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백업하고 검색한다..' 라이프로그' 시대

2008. 6. 11.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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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과 음성 등 멀티미디어로 일생의 모든 순간 기록 및 검색산 사람은 물론 죽은 사람의 인생도 백업 및 검색 가능

[서울경제 파퓰러사이언스] 동영상과 음성 등 멀티미디어로 일생의 모든 순간을 일일이 기록할 수 있는 것은 물론 검색을 통해 이를 확인해 볼 수 있는 라이프로그(Life Log)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누구를 만났는지, 그리고 무엇을 먹었는지 등이 동영상과 음성으로 재현된다.

이는 결국 산 사람은 물론 죽은 사람의 인생도 백업 및 검색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라이프로그가 미래의 새로운 문화코드로 자리 잡기에는 난제도 많다. 저장된 동영상과 음성이 사생활 침해는 물론 법적 분쟁의 빌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그 누구도 지금처럼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눌 수 없는 무시무시한 세상이 올 수도 있다.

블로그 다음 세대는 라이프로그

미래사회의 장례식장. 추모를 위해 모인 조문객들이 보인다. 이들은 앞서 간 사람의 일생이 담긴 한편의 영화를 보면서 울고 웃는다. 또한 그와의 추억을 떠올리는 한편 전혀 몰랐던 그의 내면을 이해하게 된다.

이는 생존했을 때 머리 속에 심어둔 '조이 칩'에 그의 일생이 고스란히 기록돼 있어 솜씨 좋게 편집한 결과다. 속칭 '리메모리'라고 불리는 것이다. 장례식장에서 상영되는 리메모리는 고인이 살아생전 찍어 남긴 앨범, 또는 고인이 남긴 육필과 비슷한 추억거리가 된다.

하지만 리메모리에는 보다 심각한 의미도 있다. 정작 본인도 잊었을지 모를, 또는 아무도 모르게 꼭꼭 숨겼을지 모를 일들이 고스란히 기록돼 있기 때문에 감추어진 진실을 만천하에 밝히는 결정적인 증거가 될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미래에 일생을 포장하는 기술로 이름을 날리게 된 리메모리의 편집자가 회사 중역의 리메모리를 편집하던 중 어두운 진실에 직면하게 된다는 영화 '파이널 컷'이 담고 있는 내용이다.

뇌에 장착된 보조기억장치란 허무맹랑한 공상에 불과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이 같은 개념과 기술은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 지금도 각종 포터블, 모바일 메모리를 휴대하고 다닌다는 지당한 사실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동영상과 음성 등 멀티미디어로 일생의 모든 순간을 일일이 기록할 수 있는 것은 물론 검색을 통해 확인해 볼 수 있는 '라이프로그(Life Log)'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누구를 만났는지, 그리고 무엇을 먹었는지를 동영상과 음성으로 재현할 수 있는 것.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영상미디어연구센터(센터장 고희동)는 라이프로그 시스템을 개발하고 연구원들이 시스템을 직접 장착, 체험해 보는 시험까지 마쳤다. 라이프로그란 블로그에 자기 생활을 기록하고, 자료를 올리며, 커뮤니케이션 통로로 활용하듯 일상생활을 멀티미디어로 기록하는 것을 말한다.

라이프로그 시스템은 크게 ▲사용자가 보고, 듣고, 행동하는 거의 모든 정보를 입력할 수 있는 센서 ▲정보를 지능적으로 인식하고 분류하는 라이프로그 미디어장치 ▲분류된 방대한 정보를 저장하는 메모리 서버로 구성돼 있다.

즉 카메라·블루투스 이어셋·모션 센서·전자태그(RFID) 리더 등 확장된 센서들을 장착하고 다니면 자신이 생활하면서 보고, 듣고, 손 대고, 행동한 내용이 고스란히 디지털 정보로 감지된다. 이 정보들은 함께 갖고 다닌 컴퓨터, 즉 라이프로그 미디어장치(LLM)에 전송돼 분류 과정을 거친 뒤 다시 무선 랜을 통해 서버로 이동, 통째로 저장된다.

저장된 멀티미디어 기록은 가령 이런 식으로 쓸 수 있다.

동료들과 맥주 집에 갔다. 한 달 전 다른 친구와 마셨던 수입 맥주 생각이 난다. 똑 같은 것을 주문하고 싶은데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 "뭐였지, 뭐였더라…." 가물가물한 기억이 좀처럼 떠오르지 않을 때 재빨리 라이프로그를 뒤져본다.

같이 마셨던 동료 이름이나 갔던 맥주 집 이름, 대강의 시간범위 등을 입력하자 몇 개의 항목이 검색된다. 맞는 것을 클릭해 보니 과연 한 달 전 친구와 맥주를 마시며 떠들고 있는 동영상이 음성과 함께 재생된다. "그래, 맥주 이름은 스타우트였구나."

지능적인 정보처리 기술이 핵심

물론 아무런 정보처리과정 없이 동영상을 고스란히 담아두기만 한다면 잊었던 맥주 이름을 검색하기는커녕 쓸데없이 저장 메모리만 잡아먹는 '쓰레기 정보'에 불과하다.

라이프로그 운영을 가능케 하는 핵심기술은 결국 라이프로그 미디어장치가 수행하는 정보처리과정인 '태깅 기술'에 있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동영상과 음성들 사이사이에 수없이 꼬리표를 끼워넣어 나중에 찾아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자신이 했던 행동이 어떻게 분류돼 나중에 검색이 가능한지 예를 들어보자.

모션 센서로 감지된 팔, 다리, 허리의 움직임은 일정한 규칙에 따라 걷기, 뛰기, 박수, 마시기, 컴퓨터 사용하기 등 30여 가지의 행동으로 구분된다. 손목이 탄력적으로 앞뒤로 오가는 움직임이 짧은 주기로 몇 차례 반복된다면 행동 분류 프로그램은 이를 '박수'로 규정한다.

이 같은 행동 구분은 간병인이 24시간 붙어있을 수 없는 치매노인이나 독거노인이 일상생활 도중 위급 상황에 빠지지 않는지 관리하기 위한 원격 건강관리시스템이나 가정 안에서 생활할 서비스 로봇을 개발하기 위해 각국에서 연구 중인 프로그램이다.

즉 모션 센서를 통해 입력된 방대한 정보들은 미디어장치에서 박수, 컴퓨터 업무, 마시기 등의 꼬리표가 삽입된 후 무선 랜을 통해 서버로 전송돼 저장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카메라와 블루투스 이어셋에 입력된 사람의 얼굴과 목소리는 처음에 한 명씩 이름을 달아두면 다음부터 화상과 음성자동인식을 거쳐 사람별로 검색이 가능하다.

장소는 GPS의 위치정보를 지도와 연계할 수 있고, 특정지점의 친구 집이나 맥주 집 등을 사람의 이름과 마찬가지로 직접 입력해서 꼬리표를 달아둘 수 있다. 손 댄 물건은 머지않은 미래에 모든 제품에 전자태그가 부착된다고 가정할 경우 손쉽게 100% 식별이 가능하다.

이렇게 체계적으로 분류된 정보들은 나중에 키워드를 쳐서 검색이 가능한 유용한 정보가 된다. 만난 사람의 얼굴을 보고 이름을 찾아내거나, '어제'와 '자동차'라는 시간과 물건 항목의 키워드를 입력해서 어제 술김에 대리운전으로 끌고 온 자동차를 어디에 주차해 두었는지 알 수 있다. 또한 친구 A의 이름과 '마시기'라는 행동 항목의 키워드를 이용해 친구 A와 함께 맥주를 마셨던 동영상을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한계는 있다. 현재 자동적으로 식별이 가능한 인간 행동은 구체적인 움직임과 결부된 30여 가지에 불과하다. 회의, 모임, 생일파티와 같은 보다 고차원적으로 추상화된 사회적 행동을 식별할 수 있는 컴퓨터 프로그램은 아직 개발되지 않은 단계다.

차세대 디지털 문화코드

그렇다면 이런 라이프로그 기술을 도대체 무엇에 쓸 수 있을까. 앞서 예를 든 것처럼 잊어버린 사람 이름이나 맥주 이름을 찾아내는 용도로 쓸모가 많다. 특히 치매나 기억장애 등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의 문제가 있는 환자들에게는 이 같은 기억보조장치가 삶의 질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다.

보다 치명적인 용도로의 활용도 상상이 가능하다. 영화에서 흔히 보듯 고도의 첨단기술로 무장한 첩보원들은 눈에 안 띄는 카메라와 마이크를 안경이나 귀 속에 숨겨놓고 눈에 띄지 않게 정보를 빼내곤 한다. 그런데 현재 개발된 라이프로그 시스템을 소형화하기만 한다면 더할 나위 없는 첩보 시스템이 된다.

지난 2004년 미 국방부 산하 고등연구계획국(DAPAR)은 라이프로그 연구과제를 기획한 적이 있었는데, DARPA가 관심을 가질만한 이유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처럼 쓸모가 많기는 하겠지만 어쩐지 뇌의 능력을 컴퓨터에 넘겨주는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또한 영화 파이널 컷에서 "웬만한 기억은 잊어버리고 사는 것이 인간다운 삶"이라는 비판적인 견해가 나오는 것처럼 자신이 1년 365일 살아온 모든 것을 100% 복기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이와 관계없이 재미있어 보인다는 문화적인 요인이 라이프로그 족(族)의 탄생을 불러올지도 모른다. 사실상 가장 사적인 기록을 블로그에 남기고, 이를 통해 사람들을 만나고 교제하는 일이 '왜' 필요하냐고 묻는다면 이에 대답할 수 있을까.

이처럼 라이프로그는 자신의 인생에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소중한 순간들을 생생히 기억하고 싶다는 욕구만으로 번성할지 모른다.

마치 결혼식과 돌잔치를 캠코더로 담아 가족들의 단란한 한 때를 두고두고 즐기는 사람들처럼 인생의 중요한 고비를 생생한 동영상과 음성으로 추억하고 싶어 하지 않을까. 친구들과 웃고 떠들던 순간이나 드라마보다 더 극적인 순간 등을 담은 리얼 동영상을 편집해 인터넷상의 '○○○의 라이프로그'에 올려놓고 클릭해 보지 않을까.

최근 방송되고 있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나 인터넷의 대세로 자리 잡은 UCC의 인기를 감안한다면 실제 동영상을 보는 재미가 적지 않을 것이다. 영화 파이널 컷에서처럼 장례의식의 일환으로, 또는 자서전이나 가족사를 남기듯 일생의 기록을 담은 편집본을 남기려는 욕구도 없지 않을 것이다.

라이프로그 과제의 연구책임자인 KIST 김형동 연구원은 라이프로그로 무엇을 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현재의 기술로 무엇을 할 수 있느냐에 대한 대답이 바로 라이프로그"라고 대답했다. 즉 컴퓨터의 저장능력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고 있고, 유비쿼터스 네트워크 기술도 이미 확보돼 있는데, 이런 기술로 할 수 있는 일이 바로 라이프로그라는 것이다.

또 다른 사회화인가, 사생활 침해인가

하지만 라이프로그가 미래의 새로운 문화코드로 자리 잡기에는 기술적 문제가 아닌 다른 문제가 남아있다. 바로 명백한 사생활 침해 가능성이다.

라이프로그에는 필수적으로 수많은 타인의 기록이 담기게 마련이다. 자신이 만나고 대화한 것을 머리속에 기억하고 대화로 공유하는 일은 오랜 사회화를 걸어온 인류의 관습과 예의로 일정하게 제어되고 있다.

하지만 동영상과 음성으로 기록된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을 저장하고 공공연하게 밝히는 일은 즐거움만큼 분쟁과 갈등을 일으킬 수 있다. 심지어 저장된 동영상과 음성이 나중에 있을지도 모를 법적 분쟁의 빌미가 될 수도 있다.

이럴 경우 가장 사적인 대화조차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을 수 없을 것이다. 모든 사람들의 생활이 어느 누군가의 카메라에 의해 포착되고, 언제 무슨 일을 했는지 어느 서버에선가는 찾아낼 수 있다는 무시무시한 세상이 될지도 모른다.

결국 라이프로그 기술은 사람들 사이를 더욱 긴밀하게 맺어주는 새로운 가능성과 함께 사적인 영역을 남기지 않는 어두운 가능성을 모두 갖고 있는 셈이다.

라이프로그 시스템 구현은 어떻게

KIST가 구현한 라이프로그 시스템은 이미 상용화한 제품들로 이루어져 있다. 모자 끝에는 동영상을 기록하는 카메라를 부착하고, 귀에는 블루투스 이어셋을 꽂아서 음성을 기록한다. 카메라와 블루투스 이어셋은 요즘 인터넷 화상연결에 쓰이는 것으로 각각 3만원, 1만8,000원에 불과하다. 사용자의 움직임을 인식하기 위해 모션 센서 3개를 한쪽 손목과 허리, 한쪽 무릎에 달았다. 이 센서를 통해 사용자가 걷는지, 누웠는지, 마시는지, 흔드는지를 알 수 있다. KIST 연구팀은 다소 비싼 200만원짜리 연구용 모션 센서를 썼지만 보다 기능이 단순한 센서를 활용한다면 약 30만원으로 가능하다. 또한 손에는 다루고 있는 물건이 무엇인지 전자태그(RFID)를 판독하는 아이글러브를 끼었는데, 이것은 7만원짜리다. 이렇게 카메라, 블루투스 이어셋, 모션 센서, 아이글러브로 잡아낸 멀티미디어 정보들은 라이프로그 미디어장치(LLM)로 옮겨져 나중에 검색해 찾아볼 수 있도록 똑똑하게 분류된다. 이 미디어장치는 시판중인 소형 컴퓨터를 사용했다. 핸드백 속에 쏙 들어갈 만한 손바닥 크기의 컴퓨터로 110만원짜리 일제 컴퓨터다. 선택사양이라고 할 수 있는 헤드 마운티드 디스플레이(HMD)가 가장 고가의 부품이다. 안경처럼 쓰고 있는 이 디스플레이는 별도의 스크린이 없어도 찾아낸 동영상을 눈앞에서 재생해 볼 수 있고, 키보드 없이 허공에서 입력도 가능하다. 가격은 160만원. 미디어장치로 쓰고 있는 컴퓨터가 키보드와 디스플레이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만난 사람이 누군지 가물가물할 경우 눈치 채지 않게 살짝 검색해 볼 수 있다. 또한 계속 누적되는 정보를 안전하게 전송해 따로 저장해 둘 서버가 필요하다. KIST 연구팀이 취침 시간과 가장 사적인 시간 등을 빼고 활동시간을 중심으로 하루 12시간동안 시스템을 켜두었을 때 저장된 정보량은 780MB이어서 메모리도 기술적으로나 비용상 심각한 어려움은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서버 비용을 별도로 했을 때 KIST 연구팀이 구현한 라이프로그 시스템의 비용은 총 480만원. 하지만 센서를 저렴한 것으로 바꾸고 헤드 마운티드 디스플레이를 생략한다면 150만원으로 지금 당장 라이프로그를 실현할 수 있다.

김희원 한국일보 기자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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