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논과 니콘 역사 이야기

입력 2008. 9. 25. 13:07 수정 2008. 9. 25.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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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저널 버즈] 니콘이 D90을 발표했다. 올해 들어 벌써 몇 번째 신기종인지 모르겠다. 이것이 어떤 까닭에서인지는 판단할 근거가 없어 말하기 어려우나 D3 발표 이후 점화된 니콘의 신기종 출시는 그 기세가 대단하다. 그간 캐논 일변도였던 DSLR 시장의 판도를 꽤 많이 흔들어놨으니 D3의 파급 효과는 실로 엄청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니콘이 캐논을 다시금 앞지른다면 그것은 탈환이라고 말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적어도 카메라라는 광의적인 시각에서 본다면 말이다.

니콘의 역사는 지금으로부터 약 90여 년 전인 19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17년 도쿄계기제작소의 광학 부문과 이와키 유리 제조소의 반사경 부문을 통합하고 미쓰비시 합자회사 사장인 이와사키 소미후토시의 출자로 일본광학공업 주식회사를 설립한 것이 니콘의 시작이다. 그 후 일본광학공업은 쌍안경과 현미경을 제작하다 1932년에 카메라용 렌즈의 브랜드를 니코르라 명명하고 1946년 소형 카메라의 브랜드를 니콘으로 명명한다. 최초의 135 포맷 필름카메라는 1948년에 선보였다.

1959년 니콘에서는 기념비적인 동시에 이 회사를 대표적인 카메라 제조사 반열에 올려주는 카메라가 나왔습니다. 바로 니콘 F. 일안반사식 구조를 갖춘 이 카메라는 현재의 SLR 및 DSLR 카메라의 구조를 이루는 근간이 되었다. 니콘의 F 시리즈는 이후 1971년 F2, 1980년 F3를 거쳐 1988년 정통 F 시리즈 AF 카메라인 F4를 선보인다.

물론 니콘에서 AF 카메라로 이 F4가 최초는 아니었다. 이미 특수한 렌즈를 통해 구현해낸 F3AF라는 모델이 있었으며 이어진 F마운트의 연장 선상에서 현재의 AF 시스템과 연동해 적용할 실용기로 사이드라인에 해당하는 F-501이라는 모델이 1986년에 선보인 적이 있다.

플래그십인 F4는 니콘의 대표 카메라 모델답게 당시 최고의 성능과 내구성을 지닌 획기적인 모델이었다. 알루미늄 다이캐스팅 보디는 기존 니콘 라인업의 견고함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무게 부담을 줄였다. F4가 가진 무게는 지금으로서는 대단히 부담스러울 만한 무게지만 당시 수동기에서 AF카메라로 넘어오면서 늘어난 부피와 무게를 감안한다면 무겁다고 말할 것은 아니었다.

F3의 기계식 셔터는 최고 셔터속도를 1/2000초까지 끌어올렸다. 이후 FM2가 1/4000초의 셔터속도를 구현했지만 이 F4는 무려 1/8000초에 이르는 고속 셔터속도를 구현했다. 보다 정밀한 노출 값을 얻기 위한 구성으로 5분할 측광을 도입했으며 이전 AF 카메라에서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한 뛰어난 AF 성능은 당시 프레스 라인을 갈아치우기에 충분한 매력을 주었다.

그렇다면 캐논은? 캐논은 1933년 요시다 고로가 처남인 우찌다 사부로, 그의 수하였던 마에다 다께오와 함께 정밀 광학기기 연구소를 설립한 것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요시다 고로는 카메라 생산을 위해 연구소가 취한 접근 방식이 자신의 생각과 달라 1934년 가을, 연구소를 떠났다.

요시다 고로는 독실한 불교 신자였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만들고자 하는 카메라를 '관음'이라 이름 지었다. 관음은 불교에서 자비의 여신으로 불리는 천수관음을 지칭한다. 이것의 영문 표기가 KWANON(콰논)이었고 이것이 후에 캐논이 된다.

하지만 요시다 고로의 콰논은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요시다 고로는 10대 콰논 카메라를 완성했다고 했지만 그것을 실제로 본 사람은 없다. 1955년경으로 추정되는 관음 모델 D라는 것이 있긴 하지만 이것은 라이카 모델 II의 복제품일 뿐이고 제작자 역시 요시다 고로가 아니라고 한다.

최초의 캐논 카메라는 1936년의 한사 캐논이다. 1936년 6월, 정밀 광학 기기 연구소는 당시의 국수적 분위기를 반영해 '일본 정밀 광학 기기 연구소'로 변경했다. 그리고 그 해 8월, 아사히카메라에 한사 캐논 카메라 광고가 게재되었다.

이 카메라는 라이카의 모방품이었으며 니코르 50mm F3.5 렌즈를 달았다. 1936년 당시 니콘은 이미 군사 장비를 전문으로 하는 최신 제조 시스템을 갖춘 일본 최대 광학 제조사로 자리 잡고 있었다. 우찌다 사부로의 형인 우찌다 료노수케는 한때 이 니콘의 회계사였으며 이 연결고리를 통해 니콘 실무담당 부사장인 호리 도요타로와 연결되었다.

당시 니콘의 정책은 민간용 시장에 진입하는 것이었고 호리 도요타로는 고급 렌즈의 민간 응용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당시 캐논의 협조 요청 시기는 이것과 아주 완벽하게 맞물렸다. 이것이 바로 한사 캐논 개발 계약이 체결된 계기가 된 것이다.

전쟁이 끝난 후 1949년, 회사 이름을 캐논 카메라 주식회사로 바꿨다. 그들의 카메라는 여전히 라이카의 모방품이었지만 독자적인 세레나 렌즈를 개발했으며 1951년에 선보인 세레나 50mm F1.8 렌즈는 캐논의 걸작으로 꼽힌다.

1959년 니콘이 SLR 카메라인 니콘 F를 선보이던 해, 캐논은 Populaire를 의미하는 모델 P를 선보였다. 이 카메라는 여전히 라이카 M 시리즈의 구조를 취하는 RF 카메라였지만 라이카 M3의 바닥 판 제거 후 필름을 교체하는 바르낙 형이 아닌 경첩식 후면 덮개를 통한 필름 교체 방식을 취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형태의 필름 교체 방식은 1956년 선보인 모델 VT에서 처음 도입됐다.

RF 카메라는 지금도 라이카에서 선보이고 있지만 실용 영역에서는 이미 이 시기에 종말을 고하고 있었다. 니콘이 F를 선보이면서 출발한 SLR 방식은 캐논에서도 역시 같은 해 캐노플렉스를 선보이면서 시작됐다. 시기상으로 따지자면 캐노플렉스가 1959년 5월, 니콘 F가 6월이었으니 캐논이 빨랐던 셈이다. 캐논의 RF 카메라 라인업은 1968년 9월 7S의 생산 중단과 더불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니콘이 F를 필두로 한 SLR 라인업을 통해 프레스 및 포토그래퍼 시장을 장악하고 있을 때 캐논은 1964년이 되어서야 그에 대응할만한 라인업을 구축하기 시작한다. 전문 사진작가들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고급 SLR 카메라에 대한 응답은 이로부터 5년 후인 1971년, F-1을 통해 모습을 드러낸다. 니콘에 비해 무척 늦지만 -30도에서 60도에 이르기까지의 작동 보장 범위, 10만 컷 이상의 내구성을 기반으로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1980년 레이크플래시드 동계올림픽 공식 카메라로 지정되기도 했다.

1987년 봄, 현재의 캐논 마운트 시스템의 기반이 된 EOS 시스템이 등장했다. F-1에서부터 이어온 기존 FD 마운트를 통한 AF 시스템 등의 도입은 미놀타와 같은 당시 AF 시스템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악했기 때문에 캐논으로서는 보다 향상된 새로운 시스템이 필요했고 이 결과로 탄생한 것이 EOS 시스템이다.

EOS는 Electro Optical System의 약어이며 그리스신화의 이오스 여신을 의미하기도 한다. 전자접점과 초음파모터를 더한 EOS 마운트의 렌즈는 조용하고 빠른 AF를 구현해낼 수 있었으며 대구경 마운트를 통해 50mm F1.0이라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표준 렌즈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1987년 3월 선보인 EOS 650을 필두로 5월에는 EOS 620이 출시됐으며 1989년에는 EOS 시스템 첫 플래그십인 EOS-1이 등장했다.

1993년 9월 EOS KISS라는 캐논의 대중적인 SLR카메라가 선보였다. Keep it smart and silent의 약어인 KISS는 기존 EOS 시리즈 SLR 카메라의 메커니즘을 그대로 물려받으면서 누구나 쉽게 쓸 수 있고 가볍게 쓸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1992년 선보인 EOS 5는 카메라 업계에서 캐논의 입지를 확고히 다져준 초석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가벼운 카메라는 플래그십에 준하는 뛰어난 성능을 기반으로 스튜디오 시장을 장악했다. 니콘과 비교해 마이너로 취급받았던 캐논은 이 EOS 5를 기점으로 니콘과 대등한 입지를 갖춰가기 시작했다.

캐논이 니콘을 누르고 최고의 카메라 업체로 부상하게 된 것에는 디지털 기술의 선구적 개발 참여라는 항목이 더해져 있다. 캐논은 초기 코닥과의 제휴를 통해 1998년 3월과 12월에 각각 EOS D2000, EOS D6000이라는 DSLR 카메라를 선보였으며 2000년 9월, 캐논의 독자 모델인 EOS D30이 세상에 선보이면서 DSLR 업계에서의 캐논 입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1년에 선보인 EOS-1D를 통해 프레스 시장을 완전히 장악했다.

이렇게 이루어진 캐논의 아성은 최근 들어 니콘이 D3를 발표하는 시점까지 유지됐다. 어떤 이유가 있고 어떤 내부 사정이 있는지 알 길이 없지만 니콘이 D3에서 보여준 일갈은 캐논 일변도였던 DSLR 시장의 판도를 흔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니콘의 신제품 출시는 시종일관 캐논의 그것을 앞지르고 있다. 기기 자체가 갖는 문제가 어쩌고 하는 건 이것과는 다소 다른 얘기니 거론하지 않겠다.

D3 발표 이전부터 프레스 계통에서 일하면서 EOS 1D MarkIII를 주로 사용했다. 니콘이 D3로 캐논을 누르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을지 상상이 간다. 적어도 D2 계열 시절에는 캐논의 플래그십에 대응할 수준이 아니었으니까.

선발주자로 보다 많은 노하우를 갖고 일찌감치 정상에 올라선 니콘, 그리고 그 협력을 통한 카메라 개발을 시초로 차근차근 올라가 앞선 기술 개발로 디지털 시대를 이끌어온 캐논. 이제 과거의 대세와 근간의 대세는 그저 추억일 뿐이다. 니콘이 다시 도약했지만 캐논은 여전히 경쟁자다. 둘 중 어디가 뛰어나다고 판단할 수 없는 경쟁구도다. 과연 니콘 D90이 보급기 시장에서 어떤 위력을 보여줄지, EOS 450D와 1000D 이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캐논이 과연 어떤 수를 준비하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 캐논과 니콘의 연혁과 관계된 내용은 각각 니콘이미징코리아, 캐논코리아컨슈머이미징 사이트에서 참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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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혁 버즈리포터(crazystyl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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