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관중? 오 마이 갓!"

2009. 8. 20.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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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공연에서는 김연아 선수 못지않게, 베테랑 선수들의 연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98년 나가노 올림픽 남자 싱글 금메달리스트 일리아 쿨릭과, 캐나다 최초의 아이스댄스 세계챔피언 셰린 본의 흥미로운 연기는 팬들의 열광적인 호응을 이끌어냈죠.

다른 아이스쇼와 캐스팅이 겹치면서 출연진 섭외에 진땀을 흘렸던 주최 측은, '대타'로 영입했던 이 선수들 덕분에 쇼의 완성도가 훨씬 높아졌다며 환호했습니다.

이번에 서울에서의 일주일을 잊지 못할 거라고 한 목소리를 낸 두 선수의 목소리를 함께 담았습니다.

** 끝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명복을 빕니다. 자유와 민주주의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체감하는 요즘, 이를 위해 헌신하신 분들의 부재가 더욱 크게 느껴지리라는 안타까움이 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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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셰린 본

Q. 당신의 연기는 이번 아이스쇼의 하이라이트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서울에서의 경험이 어땠나요?

- 너무 놀라웠어요. 이런 관중은 처음이었어요. 작은 팔동작만으로도 함성이 터지더라구요. 서울에서 이런 쇼를 경험한 것에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록 콘서트 같았어요. 이런 호응을 보이는 팬 앞에서 연기하는 것은 신나는 일입니다.

Q. 아이스댄스 선수로 활약했던 경험이, 당신 연기의 특색으로 이어진 거겠죠?

- 나는 전직 아이스 댄서로 파트너가 있었죠. 지금은 의자와 함께 하지만요^^ 계속 공연을 하면서 뭔가 색다른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게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점프는 뛰지 않지만 관객들을 즐겁게 하려고 노력합니다.

매번 뭔가 다른 걸 하려고 노력합니다. 이번에는 의자를 이용해 '탱고'를, 또 사람들이 잘 아는 뮤지컬 '올 댓 재즈'를 연기했죠. 사람들의 흥분한 듯한 호응을 받기를 원합니다. 콘서트나 브로드웨이 쇼처럼 큰 공연이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것처럼, 저도 그러길 바랍니다. 그게 제 직업이니까요.

Q. 당신이 지난 시즌 김연아 선수의 프로그램 음악 선택에 도움을 줬다고 들었는데요?

- 그리 많은 도움을 준 건 아닙니다. 제 아이스 댄스 팀을 위해 (김연아 선수의 안무가인) 데이빗 윌슨과 회의할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데이빗이 제 CD에 담긴 음악 하나를 듣더니, "세상에, 이 음악을 연아를 위해 좀 써도 될까?"라고 감탄했어요. 그게 지난 시즌 연아의 쇼트프로그램 음악(죽음의 무도)이었어요. 비록 작은 도움이었지만 정말 행복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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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야 쿨릭 ▷

Q. 많은 팬들이 당신의 연기에 감탄했습니다. 당신은 어땠나요?

- 환상적인 쇼였습니다. 이런 분위기일 지 상상도 할 수 없었습니다. 한국 팬들에 대해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짜릿한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고, 연기할 때 엄청난 힘과 에너지를 얻었습니다. 연기를 멈추기가 싫을 정도였습니다.

Q. 11년 전에 현역에서 은퇴했다는 걸 믿기 힘들 정도로 높은 수준의 스케이팅을 유지하는 비결이 뭐죠?

- 지금도 공연을 많이 하기 때문입니다. 1998년 올림픽 뒤에 은퇴하고, 계속해서 열심히 운동했습니다. 프로선수로 전 세계를 돌며 공연을 하죠. 1년에 80회 정도 공연을 했습니다. 운동도 많이 해야 하고, 서로 다른 프로그램과 의상에 적응해야 하고, 여러 경기장을 돌아다니는 고된 여행을 견디려면 체력을 유지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프로로서의 삶을 즐기게 됐습니다. 그래서 기량을 유지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Q. 당신은 지난 1998년 시즌에 러시아 선수권, NHK 트로피, 챔피언스 시리즈 파이널(지금의 그랑프리 파이널), 그리고 올림픽까지 우승하면서 최고의 시즌을 보냈습니다. 그리고는 갑자기 은퇴했지요. 이유가 뭐였나요?

- 대회 출전의 스트레스 때문이었습니다. 컴피티션은 선수에게 큰 부담이 되지요. 올림픽 금메달이 궁극적인 목표였고, 그걸 이룬 뒤에 '이제 뭘 하지'라고 자문했습니다. 제 답은 피겨의 예술적인 면을 추구하고 싶다는 거였죠. 컴피티션에서는 아무래도 예술적인 측면에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규칙도, 한계도 없는 자유로운 스케이팅을 즐기기 위해 프로의 삶을 택했습니다. 그 선택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Q. 당신의 아내이자, 당신처럼 위대한 올림픽 챔피언인 예카테리나 고르디바(1988년, 94년 페어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파트너이자 전 남편인 고 세르게이 그린코프와 함께 역사상 가장 위대한 페어 연기 가운데 하나를 보여준 걸로 평가됩니다)에게 서울에서의 경험을 이야기했나요?

-그럼요. 거의 한 시간 동안 전화로 서울에서의 쇼가 얼마나 멋졌는지를 자랑했습니다. 아내도 같이 흥분해서는 믿을 수 없다며 언젠가 함께 서울에 와서 멋진 쇼를 하자고 말했습니다.

이성훈 che0314@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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