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ld&New] 잠실종합운동장

2012. 3. 1. 0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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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 때 한강에 뜨는 섬 '부리도' 잠실 개발로 사라져

강남구 삼성동에서 탄천 다리를 건너다 보면 시원하게 뻗은 도로 왼편으로 올림픽 주경기장이 보인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88년 여름올림픽이 열렸던 그곳이다. 20여 년이 훌쩍 지났지만 요즘도 주경기장을 볼 때마다 당시의 함성이 울려 퍼지는 듯하다.

부리도는 잠실·신천동의 종합운동장과 아시아선수촌아파트, 정신여고 일대를 포함한다. [중앙포토]

 길 건너엔 아시안게임을 치르면서 선수들의 숙소로 사용됐던 아시아선수촌아파트가 있다. 도심에선 보기 드문 넓은 공원과 함께. 그리고, 아파트 입구엔 그 무게만도 어마어마해 보이는 기념비가 하나 있다. 거대한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기념비엔 '浮里島(부리도)'라고 새겨져 있다. 한자 아래엔 '부렴마을'이라고 적힌 문구도 눈에 띈다. 부리섬의 부렴마을은 현재 송파구 잠실7동 우성아파트와 아시아선수촌아파트·정신여고 일대를 포함하고 있다. 63년 1월 1일 서울시 행정구역으로 편입됐다. 이전까지는 경기도 광주군 언주면 삼성리가 이곳의 주소였다. 부리도에 쓰이는 '도(島)'자를 보는 순간 누구나 한 번쯤 가질 만한 의문이 있다. '도심 한복판에 섬?' 그렇다. 이곳은 본래 섬이었다. 뽕나무 밭이 푸른 바다가 된다는 뜻의 한자성어 '상전벽해(桑田碧海)'가 그대로 실현된 곳이다. 예전 푸른 바다였던 곳이 콘크리트 아파트 숲으로 변해 있는 것이다.

 부리도란 지명은 '남한산성에서 잠실벌을 내려다보면 홍수나 장마 때 한강물이 불어난 모습이 물 위에 떠 있는 마을 같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당시에는 장마로 인해 송파강과 신천강이 범람하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잠실은 본래 살곳이벌인 자양동과 이어져 있던 반도 모양의 지형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다 조선 중종 15년인 1520년 대홍수로 광진교 아래에서 뚝섬 방향으로 샛강이 생기면서 잠실 일대가 섬으로 바뀌었다. 한강이 송파 지역에 접어들면서 신천강(새내)과 송파강(남쪽)으로 갈라져 큰 섬인 잠실섬과 그 서남쪽에 작은 부리섬이 만들어진 것이다. 부렴마을이 있던 부리섬은 비가 내리지 않으면 백사장으로 연결됐다. 또 잠실 왼편에는 한강 흐름의 변화에 따라 생겼다가 사라짐을 반복하는 '무동(舞童)'이라는 또 다른 작은 섬이 있었다. 오늘날 신천동·잠실동과 종합운동장 일대는 사실 한강에 떠 있는 섬이었다.

부리도 전경을 담은 화가 김영철의 작품. [송파문화원 제공]

 부리도는 강이 흐르면서 흙을 실어 날랐다는 의미로 '흙을 부린다' 해서 그 이름이 지어졌다고도 하며, 홍수 때마다 영양분이 많은 흙이 옮겨져 내려온 것을 두고 말하기도 했다. 그래서 부리도 땅은 거름 한 번 준 것보다 더 비옥해 유독 뽕나무가 잘 자랐다고 한다. 잠실·새내·부리도 모두 양잠업을 했지만, 뽕나무는 부리도에 가장 많았던 것도 그 이유에서다. 보호수로 지정될 만큼 오랜 역사를 지닌 뽕나무도 부리도에 있었다. 위치는 현재 잠실종합운동장 야구장 한 가운데쯤이다. 높이 약 15m, 둘레가 약 5m로 아랫부분은 썩어서 큰 구멍이 있는 나무였다.

 잠실·부리섬이 육지로 된 건 한강 공유수면 매립공사 때문이었다. 71년 남쪽으로 굽어 돌던 송파강을 메워 잠실섬을 육지로 만들었다. 잠실 북쪽 지역을 물속으로 가라앉혀 신천강의 너비를 넓혀 지금의 지형을 만들었다. 주변 터와 합친 1124만㎡(약 340만평)에 잠실아파트단지와 잠실종합운동장을 만드는 잠실지구 종합개발계획사업이 추진됐다. 이 때문에 오늘날 한강의 옛 물줄기 흐름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잠실지구 종합개발계획사업으로 섬은 지도상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이곳에서 채소를 가꾸고 뽕나무와 누에치기를 생업으로 삼던 당시 50여 가구의 부렴마을 원주민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부렴마을의 주된 소득원이었던 뽕나무도 매립공사 때 모두 사라졌다. 그러나 토착민을 중심으로 부리도 마을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은 옛 마을 이름을 되살리고 보존하기 위해 93년 9월 30일 아시아공원 내에 기념비를 세웠다. 그리고 매년 음력 10월 초에 기념비 앞에서 고사를 지낸다. '상신제(桑神祭)'라 불리는 의식이다. 부렴마을 사람들이 오래된 뽕나무에 고사를 지내며 마을의 평안을 빌던 풍습을 지켜나가고 있는 것이다.

글=정애숙(문화해설사)

정애숙(65·송파구문화재해설사회 회장)씨는 2002년부터 사단법인 한국의재발견에서 궁궐·조선왕릉을 안내 및 해설하는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2010년 송파구문화재해설사회 회장을 맡았다. 4월 문을 여는 한성백제박물관에서 전시 해설사 겸 고대 역사·문화유적 탐방 강사로 활동할 예정이다.

▶기자 블로그 http://blog.joinsmsn.com/center/v2010/power_reporter.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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