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왕설래]"빨리빨리" 증후군

2005. 12. 25.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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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가장 빨리 배우는 말이 "안녕하세요"고 다음이 "빨리빨리"라고 한다. 중국과 동남아 상점이나 골프장에서 현지 종사원들이 "빨리빨리"라고 외치는 것도 쉽게 볼 수 있는 일이다. 한국인 특유의 조급함을 보여주는 "빨리빨리"는 늘 우리와 함께하는 단어다. 양반 문화가 지배하던 조선 시대까지만 해도 '느긋함과 여유'가 한국인의 정서였지만, 1960년대 이후 '초고속 압축성장 시대' '개발 시대'가 진행되면서 조급함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물론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한국이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하고 정보기술(IT)과 생명공학(BT) 등 첨단 산업에서 국제 경쟁력을 보유하기까지는 '빨리빨리'에 담긴 근면성·도전 정신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사람 말고는 가진 자원이 없어 쉬지 않고 일한 덕분에 '오늘의 한국'이 가능했던 것이다.

문제는 부정적 측면이다. 양은 냄비처럼 빨리 끓고 식는 것에 빗대 '냄비 근성'이라고도 표현하는 '빨리빨리' 문화는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시하며 서두르는 바람에 적잖은 폐단을 낳고 있다. '가장 빠르고, 가장 저렴하게' 건설됐다고 자랑하던 경부고속도로는 유지·보수비가 공사비의 몇 배를 넘는 날림 공사로 드러나면서 '빨리빨리' 후유증의 대표적 사례로 지목됐고, 90년대에는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이 그 불명예를 이어받기도 했다.

이제 황우석 교수 논문 조작사건이 그 바통을 넘겨받고 말았다. 전 국민의 충격과 허탈, 학계에 미친 부정적인 영향 등을 감안하면 황 교수의 조급함이 낳은 이번 사태는 '빨리빨리 최악의 사례'로 꼽힐 만하다. AP통신과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등 해외 언론들도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가 원인 중 하나라고 분석한다. 이번 사태는 원칙을 지키지 않는 '빨리빨리'는 결국 파멸로 가는 최악의 선택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일깨워 준다.

이익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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