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우치의 서울 맛집 이야기_ 불광동 삼오옛날순대국

에쎈

모 잡지사에서 근무하던 시절 나는 '전설의 순댓국집'이라는 제목을 걸고 순댓국집 특집 기사를 기획한 적이 있었다. 말이 좋아 기획이지 사실은 순댓국 좋아하는 편집장의 등쌀에 떠밀려 진행된 기획으로, 편집장은 여성 기자에게 배당하기는 미안했던지 '뭐든지 잘 먹는 나'에게 배당을 했다. 그 억지스러움에 기가 막혔지만 어쩌겠는가? 하늘 같은 편집장의 명령이거늘. 그 당시만 해도 나는 순댓국의 진정한 맛을 모르고 있었을 뿐더러 그리 좋아하지도 않았다. 심지어 한여름이었다.

'오천원짜리 순댓국에 무슨 얼어 죽을 전설? 한여름에 순댓국이라니, 한여름에!' 하지만 결국 툴툴거리며 소문난 순댓국집을 찾아서 서울 방방곡곡을 뒤져야 했다. 어찌나 많은 순댓국집을 찾아다니며 순댓국을 꾸역꾸역 먹었던지 흐르는 땀에선 순댓국 냄새가 나는 듯했고, 급기야 여자 친구는 내게서 순대 냄새가 난다며 접촉 금지 명령을 내리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나는 머리가 어질어질해질 정도로 순댓국을 먹었다. 그래도 '전국'이 아닌 '서울'의 순댓국집만 방문하는 것에 감사하며 먹고 또 먹었다. 왕십리, 여의도, 서대문, 불광동, 신림동, 강남 뱅뱅사거리, 양재역, 영등포, 을지로, 동대문 등등, 나는 대동여지도의 '김정호'로 빙의해 서울 곳곳을 다니며 순댓국집을 찾아야 했다. 그놈의 순댓국집은 또 왜 그렇게 꼭꼭 숨어 있는지.

당시에는 맛집 블로거도 없을 때여서 모든 정보는 선배들의 입소문에 의지해야 했다. 선배들의 입맛은 정말이지 제각각이었고, '과장'을 넘어서 '뻥'의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무모한 방법이었다. '순댓국과 무식한 에디터' 무슨 삼류 독립 영화 제목 같다. 어쨌든 나는 그렇게 고생 끝에 선정한 '전설의 순댓국집 10' 특집 기사를 가까스로 완성하여 편집장께 봉헌하였고 편집장은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단 한 번의 수정도 없이 그 기사를 가장 좋은 위치에 게재했다. 물론 커버에 가장 큰 크기로 제목이 '떠억' 하고 게재됨은 말할 것도 없고. 이 주일 뒤, 편집장이 정신없이 허둥대는 나를 불러 세우더니 "전 선수(당시 편집장이 나를 부를 때 쓰던 애칭), 불광동이 제일 맛있더라."라며 찡끗 윙크를 하고는 사라졌다.

맙소사,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편집장은 기사에 나온 순댓국집을 모조리 방문했던 것이다. 나는 그 후 '발로 뛰는 기획기사 전담 기자'로 포지셔닝 되어 '마지막 포장마차' '재래시장 새벽 맛집'같이 제목만 봐도 무조건 발로 뛰어야 완성이 가능한 종류의 기사만을 만들며 업계에 소문난 '발기자'가 되었다. 사족이 무지 길었다. 세월이 흐르면 입맛도 변한다는 어른들의 말이 사실인지, 지금 나는 순댓국을 무척 좋아하게 되었다. 이번에 소개하는 순댓국집은 그 옛날 편집장이 나에게 윙크를 날리며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웠던 '불광동', 바로 그 불광동에 위치한 순댓국집이다. 이 전에 소개했던 식당들처럼 주인아주머니와 끈끈한 정은 없지만, 그 맛만큼은 미각의 기억 속 뿌리 깊이 남아 있다. 몇 년 만에 찾아간 이 집은 변한 것이 없었다.

식당의 한쪽에서 머릿고기와 순대를 잔뜩 쌓아놓고 쉴 새 없이 손질하는 늙은 주인아주머니의 모습도 그대로고, 왁자지껄 순댓국을 먹고 있는 손님들의 모습도 변한 것이 없어 보였다. 나는 예전, 푸짐한 머릿고기에 더 높은 점수를 쳐줬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주머니, 저는 머릿고기만 넣어주세요!" 잠시 후, 순댓국에 머릿고기가 수북이 쌓여 나왔다. 정말이지 이 집의 순댓국은 '양과 맛' 두 가지 방면에서 모두 최고 등급이다. 진득하게 고아낸 육수는 입안에서 끈적끈적하게 맴돌다 목으로 넘기는 즉시 '쑤욱' 하고 식도에서 흡수된다. 실제로 식도에서 흡수가 되겠느냐마는 느낌이 딱 그 정도다.

손질을 잘해 고기 누린내가 없고 쫄깃하게 삶아낸 볼, 코, 귀 등 돼지머리의 각종 부위가 균형감 있게 뚝배기를 채우고 있다. 이런 육수와 부속물은 소주 한 잔을 절로 부른다. 내가 '전설의 순댓국집'을 취재하면서 알게 된 맛있는 순댓국집의 기준은 딱 세 가지다. 가마솥에는 항상 육수가 펄펄 끓고 있고, 가게에는 구수한 냄새가 은은하게 배어 있으며, 주인은 끊임없이 머릿고기를 손질하고 있는 식당이다. 육수는 더욱 진득해지고 육수 안에 있는 부속물은 더욱 수북해졌다. 역시 지난날, 순댓국 좋아하던 편집장이 최고 중에 최고로 꼽을 만하다.

◆ info_ 메뉴:순댓국·순대 각 7천원, 술국 9천원, 수육 1만원 / 영업시간:17:30~23:00 / 주소:서울 은평구 대조동 9-17호 / 문의:02-387-2605

※ 음식칼럼니스트, 에디터, 신문기자, 방송작가, 여행기자, 영상 디렉터, 프로젝트 디렉터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해온 콘텐츠 제작 전문가다. 클럽컬처매거진 < bling > , 패션 매거진 < maps > 의 편집장을 거쳐 현재 크리에이터스 매거진 < eloquence > 의 편집장을 맡고 있다. 다양한 장르의 콘텐츠 제작 경험을 바탕으로 < 호화대반점 > < 포장마차프로젝트 > 같은 새로운 형태의 음식 프로젝트를 기획, 진행하고 있다.

 

 

글:전우치 | 포토그래퍼:강태희 | 에디터:이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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