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부작침] 대통령 선거개입 ③ : "최대한 하지마" 법치 준법의 상징 '대.통.령'

권지윤 기자 2016. 4. 1.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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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개헌 저지선이 무너지면 어떤 일이 생길지..(중략)..압도적으로 지지해 달라“
B: "(선거 개입을)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해라“

2004년 초, 17대 총선을 앞두고 벌어진 일이다. A는 故 노무현 전 대통령, B는 박근혜 대통령(당시 한나라당 의원)이다. 대통령의 발언을 두고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 의원들은 노 전 대통령을 상대로 사과를 요구했고, "선거 개입은 헌법을 유린한 것으로 더 이상 대통령직을 수행해선 안 된다"며 탄핵안을 통과시켰다. 탄핵안에 서명을 한 의원에 박근혜 대통령(당시 의원)을 포함해 ‘친박’ 실세로 꼽히는 이한구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장, 황우여 전 부총리, 홍문종 의원이 포함돼 있다.

그리고 12년 뒤, 입장은 바뀌었다. 선거개입을 이유로 대통령 탄핵까지 했던 쪽은 선거개입의 주체가 됐고, “대통령의 정치행위를 보장하라”며 옹호한 쪽은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선거개입을 중단하라”며 비판하는 야당이 됐다. [대통령의 선거개입1],[대통령의 선거개입2] 기사에서 연속 보도했듯 대통령의 선거개입은 반복돼 왔고, 여야 모두 선거개입의 ‘주체’이자 ‘비판자’였다. 표리부동과 말 바꾸기는 정치의 속성이자 기술이지만, 민주주의 요체인 선거를 오염시키는 선거 개입을 합리화하는 도구로 이용 될 수 없다는 지적이 많다.

● '공무원' 대통령 >>> '정치인' 대통령

[대통령 선거개입1][대통령 선거개입2]에서 보도했듯 21세기 이후 집권한 대통령(노무현· 이명박 · 박근혜) 중 선거 개입에서 자유로운 권력자는 없다. 한 때 선거개입의 비판자도 최고 권력을 쥐면 자리에 부여된 힘을 발휘하고 싶은 욕망에 빠지고, '정치인으로서 본능'을 이겨내지 못하기 때문일까. 일각에선 이를 두고 대통령은 선거로 뽑힌 정치인인데, 당연히 선거에 관여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한다.

정치의 최전선에 있는 대통령, 정치를 통해 국정을 책임지는 대통령에게 직업 공무원과 동일한 정치적 중립 의무를 요구하는 건 도리어 헌법상 부여된 대통령의 역할을 축소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시각이다.

헌법학자인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통령은 정치를 해야만 하는 공무원인데 원칙적으로 선거에 관여하는 걸 금지하는 건 오히려 자유민주주의에 맞지 않다"라고 밝혔다.

김 교수는 이어 "만약 선거에서 정부 심판론이 제기되면 대통령 입장에선 자기 책임을 묻는 선거가 이뤄지는데 어떤 것도 할 수 없게 하는 건 논리적 모순"이라며 "이런 점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은 잘못된 것이고, 박근혜 대통령의 최근 행보도 정치활동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원칙적으로 대통령의 폭넓은 정치 활동을 허용하고, 예외적으로 국가기관을 동원한 여론조작 등 불법적 선거개입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선거에서도 대통령의 정치활동을 보장해야 된다는 견해도 있지만,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사건을 통해 우리 사회는 대통령의 정치중립에 대해 확고한 판단을 내렸다. 헌법재판소는 선거에서의 대통령 위치에 대해 최초의 헌법적 해석을 내렸고, 대통령은 그 어떤 공무원보다 더욱 선거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사실을 명확히 했다. 이는 여야 모두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노 전 대통령 탄핵안 가결 뒤 한나라당 대표에 취임한 박근혜 당시 의원도 “헌재가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거기에 따르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최근 문제가 된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과 행보도 12년 전 본인이 직접 서명한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안과 헌재 결정에 따라 해석할 수 있고,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분석이다.

탄핵 당시 쟁점 중 하나는 <공직선거법 9조> '공무원은 선거에 부당한 영향력 행사와 선거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할 수 없다'는 조항상  '공무원'에 '대통령'도 포함되는지 여부였다. 박근혜 대통령의 선거개입을 비판하는 쪽인 지금의 야당(당시 열린우리당)은 탄핵사건 당시 "공직선거법 9조에 대통령은 포함되지 않는다"며 "정치인으로서 대통령의 활동을 보장하라"는 주장을 펼쳤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지자체 공무원 등 좁은 의미의 공무원은 물론 적극적인 정치활동을 통해 국가에 봉사하는 정치적 공무원인 대통령, 총리, 국무위원 등도 중립의무를 지켜야하는 공무원"이라고 결정했다. 또 "대통령은 영향력을 이용해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 형성 과정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다른 공무원보다 중립성이 특히 요구된다"며 대통령의 선거 중립 의무를 더욱 강조했다. 이런 점에서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선거개입 발언을 공직선거법 위반이라고 헌재는 명시적으로 판단했다.

특히 헌재는 선거로 뽑힌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역할'도 구분했다. 헌재는 "국회의원은 선거운동의 주체이자 주역으로 활동해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게 과제이고, 대통령은 공정 선거를 보장해야 되는 국가기관으로 선거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즉, 대통령은 정치인으로서 역할이 축소되는 한이 있더라도 선거에선 '공무원으로서 의무'가 우선적으로 지켜져야 된다는 해석이다.

● '선거 중립'으로 국민에 대한 봉사 실현 가능

헌법적 판단을 내리는 최고기관인 헌법재판소가 대통령의 중립을 강조하고, 우리 사회 역시 선거개입을 막아야 한다고 판단한 이유는 뭘까. 이 역시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 사건을 통해 알 수 있다. 헌재는 당시 결정문에서 헌법 조문을 이유로 들었다.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 국민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헌법 7조1항이다.

헌재는 "대통령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 선거 영역에선 중립 의무를 지키면서 이를 구체화할 수 있다"고 밝혔다. 유권자의 투표는 국가나 사회로부터 강제나 부당한 압력을 받지 않아야 한다는 '자유선거원칙'을 지키기 위해 대통령의 선거개입을 막아야 한다는 뜻이다. 대통령은 국민들의 자유선거를 위한 봉사자 역할을 해야 하는데, 이는 중립 의무를 통해 실현할 수 있다는 말이다.

또 선거에 필수적인 정당 간 기회균등을 위해서도 대통령의 선거개입을 금지했다. 헌재는 이 역시 '헌법 조항'을 근거로 제시했다. '선거운동은 (중략) 균등한 기회가 보장돼야 한다'는 헌법 116조다. 헌재는 이 조항은 선거에서 '정당의 기회균등 원칙'을 실현하기 위한 우리 사회의 선언이라고 판단했다. 가장 큰 권한을 가진 '국가기관 대통령'이 선거에서 중립을 지키지 않을 경우 특정 정당이나 후보자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한 영향을 미칠 수 있고, 때문에 이를 철저히 차단해야 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헌재는 노 전 대통령의 문제의 발언이 선거의 공정성을 훼손했다며 명백한 법 위반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보면 18대 총선(2008) 직전 이명박 전 대통령의 '군산은 제2의 고향 발언' '강원도 내각 발언', 이재오 의원 지역구 방문 행보,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의 대구 부산 방문, '배신의 정치 심판' '진실한 사람 선택' 발언도 선거의 공정성을 훼손한 것으로 볼 여지가 상당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대통령의 선거개입을 철저히 금지시킨 이유에는 통수권자의 막강한 권력으로 행해진 관권선거의 뼈아픈 역사적 배경도 있다. 공무원 인사의 최종 결정권자인 대통령이 선거에서 특정 정당 또는 후보에 힘을 실어준다면, 다른 국가기관에서도 중립을 지키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다. 단적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진실한 사람을 선택해 달라'는 발언 이후, 새누리당의 공천과 '친박 실세'들의 행동을 봐도 알 수 있다.  

'진박(진실한 친박)’ 감별사를 자처하는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는 새누리당 이상일 후보(경기 용인정) 선거사무소 개소식에서 “경제부총리를 그만뒀지만, 그래도 전관예우라고, 제가 친한 공무원이 수두룩하다”면서 노골적으로 국가기관을 동원한 '예산지원'을 미끼로 지지를 호소하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법으로 일반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을 요구하더라도, 인사권자의 눈치를 보는 게 현실인 공무원 사회에서 법만으론 한계가 있다는 말이다. 대통령의 선거개입이 폭넓게 인정될 경우 기소독점권을 가진 검찰, 정보기관인 국가정보원, 심지어 군(軍)까지 선거 개입 우려가 있어 대통령의 철저한 중립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불과 3년 전 국정원의 대선개입 의혹, 군(軍)사이버사령부의 대선개입 의혹 사건이 있었다"며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의 선거개입이 자유롭게 이뤄질 경우 공정한 선거는 더욱 요원해진다"고 밝혔다. 이런 점에서 하 교수는 "공무원 선거중립의 정점에 대통령이 있고, 선거중립이 지켜져야 국민들은 자유의사에 근거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공천 개입도 명백한 중립위반…"모든 행동 자제해야"

대선에서 당선되면 대통령은 국민이 원하는 정책을 펼치기 위해 국회 내 우군이 필요할 수 있다. 미국과 같이 선거에서도 대통령이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이 '국민주권주의' 실현이라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우리나라의 역사, 정치 현실, 문화에선 철저한 선거 중립이 필요했고, 헌법재판소 역시 이런 공감대 속에서 선거에서의 대통령의 활동 범위를 설명했다.

한 마디로 "최대한 자제해라"는 것이었다.

헌재는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사건에서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대통령의 발언이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더욱 높기 때문에 이러한 시기에는 편파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모든 행동을 최대한으로 자제해야 하는 의무가 대통령에게 있다"고 명시했다. 즉, '시저의 아내는 한 점의 의혹도 받아서는 안 된다'는 말처럼 선거에 임박할수록 오해를 살 수 있는 어떠한 '말과 행동'도 하지 말라는 것이다.

헌재는 이런 기준을 제시하면서 17대 총선(2004.4.15)이 있기 두 달 전인 2월18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청와대 기자회견, 같은 달 24일 방송기자클럽 발언을 선거법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이런 맥락에서 살펴보면 박근혜 대통령의 1월 신년 기자회견 발언과 4.13 총선을 한 달 앞둔 10일 대구 방문과 16일 부산 방문 역시 문제가 될 소지가 다분하다는 지적이다.

판례상 선거운동은 ‘특정 후보’ 또는 ‘특정될 수 있는 후보자’의 당선 또는 낙선을 위한 행위이다. 재경지검의 한 공안검사는 “청와대(박 대통령)가 특정 정당, 후보자를 직접 언급하지 않아 애매한 구석이 있지만, 선거운동 성립 요건인 목적성, 능동성, 계획성 측면에서 봤을 때 과연 창조경제를 위한 행보라는 청와대 해명을 그대로 믿기 어려운 측면이 많다”고 밝혔다.

헌법재판소 연구관 출신 노희범 변호사는 “명시적으로 ‘누구를 뽑아 달라, 야당을 심판해 달라’는 말은 하지 않더라도 어느 쪽으로 유도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면 헌법상 중립 의무 위반이고, 특히 선거에 임박할수록 유권자들이 스스로 적임자를 판단해야 하는데, 대통령이 특별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다면 문제의 소지가 많다”고 지적했다.

특히 대통령의 선거개입은 단순히 소속 정당을 유리하게 하고, 경쟁 정당을 불리하게 하는 것만이 아니다. 선거 중립은 공천 과정에도 적용된다는데 이견이 없다. 최근 '비박계 학살 공천'으로 불리는 새누리당 공천 과정에서의 청와대 개입 의혹도 헌법상 대통령의 중립 의무, 공직선거법 위반 소지가 크다는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사건에서도 이런 점을 분명히 했다.

헌재는 “국가기관(대통령)은 자신을 특정 후보자와 동일시하고 공직에 부여된 영향력과 권위를 사용해 특정 후보자 편에 섬으로서 정치 세력 사이의 자유경쟁관계에 영향력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했다. 공천 개입은 선거에서의 부당한 압력이자 편파적 개입으로, 의회민주주의를 훼손한다는 뜻이다.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통령이 막강한 권한으로 공천에 개입하는 순간 공정한 경쟁과 자유로운 선거는 불가능해진다”며 “이런 식으로 당선된 의원들은 ‘행정부 견제와 감시’라는 의회 역할을 이행할 수 없게 되고, 제왕적 대통령을 만드는 부작용을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의 선거 개입은 불행하지만, 반복된 역사다. 선거 개입을 비판하던 쪽도 대권을 잡으면 달라졌고, 선거 개입을 한 쪽은 대선에서 패배하면 선거 개입을 신랄하게 지적하는 입장으로 표변했다. 대통령의 선거 개입이 반복되는 것도, 재발 방지가 어려운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노희범 변호사는 “대통령의 선거 개입으로 얼룩진 부정선거와 관권선거의 통렬한 반성 차원에서 우리 헌법은 대통령의 중립 의무를 엄격하게 선언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검찰 등 국가기관이 대통령의 중립 의무를 강제할 수 없는 현실적 한계가 있어 국민과 언론의 감시 감독이 선행돼야 하고, 무엇보다 대통령 스스로 헌법상 의무를 준수하겠다는 의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 사건이 우리 사회에 남긴 건, 대통령이 선거 개입을 하더라도 탄핵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게 아니다. 선거 중립은 대통령의 헌법상 임무이고, 반드시 지켜져야한다는 것으로, 헌재는 당시 결정문에서 대통령을 이렇게 표현했다. 

“대통령은 국민 모두에 대한 법치와 준법의 상징적 존재”

권지윤 기자 (legend8169@sbs.co.kr)
박원경 기자 (seagull@sbs.co.kr)
분석: 한창진·안혜민(인턴)
디자인/개발: 임송이

※ 마부작침(磨斧作針) :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뜻으로, 방대한 데이터와 정보 속에서 송곳 같은 팩트를 찾는 저널리즘을 지향합니다.              

▶ [마부작침] 대통령 선거개입 ① : 예외는 없었다
▶ [마부작침] 대통령 선거개입 ② : '노무현-이명박-박근혜' 권력자의 욕망 

권지윤 기자legend8169@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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