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의 호시절, 얼마나 갈까?

변진경 기자 2013. 8. 22.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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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제주 등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지역에 우후죽순 호텔이 문을 열고 있다. 관광객은 느는데 숙박 시설이 부족하다는 이유다. 하지만 외국인 관광객 수 전망이 부풀려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8월1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이 다시 문을 열었다. 1월10일 건물 내부 리모델링 공사를 위해 휴관한 지 7개월 만이다. 객실을 넓히고 야외 수영장에 카바나(오두막 형태의 휴식 공간)를 설치하고 이그제큐티브 라운지(특정 투숙객에게만 개방되는 업무·휴식 공간)를 최고층(23층)에 새로 꾸렸다. 2005년 없앤 이후 (한국 호텔에 왜 한식당이 없느냐는 이유로) 계속 비판받아온 한식당도 ‘라연’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마련했다. ‘글로벌 럭셔리 호텔’이라는 콘셉트 아래 이루어진 이번 리모델링에 들어간 공사비는 무려 835억원이다. 서울 시내 중심부는 요즘 한 건물 건너 호텔 공사 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라호텔처럼 기존 호텔을 개·보수하는 곳도 있고, 새로 호텔 건물을 짓거나 다른 용도로 쓰던 건물을 호텔로 탈바꿈하는 곳도 있다. 서울 삼성동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은 지난 5월부터 로비, 레스토랑과 같은 호텔 내부뿐 아니라 전체 외관까지 바꾸는 리모델링 공사에 들어갔고,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도 본관 리모델링에 이어 조만간 신관 객실 디자인을 바꾸는 대대적 공사를 벌일 예정이다.  

ⓒ시사IN 신선영 서울시 종로구 세종로의 호텔 신축공사 현장(위). 지상 25층·지하 7층 규모의 호텔이 건설될 예정이다.

서울 광화문에는 포시즌호텔, 동대문에는 JW메리어트호텔, 인사동에는 이비스앰배서더호텔 건물이 올라가고 있다. 원래 쇼핑몰이었던 명동 밀리오레, M플라자 건물은 비즈니스호텔 개관을 앞두고 내부를 뜯어고치는 공사가 한창이다. 서울시 자료에 따르면 6월19일 현재 서울시내에서 호텔 건립(신축·전환)이 진행되는 곳은 88곳에 이른다. 사업계획 단계를 밟고 있는 24곳을 포함하면 서울시내 100군데 넘는 곳이 ‘호텔 공사장’이다.  정부와 지자체, 앞장서 호텔 건립 장려 관광객이 많이 찾는 부산과 제주도도 사정이 비슷하다. 부산에서는 지난 2월 파크하얏트호텔이 개관하면서 15년 가까이 변하지 않았던 부산 내 특급 호텔 리스트에 변화가 생겼다. 해운대 관광리조트, 동부산관광단지, 미월드 부지 등에도 조만간 특급 호텔이 들어설 예정이다. 제주도에서는 최근 1년 사이 약 150곳에 1만 개 이상의 호텔 객실 신축 승인이 떨어졌다. 지난해 기준으로 제주 지역 전체 객실 수는 1만4000여 개. 수십 년간 늘려온 호텔 객실과 맞먹는 수의 방이 앞으로 1~2년 사이에 한꺼번에 생기게 되는 셈이다. 최근의 이런 호텔 건축 붐에는 정부와 일부 지방자치단체의 호텔 활성화 정책이 한몫했다. 지난해 7월, 호텔 건립 시 인허가 절차를 간소화하고 용적률을 완화하며 저리로 융자를 지원해주는 등의 ‘관광숙박시설 확충을 위한 특별법’(이하 특별법)이 2015년 말까지 한시법으로 시행됐다. 정부의 특별법과 별개로 서울시는 시유지를 호텔 부지로 제공하고 관광호텔 재산세 감면 기간을 연장하는 등의 방안을 내놓고 ‘관광호텔 건립 지원센터’라는 기구까지 만들어 호텔 건립을 장려했다.  

 

 

 

 

이런 정책들이 나오는 배경은 단순하다. 관광객은 느는데 숙박 시설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지난 6월 서울시가 내놓은 ‘중장기 숙박수요 및 공급분석’ 자료에 따르면 외래 관광객 수 증가로 서울시 숙박 수요는 지난해 4만3830실에서 2017년 7만5874실로 70% 이상 늘어날 전망이다. 그것에 대비해 지금 열심히 지어서 2017년 5만1423실로 지금의 두 배 가까이 늘려놓는다 해도 여전히 2만 실 이상 여행객이 머무를 방이 모자란다는 게 서울시의 분석이다(그래프 참조). 그 전망에 따라 우후죽순 들어서고 있는 호텔 가운데 가장 대세를 이루는 것은 비즈니스호텔이다. 비즈니스호텔은 본래 사업차 방문한 샐러리맨 등을 위해 특급 호텔보다 저렴하지만 편리하고 깨끗한 휴식·업무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으로 등장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도심을 관광하는 중국·일본 여행객을 위한 중급 숙박 시설로 널리 이용된다. 고급 호텔은 가격이 부담스럽고 모텔이나 여관은 시설이 만족스럽지 않은 관광객들이 결국 비즈니스호텔에 더 몰릴 것이라는 판단 아래 많은 사업체가 비즈니스호텔 사업에 뛰어들었는데, 국내 여행사들도 그 가운데 한 부류이다. 하나투어는 지난해 11월 서울 인사동의 업무용 건물을 개조해 비즈니스호텔을 표방하는 특2급 센터마크호텔을 개관했다. 오는 10월 문을 여는 충무로 2호점에 이어 2015년까지 서울 4대문 안에 객실 1000개를 확보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하나투어 홍보팀 조일상 대리는 “서울 시내 중심부에 위치하면서도 가격이 부담스럽지 않고 시설이 깔끔한 호텔이 얼마나 부족한지 여행업을 하면서 절실히 경험해왔기 때문에 비즈니스호텔 사업에 진출했다”라고 말했다. 여행업계 2위 모두투어도 지난해 10월 서울 견지동 천마빌딩을 개조해 아벤트리종로관광호텔을 열었다. 이미 특급 호텔을 소유·운영하고 있는 대기업들도 비즈니스호텔 시장에 뛰어들었다. 신라호텔은 2020년까지 장충동 서울호텔 부지와 역삼동 KT지사 대지 등 서울 시내뿐 아니라 경기도 동탄 신도시, 울산시, 제주도 등에 ‘신라 스테이’라는 브랜드로 비즈니스호텔 30여 개를 만들 계획을 세우고 일부 실행에 들어갔다. 신라호텔 커뮤니케이션팀 이철우 부장은 “신라 스테이는 기존 특급 호텔을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인 객실·연회·식음료업 가운데 연회와 식음료업 두 가지를 과감히 빼는 대신 숙박이라는 실용성을 강화한 비즈니스호텔로, 기존 신라호텔과 그 기능과 목적이 다르다”라고 말했다. 롯데호텔도 내년까지 서울 구로·명동·장교와 제주, 대전, 울산 등에 서울 마포와 김포공항점을 이은 비즈니스급 호텔을 지을 예정이다. GS그룹(인터컨티넨탈호텔), SK네트웍스(워커힐호텔), 신세계(조선호텔), 한화그룹(프라자호텔)도 서울 시내에 제각각 비즈니스호텔 터를 마련하고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장밋빛 미래를 보고 뛰어든 호텔 사업자들의 기대와는 달리, 몇 년 후 우리나라 호텔업계에 ‘공실 대란’이 벌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앞으로 계속 호텔 방이 모자랄 것이라는 서울시 전망치는 역사상 가장 높았던 지난 5년간 방한 외래객 평균 증가율인 11.6%를 적용한 것인데, 이런 증가율이 그대로 이어지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시사IN 신선영 국내 여행사도 호텔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지난해 서울 인사동에 세워진 센터마크호텔(위)은 하나투어가 운영한다.

 

서울시 한 특2급 호텔의 관계자는 “지금도 17만원짜리 방을 12만원까지 깎아가면서 중국인 관광객들을 받지 않으면 채우기 힘들 정도로 방이 남아돈다. 지금 많이들 짓는 비즈니스호텔은 대부분 일본인 관광객을 타깃으로 계획된 것으로, 숙박비 여력이 부족한 중국인 관광객들과는 가격대가 맞지 않아 방값을 대폭 깎지 않는 한 공실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라고 말했다. 지금 벌어지는 호텔 건설 붐은 엔화 가치 하락과 독도 문제로 인한 한·일 관계 악화 등으로 일본인 관광객 수가 급감하기 시작한 지난해 하반기 이전의 상황만 반영한 결과라는 것이다. 실제 방한 일본인 관광객 수는 지난해 9월 이후 매달 전년 대비 20~30% 하락세를 걷고 있다. 이를 반영한 비관적인 전망도 나온다. 신한은행은 외국인 관광객 수가 2016년에는 지금보다 12% 느는 데 그쳐 그해 서울시 호텔 객실이 절반 가까이 빌 수도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놓았다. 보고서는 “비즈니스호텔로 인한 공급 과잉으로 그 이하 등급인 2~3급 호텔, 모텔 등이 줄도산할 가능성도 있다”라고 밝혔다. 한국 창조산업연구소 고정민 소장(홍익대 교수)은 “엔저 때문에 일본인 관광객이 급감하는 최근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관광 산업에서는 환율 등의 외부 조건으로 인한 불확실성이 매우 크다. 이런 환경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객실 운영, 고객 유치 시스템을 갖추지 않은 호텔들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가 녹록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호텔이 수익형 부동산 투자 상품으로 변질 양도 양이지만 질도 문제이다. 공간 디자이너로 활동하는 김경수 미음갤러리 대표는 “호텔이 대중화되고 수가 많아지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그 공간 양식이 관광객들 잠만 재우고 내보내는 호텔로 획일화되는 지금의 추세는 다양한 공간과 문화를 생산해내는 호텔 본연의 기능을 무너뜨릴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 김 대표는 이런 문제가 최근 많은 이들이 호텔을 문화나 사교 공간이 아니라 오피스텔, 아파트에 이은 수익형 부동산 투자 상품으로 바라보는 것과도 겹친다고 말했다. 실제 현재 많은 호텔 건물이 부동산 경기 침체 이후 새 투자처를 찾아 헤매던 금융권의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 자금으로 지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 처음 서구식 호텔이 들어선 지 100년이 훌쩍 지났다. 이제 국내 호텔업체들은 해외로도 진출하고 있다(“호텔은 휴대전화와 다르다” 기사 참조).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도 힐튼, 쉐라톤 같은 호텔 전문 브랜드가 탄생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국내 호텔업계 1, 2위를 차지하는 호텔신라와 호텔롯데 모두 호텔 영업으로 발생하는 매출액이 전체의 20%에도 못 미친다. 나머지는 대부분 면세 유통 사업에서 벌어들였다. 서울 시내 폭우가 내리던 지난 8월6일 서울 신라호텔 최고층 천장에서는 비가 샜다. 835억원을 들여 리모델링한 후 재개관한 지 6일째 되는 날이었다. 팽창하는 호텔 시장 규모에도 불구하고, 아직 한국의 ‘호텔 르네상스’를 확신하기 어려운 이유이다.

 

변진경 기자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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