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평 줄게 4억8000만원 내라".. 서민엔 사형선고
ㆍ누구를 위한 재개발인가 - (2) 소형주택이 사라진다
부동산 투기와 선거바람에 재개발 사업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났지만 서민들에게 재개발은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재개발조합과 시공사는 막대한 개발이익을 차지하고 있지만 세입자와 영세한 집 주인들은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고 있다.
10일 경향신문은 올해 분양 예정인 서울 중구 순화동 재개발 1-1구역의 주택규모를 분석했다. 그 결과 개발 전 71개 주택·근린생활시설 중 30채는 건평이 10평 이하였다. 20평형대는 25채, 30평형대는 11채 등의 순이었다. 40평형대와 50평형대는 각각 2채였고 74평형이 1채였다.
재개발 후 분양할 주택규모는 46~82평형(152~270㎡)의 중대형으로만 구성됐다. 서민들이 거주하던 단독주택 밀집지역이 고급 주상복합단지로 바뀌는 것이다. 세입자나 추가부담금을 낼 형편이 안되는 원주민들은 이곳을 떠나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야 한다.
실제로 50평형대 아파트를 배정받은 20평형 단독주택 소유자들은 4억8000여만원의 추가부담금을 내기 어려워 조합원 주택분양을 포기했다. 22평형 단독주택을 보유하고 있던 한 원주민은 "조합 창립총회 당시 조합의 설명과는 달리 중대형 평형으로만 주택 건설이 이뤄지는 것은 무효"라고 시공사와 조합에 항의하다 집을 수용당하고 세입자로 전락했다.
참사가 발생한 용산4구역도 사정은 비슷하다. 시공사들은 올해 상반기에 주상복합아파트 3개동(493가구)과 업무시설 3개동 중 중대형 아파트(161~300㎡, 48~91평형) 135가구를 분양할 계획이었다. 이곳은 재개발 이전에 730가구가 살았지만 새로 지어질 주택은 493가구에 불과해 30%는 이곳을 떠나야 한다. 세입자는 456가구였지만 새롭게 들어설 임대주택은 84가구밖에 안된다.
서민들의 주거지였던 곳에 중대형 고급아파트가 들어서는 이유는 간단하다. 땅을 가진 조합이나 시공사가 개발이익을 최대한 높이기 위해 수익성이 좋은 대형·고급 아파트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특히 서울지역은 택지 부족으로 신규 주택 공급이 적었기 때문에 중대형 아파트라도 수요층이 두꺼운 편이다.
박원갑 스피드뱅크 부사장은 "중대형 규모의 아파트는 평당 분양가가 소형보다 높기 때문에 조합과 건설사의 수입과 직결된다"면서 "이는 사실상 재개발이 주거환경 개선보다는 조합의 재산 증식과 건설사의 수익사업으로 변질됐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부동산 정보업체 부동산뱅크가 지난해 서울지역 재개발 사업에서 나온 아파트 분양물량을 규모별로 조사한 결과, 전용면적 60㎡(18평) 미만 소형 주택은 191가구에 불과했다. 반면 전용면적 85㎡(25.7평)를 초과하는 대형 주택은 10배가 넘는 2046가구에 달했다. 이는 중형주택(60㎡ 이상 85㎡ 미만) 1422가구보다 600여가구 많은 것이다.
결국 재개발 사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인식이 강해지면서 소형 서민주택이 지어지지 않아 원주민 재정착률도 떨어지고 있다. 애초 이곳에 살고 있던 원주민들은 더 싼 집을 찾아 삶의 터전을 떠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서울 성동구 왕십리에서 12년간 부엌이 딸린 10평 단칸방에서 살던 강모 할머니(83)는 재개발로 갑작스레 이사를 해야 했다. 전세보증금 1400만원에 이주비 550만원으로 셋방을 구했지만 주변 전셋값이 올라 이사할 곳을 찾지 못했다. 결국 강 할머니는 성남까지 옮겨가 월세를 살고 있다.
세입자만 문제인 게 아니다. 서울 응암동에서 54평대 2층 주택을 가지고 있던 이모씨(61)는 가사도우미 일을 해도 지하층과 2층의 세를 받아 그런 대로 생활할 수 있었지만 재개발 사업이 진행되면서 도리어 빚쟁이가 될 판이다. 재개발로 임대료 수익이 없어지고, 배정된 43평형 아파트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2억1000만원을 마련해야 한다. 이씨 집의 권리가액(감정가액)은 3억8000만원인데, 아파트 분양가는 5억9000만원이기 때문이다.
이씨는 "처음에는 헌집 주면 좋은 새집 한 채 준다고 해서 재개발에 동의했지만 이제는 세입자들에게 보증금 빼주고 나면 4억원을 더 들여야 한다"면서 "원주민을 알거지로 만드는 개발사업을 왜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 박재현·구교형기자 jhpark@kyunghyang.com >- 대한민국 희망언론! 경향신문, 구독신청(http://smile.khan.co.kr) -ⓒ 경향신문 & 경향닷컴(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경향닷컴은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공공성 강화' 근본 해법 빠져 "정치적 미봉책"
- 뉴타운發 전·월세 대란 벌써 시작됐다
- 세입자들 "실상 모르는 정부 헛발질"
- [단독]‘계엄 때 국회 진입’ 수방사, 수개월 전 헌재·국회 도면 미리 확보해놨다
- ‘김건희 특혜 의혹’ 양평고속도로, 공무원 7명만 징계···국토부 ‘꼬리 자르기’ 논란
- [속보]대전 초등생 살해 교사 신상공개 결정···내일 대전경찰 홈페이지에 공개
- ‘최강야구’ 치닫는 갈등···JTBC “수십억 과다 청구, PD 교체” 장시원 PD “JTBC 2년간 수익배분
- [단독]‘오세훈 후원’ 김한정 “명태균에 송금, 윤석열에 오세훈 잘 보이게 하려던 것”
- EBS 사장에 신동호 ‘내정설’···이진숙의 ‘MBC 전횡 콤비’ 알박기 논란
- 부모가 자녀를, 자녀가 부모를…‘친족 살인’ 범죄 잇따라 발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