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은 나에게 은총입니다"

2010. 3. 30.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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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1944년 경기도 부천 출생.

1997년. 최우수 예술인 동아연극상 연기상

2001년. 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학 입학

2005년. 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학 대학원 입학

2006년~ 국가암정보센터 홍보대사

2008년~ 중앙노인보호전문기관 홍보대사

2010년 원광대학교 보건학 박사

출연작 <산국> <위기의 여자> <세일즈맨의 죽음> 등 150여편의 연극과 TV 드라마 <아내와 여자>, 영화 <결혼은 미친 짓이다> <님은 먼곳에> <불꽃처럼 나비처럼> 등 다수

저서 <쌍코랑 말코랑 이별연습> <내 인생의 길목에서> 등

"이 병은 나에게 은총이에요. 살아있는 것만이 은총이 아닙니다. 내가 만약에 극복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해도 나에게 주어진 시간들의 귀함에, 그리고 새로운 세상에 눈을 떴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암은 나에게 특별합니다."

뺨에 홍조를 띠고 티 없이 맑은 웃음을 짓는 그녀는 예순일곱의 배우 이주실. 청바지를 입고 긴 머리를 어깨 밑까지 내려뜨린 그녀는 마치 소녀 같았다. 다행이었다. 정말 시한부 선고를 받았었던가 싶을 정도로 그녀는 건강해 보였다.

1993년 그녀는 유방암 3기 판정을 받았다. 벌써 17년 전 일이다. 그 때 의사는 그녀가 1년을 넘기지 못할 거라고 했다. 암 세포가 늑골 뼈까지 전이돼 완치가 불가능하다 했다. 하지만 그녀는 수많은 시간을 꿋꿋하게 버텨내고 사랑과 봉사를 실천하는 천사가 되어 제 2의 인생을 살고 있다.

◆ "연극에 대한 끝없는 집념이 저를 살렸죠"

"끔찍한 고통을 눈 감을 때까지 겪어야 한다면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한 때가 많았습니다. 온 몸이 찢기는 느낌, 정말 견디기 힘들었죠. 특히 항암치료를 받을 때는 주사바늘이 들어감과 동시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뒤집어지는 듯한 통증이 저를 덮쳤어요."

그녀의 목소리가 떨려왔다. 통증도 문제였지만 아직 학생인 딸들을 두고 세상을 떠나야 한다는 생각에 그녀는 목이 메어왔다. 그녀의 병을 알게 된 딸들은 어느 날부턴가 잠꼬대를 하기 시작했다. '엄마, 가지마. 죽지마.' 엄마가 죽는 꿈을 꾸면서 밤새 시달리는 아이들을 보며 그녀는 용기를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렇게 그녀는 생애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연극에 도전하기로 했다. 무대에 설 수 있는 약간의 힘이라도 남아 있다면 사람들이 그녀에게 붙여준 '배우 이주실'이라는 이름에 보답해야 한다는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배우로서 '잘 나가던 시절'에는 찾지 않았던 지방 곳곳의 연극 무대에 올랐다. 배우는 그녀 1명, 스텝은 단 둘 뿐이었다.

"항암치료 때문에 몸무게가 35kg 정도까지 줄어서 무릎에 힘이 너무나 없었어요. 90분짜리 연극을 감당하기가 정말 힘들었죠. 하지만 무대에서 설령 쓰러진다 해도 지금까지 저를 아껴줬던 분들에게 보답할 수 있는 건 이 길뿐이라고 생각하니까 아프다는 사실조차 잊게 되더라고요."

◆ "봉사활동, 그건 중독이에요"

"처음에 1년 동안만 살 수 있다고 했는데 연극을 하다 보니 어느새 2년이 흘렀더라고요. 그래서 인간의 에너지는 마음먹기에 따라서 무한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그러면서 세상을 보는 눈이 많이 따뜻해졌고 제 도움이 필요한 곳을 찾아다니게 됐어요. 봉사활동, 그건 중독이에요."

그녀의 봉사활동 경력은 40여년. 홀트재단에 익명의 성금을 내면서부터 지금까지 꽃동네, 소록도, 동두천 기지 주변 등을 찾아다니며 나병환자나 기지촌 여성 등과 함께 생활했다. 주변의 무관심 속에 '반항아'라는 낙인이 찍힌 아이들을 돕고자 대안학교와 소년원을 찾기도 했다. 봉사활동이 이미 몸에 배인 그녀에게 투병 중 생긴 시간적 여유는 오히려 봉사활동에 더욱 매진할 수 있는 기회였다.

"암 세포는 눈에 보이니까 집중공략해서 치료할 수도 있지만, 마음의 병은 해결할 도리가 없잖아요. 누가 옆에서 도움을 조금 줄 뿐이죠. 그런데 눈을 크게 뜨고 보니까 이 세상에는 마음의 병이 깊은 사람들이 참 많더라고요."

◆ "암 환자들에게 희망의 증거 되겠습니다"

"반갑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제가 그랬던 것처럼 암에 붙들린 분들이 많을 것 같아 이렇게 인사를 건넵니다. 이제는 암이 죽음에 이르는 병도 아니고, 절망의 대상도 아닙니다. 여러분, 가장 중요한 것은 긍정적인 마음이에요. 사람은 일생을 살면서 여러 고통을 겪잖아요. 암도 그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죠 뭐."

'이주실 요법'. 투병 중에도 웃음을 잃지 않고 '하루를 10년처럼 살면 된다'며 굳건한 모습을 보이던 그녀가 암을 극복해내자 주변 사람들이 만든 용어다. 이겨낼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자신이 목표로 삼은 그 무언가를 향해 매진할 때 암도 극복해낼 수 있다는 의미다.

그녀는 연극, 뮤지컬, 드라마를 종횡무진하며 배우로서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국가암정보센터와 중앙노인보호전문기관 등에서 홍보대사 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다. 더 이상 병원도 찾지 않는다.

배움에 대한 열정도 남김없이 발휘했다. 지난 2001년에는 쉰여섯의 나이에 꽃동네 현도사회복지대학에 입학해 복지심리학 공부를 했고, 졸업 후에는 같은 대학 대학원 임상사회사업학과에서 배움을 이어갔다. 그리고 지난 달 19일에는 원광대학교 보건학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처음에는 많이 괴로웠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오랜 세월을 암과 같이 놀면서 지냈네요. 어떤 어려움이 와도 기왕에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툭툭 털고 한 번 부딪혀보자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이제 많은 암 환자들에게 제가 희망의 증거가 되어 드릴 겁니다."

[이상미 MK헬스 기자 lsmclick@mkhealt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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