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정가제 1년.. 누가 혜택 받았나

취재/ 어수웅 기자 입력 2015. 11. 16.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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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값 할인 共滅 막는 대안은 독자 "정가제 혜택 모르겠다"

"도서정가제 이후 매출액이 떨어진 출판사가 71.1%다. 힘들다."(한국출판인회의 설문조사)

"독자에게 돌아온 혜택이 뭔지 잘 모르겠다. 부담만 늘어난 것 아니냐."(월 2회 이상 책을 구입한다는 독자 차상원씨)

"올해 상반기 매출 전년 동기 대비 2.8% 증가한 1733억원, 영업이익은 518.3% 증가한 93억원."(온라인서점 예스 24)

"신간의 정가(定價)는 지난해보다 평균 6.2% 하락. 도서정가제 덕분이다."(문화체육관광부)

문체부는 지난 1년 동안 출판 시장을 조사한 결과를 최근 발표했다. 2014년 11월 21일부터 올해 10월 31일까지 출판사 450곳, 서점·총판 550곳 등 총 1000개사를 설문하고 인터뷰한 결과다. 요약하면 ▲신간 도서 가격 하락 ▲지역 중소 서점 경영 여건 개선 ▲건전한 출판 유통 질서 정립 등이다. 수치로 보면 신간 가격 평균 6.2% 하락(1만9106원에서 1만7916원), 신간 발행 종수 7.4% 감소(5만7644종에서 5만3353종), 구간(舊刊) 7625종 평균 44.6% 정가 인하(재정가) 등이다. 하지만 문체부의 '자찬(自贊)'과 달리 현장, 특히 출판사와 독자의 입장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한국출판인회의(회장 윤철호)의 최근 조사 결과, 114개 출판사 중에서 약 71%인 81개사가 도서정가제 이후 매출액이 하락했다고 응답했다. 응답자 78.6%는 이를 도서정가제 때문으로 보고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그럼에도 응답자의 60.5%가 완전도서정가제가 필요하다고 대답한 것. 출판인회의 박효상 유통위원장은 "출판사들이 매출 하락을 힘들어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가격 경쟁에서 가치 경쟁으로 가야 한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고 했다.

'광폭 할인'으로 인한 공멸(共滅)을 막고, 가격 아닌 가치 경쟁으로 가는 구체적 대안은 어떤 게 있을까. 출판평론가 표정훈 한양대 특임교수는 "지금까지 공공 부문이 독서 진흥 역할을 맡았다면 이제는 출판사가 이 역할을 아우를 필요가 있다"면서 "저자 강연, 낭독회, 문학 기행 등 출판사가 기획하고 서점이 공간을 제공하는 시도를 더욱 확장해야 한다"고 했다.

경남 통영에는 최근 400~500권 들어가면 꽉 차는 작은 서점이 생겼다. 지역 출판사인 '남해의 봄날'이 시작한 동네 서점. 하지만 공연·낭독·저자 강연 등으로 꾸민 지난달의 북 콘서트 '책쫌 읽는 통영'에는 '무려' 100여명의 독자가 모였다고 했다. 남해의 봄날 정은영 대표는 "특화된 독자 서비스가 차별화의 관건"이라며 "타깃 독자의 욕구를 충족시키면 책값 할인 안 해도 독자가 온다"고 했다.

지금 해외 출판 트렌드는

'著者 투어'로 친밀감 쌓아 팬덤 만들기도

도서정가제는 출판의 중심 고민을 '가격'에서 '소통'으로 이동시킨다. 바야흐로 가격 경쟁의 시대가 저물고 서비스 경쟁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는 글로벌 출판 트렌드에도 걸맞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갈 때마다 놀랍고 부러운 게 있다. 도서전 기간 뢰머 광장에서 열리는 문학 축제다. 올해도 어김없이 열여섯 작가가 몰려든 시민들과 만나 작품을 낭송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도서전 기간 내내 독일 출판사들은 도서전 현장에서 독자와 만나는 수많은 모임을 기획한다. 작가와의 대화, 사인회, 공개 대담, 와인 파티 등 출판사들 색깔에 따라 다채롭다. 모임마다 독자를 초대하고, 현장을 인터넷 방송 등으로 내보냄으로써 작품을 홍보하고, 그것이 책의 판매로 자연스레 이어진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아마존의 가격 공세에 밀려서 고민이 많지만, 출판사의 주요 마케팅 활동은 '저자 투어'다. 저자가 전국 서점과 도서관을 순회하면서 독자와 만날 기회를 다양하게 설계하는 일이 여전히 출판사의 임무다. 한국계 미국인 작가 수키 김이 언젠가 이야기한 적이 있다. 투어를 통해 독자 얼굴을 확인하고, 친밀감을 늘려 팬으로 만들어야 다음 책이 나왔을 때 아주 유리하다고.

올해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서는 작가 또는 출판사 브랜드를 이용한 '팬덤 만들기'가 출판마케팅의 핵심 키워드로 떠올랐다. 책에 담긴 정보의 대부분이 온라인에 무료로 존재함에 따라, 책은 단순한 정보재에서 애써 소장하고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싶은 경험재로 변하는 중이다.

이제 독자들은 가격 할인보다 출판사 또는 저자와 책을 매개로 하는 직접적이고 따뜻한 관계를 원한다. 저자와 독자가 이야기하고, 편집자와 독자가 만나는 일은 책 문화를 만드는 뚜렷한 길이다. 참여하고 즐기다 보면 '책의 맛'이 더욱 진해질 것이다. 주말 주변 서점이나 좋아하는 출판사의 행사를 찾아가서 '통(通)'해 봄이 어떨까. 장은수·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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