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난 유럽 '傳家寶刀' 세금으로 돌파..녹슨 칼로 될까

유진우 기자 2013. 2. 21.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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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거래세, 비만세, 부자세….

재정난에 시달리는 유럽연합(EU)의 각국들이 부족한 곳간을 채우기 위해 '전가보도(傳家寶刀)'인 세금인상의 칼을 뽑아들고 있다. 각 회원국들이 저마다 각종 세금 규제안을 새로 만드는 데 힘을 쏟고 있는 것. 하지만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실효는 크지 않을 거라는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세수 확대를 통한 재정 확보라는 긍정적인 효과 외에도 기업 활동이 위축되거나 자금 유입이 오히려 줄어드는 부작용도 우려된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주요 국가의 세금 논란을 짚어본다.

◆ 토빈세, 과거 미국의 이자평형세 운명 뒤따를 수도

EU 의회와 집행위원회(EC)는 역내 다국적 은행들에 전 세계 지점들의 수익과 납세 정보를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하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19일(현지시각) 보도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대형은행들의 안정성과 투명성을 강화하겠다는 것. 그러나 매출 규모에 맞춰 세금을 철저하게 거둬 들이는 효과도 있다고 금융 전문가들은 말했다. 이 법이 실제로 발효되면 영국의 대형은행 바클레이즈는 영국뿐만 아니라 짐바브웨 등 진출한 모든 지역에서 거둬들인 순익과 부과된 세금을 낱낱이 공개해야 한다. 회계상 절세나 감세를 할만한 여지가 훨씬 줄어드는 셈이다.

또 은행 사업 내역 공개가 현실화되면 역내 은행들은 임금이나 보너스 규모에 대한 대중의 압력에 그대로 노출된다고 FT는 전했다. 정보가 공개되기 전인 지금도 이런 문제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은행들에는 더 큰 부담이 되는 셈이다.

EU는 지난 14일에는 이르면 내년 1월부터 역내 11개 회원국에서 예전보다 강화된 금융거래세인 토빈세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이번에 발표된 토빈세 도입안에 따르면 토빈세를 시행하는 11개국 금융기관과 거래하는 모든 국가의 금융기관이 과세대상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를 두고 "유럽이 전 세계에 세금을 매겼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성과에 대해서는 벌써부터 물음표가 따라붙는다. 금융업계에 대한 이런 적극적인 과세는 이미 과거에 여러 차례 실패한 바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과거에 이자 차익을 노린 자본이 유럽으로 유출되자 이자평형세(interest equalization tax)를 부과해 자본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았다. 미국인이 외국자산에 투자해 높은 수익을 받더라도, 여기에 세금을 매겨 국내와 동일한 수익이 나오도록 한 것. 그러나 이 제도는 결국 미국인들의 해외자산에 대한 관심만 떨어뜨렸다. 블룸버그는 "유럽이 금융거래세를 부과할 경우, 이와 비슷하게 자본이 이탈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EU 집행위는 현재 토빈세가 발효되면 증권 거래의 경우 최대 20%, 파생상품 거래의 경우 90% 정도까지 줄어들 수 있다고 추정하고 있다. 이로 인한 GDP 손실은 2050년까지 전체의 0.28% 수준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거래가 줄어들면 영국 런던이나 독일 프랑크푸르트가 누리던 금융허브로서의 이점 역시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 영국 비만세, 프랑스 부유세 운명도 불투명

영국의 비만세와 프랑스의 부자 증세안도 이미 실패한 정책을 다시 꺼낸 것에 불과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영국에서는 작년 여름부터 햄버거 등 정크푸드나 탄산음료 같은 비만을 유발하는 음식에 적어도 20% 이상의 추가 세금을 물려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영국 왕립의사협회는 "국민의 건강도 챙기고 세수도 늘어나는 일석이조의 정책"이라는 평가했다. '유럽의 지방 덩어리'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영국은 현재 성인 넷 중 한 명이 비만이다.

그러나 비만세는 앞서 덴마크가 이미 실시했다가 실패한 정책이다. 덴마크 정부는 2011년 10월부터 지방 함량이 2.3%를 초과하는 고지방 식품에 대해 포화지방 1킬로그램당 16덴마크크로네(약 3400원)의 비만세를 세계 최초로 부과했다. 하지만 비만세 도입이 남긴 것은 식품가게들의 파업 뿐이었다. 정책이 실시된 이후 버터 가격은 14.1%, 올리브유는 7.1% 인상됐고 우유와 고기, 피자 등 지방이 많은 식품의 가격은 줄줄이 올랐다. 식습관을 바꾸지 못한 덴마크 국민은 저렴한 가격에 지방이 들어간 음식을 사기 위해 독일로 원정 장보기를 가기도 했다. 덴마크 식품가게들은 문을 닫고, 실업자가 늘어났다.

프랑스의 부자 증세안도 마찬가지. 작년 프랑스의 새 대통령으로 선출된 프랑수아 올랑드는 연소득 100만유로 이상의 고소득자들에 대한 세율을 75%로 높이겠다고 약속했다. 아울러 대기업들에 대한 감세 혜택을 줄이는 한편, 금융소득세와 상속세 등의 세율을 인상해 부유층의 불로소득과 금융소득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기로 했다. 그러나 프랑스를 제외한 유럽 대부분의 국가는 이런 징벌적 부유세를 2008년 금융위기 이전에 이미 다 폐지했다.

스웨덴은 2008년 60년 만에 이 제도를 없앴다. 전 국민의 2.5%에 해당하는 22만명 정도에게 부과되는 이 제도로 인해 해외로 유출되는 자금이 더 많다는 판단에서다. 복지강국으로 이름난 스웨덴은 이 제도를 실시하는 60년 동안 부유세를 피해 해외로 빠져나가거나, 아예 이사를 하는 부자들 문제로 골치를 앓아 왔다. 룩셈부르크도 올 들어 부유세가 가져오는 소득 재분배 효과보다 세금을 피해 자본이 외국으로 유출되는 부작용이 더 심각하다는 이유로 이 제도를 포기했다. 실제로 글로벌 가구업체인 이케아의 창업자이자 세계 최고 부호로 꼽히는 잉그라브 캄프라트는 부유세를 피하기 위해 해외에 재단을 설립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스웨덴 이외에도 1997년에는 아일랜드와 독일이 부유세를 폐지했고, 2000년 이후에는 네덜란드와 이탈리아·오스트리아·덴마크·스페인이 부유세를 없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문가를 인용해 "프랑스가 부유세를 다시 도입하려면, 과세 범위나 이전 사례에서 나타난 부작용을 극복할만한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며 "세금이 모자라다고 사라진 정책을 그대로 다시 꺼내놓은 프랑스 정부가 부호들로부터 강력한 조세저항을 겪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라고 비판했다.

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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