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훈의 밥상 공부] 설탕은 싫지만 솜사탕은 좋은 이유

정재훈 약사, 음식칼럼니스트 2016. 6. 3. 08:2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단맛 선호는 본능… 조선 시대 솜사탕은 밀봉 항아리에 3~4년 보관 후 먹어개인 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입맛도 훈련으로 바꿀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순수한 설탕을 먹는 걸 좋아한다.” - 브리야-사바랭

“당장에 주방에 가서 설탕 한 숟가락을 입에 털어 넣어보라, 기분이 좋아지나. 인상 팍 쓰며 불쾌하다고 말하는 이들이 상당할 것이다.” - 황교익 맛칼럼니스트

21세기 대한민국 대표 맛칼럼니스트와 19세기 프랑스의 원조 미식저술가의 맛 평가는 정반대이다. 누구 말이 맞을까? 나는 황교익 맛칼럼니스트의 말에 동의한다. 순수한 설탕을 맛보는 건 생각만 해도 불쾌하다. 그런데 의문이 생긴다. 순수한 설탕의 맛이야 그대로일 텐데, 그동안 무엇이 바뀐 걸까. 나를 비롯한 대다수의 성인은 왜 달콤한 음식은 좋아하면서도 설탕만 따로 먹는 건 싫어하는 걸까.

아기들은 본능적으로 설탕을 좋아한다

우리에겐 두 가지 입맛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나는 날 때부터 가지고 태어나는 본능적 입맛, 다른 하나는 배워서 만들어지는 후천적 입맛이다. 성인과는 달리 아기들은 설탕을 손으로 찍어먹는 걸 좋아한다. 본능적 단맛 선호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본능적 입맛보다 후천적 입맛의 영향력이 강해진다. 우리가 순수한 설탕을 싫어하게 되는 것은 어느 정도 나이가 들고, 당대의 음식 문화에 대해 배우기 시작하면서부터다.

그렇다고 본성적 입맛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쉬운 예로 설탕의 경우를 돌아보자. 백설탕을 열로 녹인 다음 작은 노즐로 공기 중으로 뿜어내면서 빠르게 식히면 실처럼 가는 유리질의 설탕으로 바뀐다. 결정의 구조가 다를 뿐, 똑같은 설탕이다. 그런데, 순수한 설탕을 입에 넣길 거부하는 나 같은 사람도, 가느다란 실 가닥을 모아놓은 모양의 이 설탕은 입에 넣고 녹여 먹는다.

이게 바로 솜사탕이다. 질감을 달리했을 뿐, 설탕과 동일한 단맛을 내는 솜사탕이지만, 여름철 놀이공원에 가면 그걸 들고 다니는 다 큰 성인들이 제법 많다. 같은 재료로 만든 같은 음식이지만, 그 중 솜사탕만을 받아들이는 이유는 자라면서 음식에 대해 배운 지식, 즉 식문화의 영향이다. 결국 순수한 설탕의 단맛을 받아들일 수 있느냐의 문제는 본성의 문제가 아니라 시대의 흐름에 따르는 상대적인 문제인 것이다.

후천적 입맛을 따르는 맛 평가는 상대적이다. 조상 대대로 즐기던 은은한 단맛의 전통은 후대인들의 상상일 가능성이 높다. 브리야-사바랭보다 1세기를 앞서 조선의 의원 이시필이 쓴 ‘소문사설’에는 두 가지 단 음식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한입에 사랑에 빠지는 음식 드물어, 여러 번 맛볼수록 호감 는다

하나는 유즙 가루에 대한 기록으로, 우유를 말린 가루에 설탕가루를 섞어 먹으면, “씹기도 전에 이미 사라지고 없다. 시원하고 달기가 비할 바 없다”고 썼으며, 다른 하나는 솜사탕에 대한 기록으로, 백당 덩어리를 여러 차례 잡아 늘여 색이 희고 결이 보송보송하게 되면 항아리 속에 단단히 봉해서 3,4년을 보관해 두었다가 맛보면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다고 적고 있다. 300년 전 조선에서 순수한 설탕에 대한 맛 평가를 요청한다면, 우리 조상들 대부분은 브리야-사바랭의 평가에 동의했을 것이다.

인간의 본성적 입맛은 변하지 않았다. 갓난아기가 설탕물을 좋아한다는 건 과거의 기록이나 현대 과학자들의 실험을 통해서나 증명된 사실이다. 하지만 성인의 입맛은 후천적이며 상대적 이다. 그러니 입맛을 바꾸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영국의 음식 작가 비 윌슨은 자신의 신작 ‘첫입(First Bite)’에서 고정불변의 입맛이란 없으며, 음식 맛에 대한 선호는 훈련에 따라 얼마든지 새롭게 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윌슨은 국가 또는 사회 전체의 입맛을 바꾸는 것도 물론 가능하다고 이야기하며 핀란드의 성공 사례를 든다. 영국식으로 어린이에게 음식에 대한 건강정보를 제공하는 것보다는 다양한 음식을 맛보고, 식재료를 만져보며 노출 빈도를 늘려서 친숙해지도록 하는 핀란드 방식이 건강한 입맛을 기르는데 더 효과적이라는 조언도 빼놓지 않는다.

요약하면, “한입에 사랑에 빠지는 음식은 드물다, 여러 번 맛보면 고기뿐만 아니라 채소 요리도 즐길 수 있게 된다. 짠 음식, 단 음식에 대한 선호도 반대의 경험을 늘려주면 충분히 바꿀 수 있다”는 이야기다. 단맛에 중독되어서 큰일이라고 걱정하는 사람들을 위해 번역서가 나오길 기대해본다.

정재훈은 과학, 역사, 문화를 아우르는 다양한 관점에서 음식의 이면에 숨겨진 사실을 탐구하는 데 관심이 많은 약사다. 강한 잡식성으로 새로운 음식을 맛보는 걸 좋아한다. 잡지, TV, 라디오 등 여러 매체를 통해 음식과 약에 대한 과학적 정보를 전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정재훈의 생각하는 식탁’이 있다.

- Copyrights ⓒ 조선비즈 & ChosunBiz.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