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현실이 제조업까지 바꾼다

채민기 기자 2016. 4. 8. 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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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현실로 시험 주행, 2014년 창업한 신생 회사가 시속 320km 1000마력 전기 콘셉트카 발표
가상현실·증강현실 기술로 제조업의 효율성을 높이는 사례가 늘고 있다. 태블릿 PC로 항공기 조립 상태를 점검하는 에어버스의 증강현실 시스템. /에어버스 제공
동작 인식 센서를 착용한 메르세데스벤츠 기술자의 움직임에 따라 화면 속 ‘아바타’가 자동차를 조립하는 장면(위). 마이크로소프트의 ‘홀로렌즈’ 헤드셋을 쓴 디자이너들이 개발 중인 로봇 팔의 3차원 이미지를 보며 의견을 나누는 모습. /각 사 제공

'패러데이 퓨처'(Faraday Future)는 테슬라의 유력한 대항마로 거론되는 미국의 전기차 벤처 기업이다. 이 회사는 작년까지만 해도 자동차와 정보기술(IT) 업계에 이름조차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다 올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IT 전시회 CES(Consumer Electronics Show)에서 일약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비록 양산(量産) 단계가 아닌 콘셉트카이긴 하지만 2014년 4월 창업한 신생 회사가 CES 개막을 이틀 앞두고 최고 시속 320㎞를 내는 1000마력(馬力)짜리 전기차를 발표한 것이다.

패러데이 퓨처가 단기간에 전기차를 개발한 비결은 가상현실(virtual reality· VR) 기술이다. 실제 자동차 시제품을 만드는 대신 가상현실로 시험 주행을 한 것이다. 가상으로 시뮬레이션한 결과를 통해 오류를 바로잡고 성능을 향상하면서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갖추는 데 드는 시간을 대폭 줄였다.

패러데이 퓨처의 디자인 총괄 리처드 김은 "처음 주어진 일정은 불가능에 가까웠지만 가상현실을 활용해 18개월 만에 콘셉트카를 개발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국계 미국인인 그는 이 회사에 합류하기 전 BMW에서 전기차 'i시리즈' 디자인을 이끈 인물이다.

가상현실이 제조업을 바꾸고 있다. 산업 현장에서 개발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가상현실 기술을 적극 활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현실과 동떨어진 세계의 모습을 진짜처럼 보이게 하는 가상현실 기술과 눈앞의 현실을 담은 영상에 여러 정보를 추가해 보여주는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AR) 기술을 실제 하드웨어를 개발할 때 채택하는 사례가 빠르게 늘고 있다.

◇"3주 걸리던 점검 작업 사흘 만에"

항공기 제조사 에어버스는 증강현실을 이용해 여객기 조립 상태를 점검하는 기술을 테스트하고 있다. 대형 여객기 한 대에 들어가는 전선이나 배관의 길이는 모두 합치면 500㎞에 이른다. 막대한 양의 선(線)을 정확하게 연결하기 위해 6만여개의 거치대가 쓰인다. 하나라도 잘못 연결되면 대형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에어버스의 증강현실 시스템은 태블릿 PC에 특수 센서를 장착한 것이다. 태블릿에 탑재된 카메라로 거치대가 장착된 곳을 비추면 실제 촬영한 모습과 '모범 답안'에 해당하는 정확한 조립 형태를 화면에 함께 보여준다. 작업자는 두 화면을 비교하면서 거치대가 제대로 설치됐는지 간단하게 확인하고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는 것이다. 에어버스 측은 "과거 3주 걸린 거치대 점검 작업을 증강현실 기술을 써 이제는 사흘 만에 끝낸다"고 설명했다.

자동차 업계에서도 가상·증강현실 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지난해 10월 '산업 4.0(industrie 4.0)'이라는 계획을 발표했다. 자동차의 기획·디자인·생산부터 판매·마케팅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디지털화·자동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메르세데스벤츠 디터 체체 회장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가장 혁신적인 자동차 제조사가 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메르세데스벤츠의 계획에는 가상 조립(virtual assembly)이라는 기술이 있다. 작업자가 부품을 손에 들고 조립하는 동작을 취하면 센서가 이를 인식해 화면 속 '아바타'가 똑같이 움직이다. 부품을 하나하나 조립해 진짜로 자동차를 만들지 않아도 아바타를 움직여 차를 완성해가는 과정을 가상으로 경험할 수 있다. 숙련된 조립 기술자들에게 가상 체험을 시킨 뒤 이들의 의견을 반영해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생산 라인을 설치하는 것이다. 이 회사는 에어버스처럼 부품이 장착된 실제 모습과 정확한 조립 상태를 한번에 보여줘 오류를 찾아내는 증강현실 기술도 사용한다.

포드·GM과 같은 자동차 회사들도 개발 단계부터 가상현실을 활용하고 있다. 시제품을 제작하기에 앞서 디자인을 VR 콘텐츠로 만드는 것이다. 전용 헤드셋을 쓰고 이 콘텐츠를 보면 자동차가 실제처럼 눈앞에 영상으로 나타나고, 현실에서 작업하는 것처럼 가상의 자동차를 살펴볼 수 있다.

공간적 제약을 극복할 수 있다는 점도 가상현실의 강점이다. 가상현실용 디자인 콘텐츠를 전 세계에서 근무하는 담당자들이 함께 보면서 의견을 나누는 것이다.

◇"산업용 가상현실 시장 잡아라"

제조업 현장에서 가상현실을 활용하는 사례가 늘면서 가상현실 소프트웨어·하드웨어를 만드는 업체들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산업용 가상현실이라는 새 시장을 잡기 위한 경쟁이 본격화한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지난해 말 3D(입체) 설계 소프트웨어 업체 '오토데스크'와 손잡고 디자인 프로그램 개발에 나섰다. 일반적인 3D 설계는 입체로 그린 도면을 컴퓨터 모니터로 보는 방식이다. MS와 오토데스크가 개발 중인 프로그램은 디자인한 제품의 3차원 가상 이미지를 실물이 눈앞에 있는 것처럼 보여준다. MS의 '홀로렌즈'(Hololens)라는 헤드셋을 쓰면 입체 이미지로 볼 수 있다. 홀로렌즈는 눈앞에 보이는 실제 공간 위에 컴퓨터가 그려낸 홀로그램 영상을 덮어서 보여주는 기기다.

홀로렌즈로 보는 가상 이미지는 손짓으로 자유롭게 위치와 모양, 크기를 바꿀 수 있다. 예컨대 이 기술을 건축 설계에 적용하면 도면대로 건물을 지었을 때 어떤 모습이 되는지 입체 이미지로 볼 수 있다. 이미지의 모양을 바꾸거나 실물 크기로 키워서 안에 들어가 보는 경험도 가능하다. 여러 명의 디자이너가 작업에 참여하는 경우엔 각자 홀로렌즈를 쓰고 실제 건물이 눈앞에 있는 것처럼 보면서 의견을 나눌 수 있다.

국내 업체도 예외는 아니다. 삼성SDS는 지난달 31일 콘퍼런스를 열고 가상현실 기반의 창고 관리 시스템을 발표했다. 물류 담당자가 가상현실 헤드셋을 착용하면 창고의 실제 모습과 비슷한 3차원 이미지가 나타난다. 여기에 창고의 재고 수량, 물품의 위치 정보 등 데이터가 연동돼 있다. 세계 각지의 창고를 일일이 방문하지 않아도 전 세계 창고 안에 어떤 물품이 얼마나 있는지, 어디에 쌓여 있는지 두 눈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삼성SDS는 삼성전자 제품의 해외 물류를 관리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전 세계에서 창고를 운영한다. 삼성SDS는 가상현실 창고 관리 기술을 우선 자사가 운영하는 창고에 적용한 뒤 외부 고객에게도 판매할 계획이다.

가상현실은 막 시장이 형성되는 단계다. 헤드셋 등 기기나 콘텐츠 보급이 늘어나면 산업계에서 가상현실 기술이 차지하는 비중도 커질 전망이다. 독일 시장 조사 업체 스태티스타는 2014년 9000만달러(약 1038억원) 정도였던 세계 가상현실 기기·소프트웨어 매출 규모가 매년 급증해 오는 2018년엔 58배인 52억달러(약 6조300억원)로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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