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18살 유망주 억울한 대표 탈락, 빙상연맹 망신 위기

권종오 기자 2016. 1. 7.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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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빙상경기연맹이 일관성 없는 행정으로 장래가 촉망되는 스피드스케이팅 유망주를 국가대표에서 탈락시켜 큰 파문이 일고 있습니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습니다.

지난 해 12월22일과 23일 이틀 동안 서울 태릉 국제스케이트장에서는 제70회 종합선수권 대회가 벌어졌습니다. 이 대회는 오는 29일부터 노르웨이 스타방에르에서 열리는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월드컵 5차 대회에 파견할 국가대표 선발전이기도 했습니다.

올해 18살의 고교생 장수지 선수는 합계 178.645점으로 종합 3위에 올랐습니다. 월드컵 5차 대회 여자 장거리 종목 대표로 모두 5명을 선발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장수지는 당연히 태극마크를 달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대한빙상경기연맹은 탈락을 통보했습니다. 장수지 선수와 부모, 그리고 장 선수의 코치에게는 한마디로 청천벽력이었습니다.

2012년 인스브루크 청소년동계올림픽에서 3000m에 참가한 장수지 선수(사진=게티이미지)

빙상연맹이 밝힌 탈락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장수지의 3,000m 기록은 ISU가 정한 기준 기록을 통과했지만 1,500m는 기준 기록에 미달했다는 것입니다. 대한빙상경기연맹이 공식 발표한 대표 선발 규정을 보면 ‘모든 선발은 ISU 기준 기록 통과자에 한함’이라고 돼 있습니다. 하지만 1,500m와 3,000m 2개 종목 모두 기준 기록을 통과해야 국가대표가 될 수 있다는 규정은 명시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정작 국제 룰인 ISU 규정은 대한빙상경기연맹과 다릅니다. 1,500m와 3,000m 가운데 1개 종목만 기준 기록을 통과하면 월드컵 출전에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쉽게 말해 국제 룰과 국내 룰이 다른 것입니다.

이에 대해 대한빙상연맹은 “ISU 룰은 우리도 알고 있지만 국내 선발 규정이 우선이다. 지금까지 2개 종목 모두 기준 기록을 통과한 선수만이 국제 대회에 출전한 게 관례였다. 내년부터 오해를 막기 위해 대표 선발 규정에 ‘반드시 2개 종목 모두 기준 기록을 통과해야 한다’는 내용을 명시하도록 하겠다”고 해명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지나지 않아, 1개 종목만 기준 기록을 통과하고도 국제대회에 출전한 선수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1년 전에 남자 장거리 스피드스케이팅의 A선수가 1개 종목만 기준 기록을 통과했는데도 월드컵 5차대회에 출전한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입니다. A선수는  5,000m에서는 기준 기록을 넘어섰지만 1,500m는 기준 기록에 미달한 상태였던 2015년 1월말, 노르웨이 하마르에서 열린 월드컵 5차 대회에 참가해 1,500m와 5,000m 두 종목에 모두 출전했습니다.

A선수는 SBS와의 통화에서 “5,000m 1개 종목만 기준 기록을 통과한 상태에서 월드컵에 출전했다. 2개 종목에서 모두 기준 기록을 넘어야 월드컵 대회에 나갈 수 있다는 규정은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사실에 대해 대한빙상연맹은 “지난 해와 올해 선발 규정이 달라져 생긴 오해인 것 같다. 지난 해에는 종목별로 잘 하는 선수를 선발해 파견한 데다 1-4차 월드컵에 나간 선수가 그대로 5차 대회에 출전했지만 올해는 5차 대회 국가대표를 분리해 선발하다보니 이런 일이 생겼다.

그리고 이를 언론에 해명하는 과정에서 '관례'라는 표현을 놓고 커뮤니케이션에 문제가 생겼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지난해에는 1개 종목만 기준 기록을 통과해도 국제대회에 출전할 수 있었다. 즉, 지난해와 올해 모두 국가대표 선발 원칙에 따라 대표선수를 뽑은 것이다. 어찌됐든 앞으로 대표 선발 규정에 대한 오해와 착각이 없도록 누구나 알기 쉽게 문구를 바꾸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대한빙상연맹의 해명은 군색하기 짝이 없습니다. 제가 몇 년 동안의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 선발 규정을 모두 읽어봐도 왜 A선수는 월드컵 5차 대회에 출전했지만 똑같은 조건의 장수지 선수는 5차 대회에 나갈 수 없는지가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그 어떤 조항에도 2개 종목 모두 기준 기록을 통과해야 국제 대회에 출전할 수 있다는 규정은 없습니다. 한마디로 스피드스케이팅 선수와 지도자가 읽어봐도 이해할 수 없는 규정, 오해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규정이 대한빙상경기연맹 규정인 것입니다. 

장수지 선수 부모는 “억울하게 탈락했다”며 지난 5일 문화체육관광부에 공식 질의를 해놓은 상태입니다. 문체부가 조사에 나설 예정이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로 볼 때 큰 망신을 면하기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장수지는 2012 유스 올림픽에서 은메달, 올해 주니어월드컵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유망주로 떠오르고 있는 선수입니다. 이런 기대주를 왜 탈락시켰는지에 대해 대한빙상경기연맹은 뼈저린 반성과 함께 설득력 있는 해명을 조속히 내놓아야 합니다

권종오 기자kjo@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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