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탓하는 '헬조선'..부모 탓하는 '흙수저'

노경목/박상용 2015. 10. 4.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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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론 대한민국 미래없다..남탓만 하는 대한민국 "난 잘못 없어..나만 아니면 돼" 메르스 의심에도 여행 가고 "소방헬기 탓 화재 확산" 원망 책임 회피 급급한 사람들 문제해결 못하고 갈등만 키워

[ 노경목/박상용 기자 ]

5명이 숨지고 수백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올해 1월 의정부 아파트 화재 현장. 헬기 2대가 아파트 상공을 선회하며 생존자 구조에 나섰다. 화재로 발생한 검은 연기가 하늘로 솟구쳐 올라 헬기의 시야가 제대로 확보되지 않는 아찔한 상황이었다. 헬기에 탄 소방관들은 이런 위험을 무릅쓰고 옥상으로 대피해 있던 4명을 구조했다.

하지만 이들 소방관은 이후 주민들의 원성에 시달렸다. 주민들은 “헬기가 아파트 상공에서 바람을 일으키는 바람에 화재가 확산됐다”며 김석원 당시 의정부 소방서장의 해명을 요구했다. 김 서장은 “건물 외벽이 가연성 자재라 불길이 번진 것이지 헬기 프로펠러와는 무관하다”며 “고층 건물에 화재가 발생하면 옥상 생존자를 헬기로 대피시키는 건 소방 대응의 기본”이라고 설명했지만, 주민들의 불만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의정부소방서 관계자는 “대원들이 힘들게 출동해 생존자를 구하고도 욕을 먹은 사례”라며 “재난이나 어려움이 닥쳐도 자신의 안위만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고 씁쓸해했다.

메르스 사태와 ‘남탓충’

한국 사회가 직면한 위기의 이면엔 경제 규모나 국제적 지위에 비해 선진화하지 못하고 있는 시민의식이 자리잡고 있다. 그중에서도 문제가 생기면 책임을 남에게 미루는 ‘남 탓 문화’가 심각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최근 인터넷에선 ‘남탓충’이라는 신조어가 유행하고 있다. ‘남 탓’에 ‘벌레 충(蟲)’을 붙인 것으로, 문제만 생기면 남에게 책임을 미루는 이들을 비판하는 단어다. 인터넷 신조어가 나올 만큼 남 탓 문화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는 방증이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지난 6월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때 나타난 일부 시민의 행태가 꼽힌다. 정부 책임을 질책하면서도 스스로는 자가 격리 등 메르스 확산을 막기 위한 행동수칙을 지키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메르스 환자와 접촉하거나 환자가 발생한 병원을 이용해 자가 격리자로 지정됐음에도 지방으로 여행을 가거나 목욕탕 등 공공시설을 이용한 것이다. 당시 네티즌들은 “스스로 정부 지침을 따르지 않으면서도 입만 열면 정부 탓을 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고 지적했다.

대기업을 탓하는 문화도 여전하다. 시민단체와 야당 일각에선 최근의 경기 침체를 대기업들이 사내유보금을 쌓아놓고 풀지 않은 탓으로 돌리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말 30대 그룹의 사내유보금 683조원 중 현금과 단기금융상품 등 현금성 자산은 118조원 정도다. 2012년 비금융 상장사의 총자산 대비 현금성 자산 비중은 9.3%로 그 비중이 14.8%에 이르는 유럽연합(EU) 등에 비하면 낮은 수준이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국정감사에 출석해 “한국 대기업들은 세계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는데 국내 잣대로 평가하면 안 된다. 삼성그룹의 사내유보금은 애플과 비교해 절대 많지 않다”고 말했다.

“모든 것은 국가·부모 탓”

남 탓 문화는 국가와 자신의 처지를 비하하는 방향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최근 유행하는 ‘헬조선’ ‘흙수저’ 등의 단어가 단적인 사례다. 헬조선은 지옥을 뜻하는 ‘헬(hell)’을 ‘조선’에 붙인 단어로 ‘한국이 지옥에 가깝고 전혀 희망이 없는 사회’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흙수저는 부유층 자녀를 뜻하는 ‘은수저’나 ‘금수저’에 대비되는 단어로, 스스로가 가진 것 없는 서민층에서 태어났음을 자조하는 표현이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헬조선에 살고 있으니 노력을 해도 의미가 없다는 식으로 자기 자신을 정당화하고, 모든 것이 결국은 나라 탓이라는 의미”라며 “흙수저도 가난의 책임을 부모에게 돌린다는 점에서 남 탓을 정당화하는 단어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1990년을 전후해 한국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던 ‘내 탓이오’ 운동을 주도했던 천주교 평신도협의회의 최홍균 전 회장은 남 탓 문화의 원인을 권위의 붕괴에서 찾았다.

그는 “민주화 이후 권위 자체가 적대시되고 이념에 따라 시민 사회가 분열하면서 상대방을 탓하는 문화가 기승을 부리게 됐다”며 “스티커 40만장이 소진되는 등 큰 호응을 얻었던 내탓이오 운동도 다른 한쪽에서는 ‘노태우 정부를 도와주는 것’이라는 비판을 받아야 했다”고 말했다.

■ 헬조선

헬(hell·지옥)+조선 '한국이 지옥에 가깝고 전혀 희망이 없는 사회'라는 뜻으로 사용.

■ 흙수저

'가진 것 없는 서민층에서 태어났음'을 자조하는 표현. 은수저·금수저와 대비.

노경목/박상용 기자 autonom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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