎지 않아도 된다.

한여름, 풀을 뽑거나 채소를 수확하기 위해서는 땀을 바가지로 흘려야 한다. 땀은 노폐물이다. 땀은 내 안의 편치 않은 온갖 것들이다. 땀은 내 안의 풀이나 다름없다. 풀을 뽑아가며 내 안의 편치 않은 온갖 것들을 땀을 통해 흘려보낸다. 풀을 뽑으며 내안의 밭을 정리하는 것이다.

밭일은 마음 수행... 잔머리 대신 몸을 굴린다

ⓒ2007 송성영

내게 밭일은 마음 수행이기도 하다. 힘에 부쳐 짜증도 나고 맥없이 주저앉고 싶을 때가 많지만 밭일을 하다보면 몸에 활력이 생기고 잡념들이 줄어든다. 잡념이 줄어들면 마음자리가 편해진다.

마음자리가 편해지면 코앞에서 농약을 살포하는 주변 사람들에 대한 아쉬움을 떨쳐 낼 수 있고 가끔씩 밭을 헤집어 놓거나 콩밭을 작살내 놓는 노루들에 대한 원망 또한 녹여낼 수 있다. 배추밭을 초토화 시키는 벌레들에 대한 농약 살포의 유혹을 떨쳐 낼 수 있다.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쓰지 않는 유기농 밭은 곧 수행처다. 유기농 밭은 맑은 기운 가득한 스님들의 토굴이나 암자와 다름없다. 나는 오염되지 않은 밭에서 머릿속을 맴도는 잔꾀들이며 쓰잘떼기 없는 지식 나부랭이들을 벗어 놓는다. 잔머리 굴리는 대신 몸을 굴린다. 끊임없이 고여 드는 잡념들을 퍼내가며 적게 먹고 살아가고 있는 생활에 대한 두려움을 덜어낸다.

그렇게 2주에 한번 꼴로 몸과 마음으로 일궈낸 수확물을 챙겨 도시로 나간다.

유기농을 생존케 하는 작은 순환고리

▲ 도시로 나갈 채소 배달 준비를 하는 아내
ⓒ2007 송성영

그런 나를 못 마땅이 여기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동네 사람들은 풀밭에 눈총을 주고 또 어떤 이는 유기농을 단지 자본으로 연결시키기도 한다. 유기농 채소를 본격적으로 재배하기 시작할 무렵 누군가 내게 그랬다.

"돈 없는 사람들은 유기농산물을 먹지 못하고 결국은 돈 있는 사람들, 자본가들이나 먹여 살리는 거 아닙니까?""내가 만약 부를 누리겠다고 유기농을 한다면 분명 자본가들을 먹여 살리는 꼴이 되겠지요."

그 누군가의 말대로 내 유기농산물들이 도시로 나가게 되면 분명 자본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2만 원 짜리 채소 박스를 단지 '자본'이라 여기지 않는다. 그 '자본' 역시 자연처럼 순환 고리를 갖고 있다고 믿고 있다.

나는 풀을 뽑아 밭작물 주변에 눕혀 다시 땅으로 되돌려주거나 때로는 그 풀을 닭에게 먹여 얻은 계분으로 다시 밭작물이며 풀들을 키워낸다. 마찬가지로 소비자와 나 사이에는 유기농 밭에서처럼 순환 고리가 존재하고 있다. 나는 소비자들에게 질 좋은 먹을거리를 제공해 주고 소비자들은 내게 밭작물을 키울 수 있는 생활의 힘을 실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 힘으로 밭일을 한다. 풀을 뽑고 벌레를 잡아가며 밭작물을 키운다. 그 밭작물들은 다시 소비자들에게 돌아간다. 결국 밭작물은 농사짓는 나와 소비자가 키우는 것이다. 하지만 이 순환 고리는 유기농 밭에서와는 달리 쉽게 순환되지 않는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아닌 단지 자본이 개입되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

소비자가 유기농 농산물에 대한 가치를 인정하지 않거나 생산자인 내가 필요이상의 대가를 바란다면 이 순환 고리는 깨진다. 유기농재배로 부를 꿈꾼다면 그 순환 고리는 단박에 깨지고 말 것이다. 이것은 자연을 미끼로 자본에 편승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고 결국 그 자본은 어떤 방식이로든 자연을 망가뜨리게 되는데 일조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소박한 농사 유기농은 부자들을 위한 것?

▲ 지난 가을 우리집 마당 풍경
ⓒ2007 송성영

유기농산물 생산자인 나의 가장 큰 숙제 '유기농산물은 가난한 사람들은 먹지 못하고 가진 사람들만을 위한 전유물이다'는 여전히 남아 있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본가들에게 유기농산물을 비싸게 팔고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아주 값싸게 제공해 줄 수 있는 방법이 있다. 현실적인 방법이긴 하지만 이것은 혜택 받는 사람들의 한계가 분명하고 또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유기농 생산자들 대부분이 가난한 사람들을 돌볼 수 있을 만큼 넉넉하지 못하고 특히 나 같은 소작농들에는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가진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꼴'이라 하여 유기농을 멈춰야 하는가? 자연 환경을 살리는 데 만족해야만 하는 것일까? 자연 환경을 살리고 '가진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이 다 같이 유기농산물을 먹고 살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유기농산물을 접하지 못하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유기농을 재배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고 또한 그 생산물들을 가진 사람들이 좀 더 높은 가격으로 소비해 줄 수 있는 순환 고리가 성립될 수만 있다면 문제는 간단하게 해결된다. 그렇게 상생의 원리로 유기농 소농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자연 환경은 물론이고 농촌 경제마저 살아날 것이다. 일석이조다.

하지만 어떤 정부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유기농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줄 수 있으며 또 누가 그 힘든 소작농이 되겠다고 도시를 떠나 농촌으로 들어 올 수 있겠는가? 그리고 또한 누가 그 유기농 소작농들을 먹여 살릴 만큼 비싼 가격으로 유기농산물을 구입해 먹을 수 있겠는가?

유기농업으로 가난하게 살지만...

며칠 전, 올 들어 세번째로 채소 배달을 다녀왔다. 그 중 한 집에서 차를 마시며 자연과 사람의 순환 고리에 관해 많은 얘기들을 주고받았다. 대화 도중에 나는 문득 "유기농이 결국은 자본가를 먹여 살리게 될 것"이라고 했던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떠올랐다.

"유기농을 통해 단지 자본을 만나는 것이 아니다. 자연을 만나고 사람을 만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진정한 유기농이 아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 집에서 우리 집 아이들이 입을 옷 보따리를 챙겨 주었다.

"헌옷을 줘서 미안하네요."

"무슨 말씀을요, 그렇잖아도 녀석들 몸집이 커져서 옷이 필요했는디, 무작이 고맙쥬."

집에 돌아와 옷 보따리를 펼쳐 놓았다. 아내는 물론이고 아이들도 무척 좋아했다.

"우와! 이게 꿈이냐 생시야! 낼모레 수학여행 가는디, 어떤 걸 입구 갈까?"

녀석들은 이 옷 저 옷 입어가며 한바탕 패션쇼를 벌였다. 가난을 즐겁게 받아들이는 아이들이 고마웠다. 가난한 애비를 둔 아이들의 환한 얼굴에서 유기농이 그저 농약이나 화학비료 따위를 주지 않는 먹을거리만을 생산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어제는징그럽게 풀을 뽑았다.오늘은채소밭에 깔아 놓고 보니열댓 마리 늘어난닭 줄 풀도 없다.그저열댓 마리의 벌레 잡아닭장으로 들어서는발걸음이 아쉽다.내일은계분을 모아채소와 풀이 자라는밭에 돌려줘야겠다.

▲ 나비가 날아든 무우꽃. 지리산에서 얻은 이 토종 무 씨를 받아 놓을 예정이다.
ⓒ2007 송성영

/송성영 기자

덧붙이는 글유기농의 순환고리 중에 가장 중요한 또 한가지가 종자를 받아 재배하는 것이다. 토종 오이를 비롯해 배추와 무우, 케일, 시금치, 대파, 쪽파, 상추 등의 종자를 받아 순환시키고자 하고 있다. 종자에 관한 순환고리는 다음 기회에 기사화할 예정이다.

- ⓒ 2007 오마이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