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절대평가 도입한 연세대 의대의 성공.. "성적도 협동심도 쑥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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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모여 연구하는 연세대 의대생들의 모습. 2014년 절대평가를 도입한 결과 연세대 의대에는 “공부할 시간도 모자란데 연구하고 봉사를 어떻게 하느냐”는 학생이 없다. 연세대 의대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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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미한 경쟁 교육에서 벗어나 ‘환자 마음을 잘 헤아리는 의사’를 키우기 위해 국내 최초로 시작한 연세대 의대의 실험이 성공한 셈이다. 미국 상위 25개 의대와 일본 교토대 오사카대 의대 등은 오래전부터 절대평가를 해왔지만 국내 의대들은 “방대한 의학지식을 암기하려면 경쟁교육밖에 없다”는 태도를 고수했다. 다른 의대들도 연세대 의대의 노하우를 배워가고 있어 의대의 성적평가 체제 개선 움직임이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 다수를 실패자로 만드는 경쟁
절대평가 도입 당시 일각에서 “경쟁을 안 하면 실력이 떨어지고 공부를 안 할 것”이라고 했지만 기우였다. 2014년 절대평가를 처음 도입한 본과 1학년 학생 121명이 배운 12과목의 과목별 평균점수를 상대평가 체제(2011∼2013년) 380명의 평균점수와 비교했더니 72.01점에서 77.43점으로 평균 5.42점(7.53%) 높아졌다. 학생들은 성적을 P나 NP로만 받았지만 연세대 의대는 절대평가의 학업성취도 변화를 분석하기 위해 교수가 채점한 원점수를 비교했다.
가장 많이 오른 과목은 ‘내분비계통’으로 12.21점(67.42점→79.63점)이 향상됐다. ‘세포구조와 기능’도 66.90점에서 78.52점으로 11.62점 올랐다. 전우택 의학교육학과장은 “단순히 몇 점 이상이라고 P를 주는 게 아니다. 반드시 알아야 하는 영역을 모르면 P를 받지 못한다”고 말했다.
절대평가를 도입한 건 교육 목표가 바뀐 것을 뜻한다. 학생들이 의사가 되기 위해 꼭 배워야 할 것을 가르치고, 그걸 평가해 알 때까지 공부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평가 방식은 어땠을까. 한 학생이 P를 받을지 재교육 대상자가 될지는 ‘반드시 알아야 할 문항 성취도’에 따라 달라진다. 성취도를 정하는 기준은 과목별 교수의 권한이다. 어떤 과목은 E 문항을 80% 이상 못 맞히면 재교육 대상자가 된다. 양은배 의학교육학과 부교수는 “상대평가 때는 아주 중요한 문제를 한두 개 틀려도 다른 걸 다 맞혔다면 A를 받을 수 있지만 절대평가에서는 P를 못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학기 중 여러 번 시험에서 재교육 대상자가 됐다고 그 과목이 반드시 NP가 되는 건 아니다. 교수는 학생이 충분히 학습하도록 기회를 주고 다시 평가한다.
○ 영재급 인재들, 왜 세계적 교수는 없을까
연세대 의대가 절대평가를 도입한 건 “고교 성적 상위 0.1∼0.5%의 영재급 학생들이 들어와 열심히 공부하는데 왜 점점 좌절감을 느끼고 세계적인 의학교수는 나오지 않을까” 하는 문제의식 때문이었다.
상대평가에서는 학생들을 무조건 줄을 세워 0.1점 차이로라도 등급을 가른다. 1∼10등은 괜찮겠지만 대다수 학생들은 절망한다. 평생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성적에 절망하고 자신감을 잃는다.
실제로 연세대 의대가 학생들을 상담했더니 “친구들이 다 적으로만 보인다” “이렇게 일단 공부만 하면 나중에 내가 원하는 의사가 될 수 있나” 같은 고민을 털어놨다.
하지만 절대평가 도입 뒤 학생들의 학습태도나 교우관계도 점차 향상됐다. “동료를 경쟁자로 여기지 않게 돼 긍정적”, “평가만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오히려 확실히 이해하고 넘어간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지난해 1, 2학년에게 물었더니 ‘절대평가가 긍정적이다’는 답변이 각각 63%였다. 학습동기(공부하려는 경향)는 2014년 1학기 평균 4.21점(7점 만점)에서 2학기에 4.73점으로 높아졌다. 자기효능감(특정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신념)은 2.84점(5점 만점)에서 3.63점으로, 집단응집력(집단이 상호협력하고 단결하는 정도)은 3.66점(5점 만점)에서 3.72점으로 올라갔다. 전 학과장은 “단편적 의학지식은 환자가 더 많이 아는 시대인데, 암기하느라 정말 필요한 연구나 봉사를 하지 못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라고 강조했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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