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돈교수 「고구려사 연구」 출간

1999. 9. 6.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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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김태식기자 = 한국고대사 전공인 노태돈(50) 교수가 계명대 사학과를 거쳐 모교인 서울대 국사학과로 자리를 옮긴 것은 1981년이었다.

이후 그는 20년 가까이 서울대에서 박사만 수십명을 배출했다. `노태돈 사단'이라 부를 만한 이들은 현재 대학교수나 각 연구소에서 활동하며 한국 고대사학계의 중추로 성장하고 있다.

수많은 박사를 길러냈지만 얼마전까지 정작 그 자신은 박사가 아닌 석사였다.

최근에 단행본으로 나온 「고구려사 연구」(사계절)는 노태돈 `교수'에게 `박사'라는 공식직함을 더해준 지난해 서울대 국사학과 박사학위 심사통과 논문이다.

노 교수 박사학위 논문심사는 최근 이화여대 석좌교수가 된 한국고대사학의 대부인 이기백(75) 서강대 명예교수와 서울대 동료교수이자 학과 선배들인 한영우,최승희, 이태진, 최병헌 교수가 했다.

고구려사 연구를 주제로 삼은 이번 책은 적지 않은 논문을 발표한 노교수에게는 본격 학술 단행본으로는 사실상 첫 작품이다.

「역주 한국고대금석문」이나 「시민을 위한 한국사」, 「한국사를 통해본 우리와 세계에 대한 인식」 같은 단행본이 있기는 하나 공동작품이거나 본격 학술연구서라 부르기는 어렵다.

어떻든 이 책은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역사학 입문 이래로 지난 이십수년간 고구려사에 대해 공부한 바를 대부분 담은" 연구 결과물이다.

이 책은 700년 고구려 역사를 ▲초기:BC 1∼AD 3세기(추모왕∼봉상왕) ▲중기:4∼6세기 중반(미천왕∼안원왕) ▲후기:6세기 중반∼668년(양원왕∼보장왕) 3시기로 나누어 시대별 특징을 고찰하고 있다.

노 교수는 이런 시대구분의 중요한 근거로 그 자신이 지난 75년 석사논문을 통해 제기한 뒤 현재 한국 고대사학계 논쟁이 가장 첨예한 이른바 `부체제설'과 쓰다 소우키치(津田左右吉)를 비롯한 20세기 초반 일본학자들과 이병도로 대표되는 실증사학의 트레이드마크격인 삼국사기 초기기록 재검토를 다시 동원하고 있다.

고구려, 백제, 신라 모두에 통용된다고 주장하는 노 교수의 부체제설이란 간단히 말해 고구려의 경우 적어도 3세기까지는 계루부니 절노부니 하는 이른바 5부 연합정권이었으며 따라서 이 체제 아래서 각 부는 상당한 자치권을 누렸으며 왕 또한 나라 전체가 아닌, 유력한 특정부의 대표에 지나지 않았다고 본다.

그런데 이런 부체제설은 삼국사기 초기기록을 그대로 인정하면 성립할 수 없다.

왜냐하면 삼국사기를 따르면 고구려는 초기에도 부체제가 아니라 왕이 권력을 장악한 중앙집권국가였다.

비단 노 교수 뿐만 아니라 부체제설 지지론자들이 「삼국사기」 <고구려>,<백제>,<신라본기>의 초기기록 비판에 그토록이나 매달리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어떻든 노 교수는 고구려가 3세기까지 이런 부체제를 유지하다 왕권이 강화되면서 강력한 중앙집권국가, 그의 표현을 빌리면 영역국가체제로 발전해 갔으며 그러다가 6세기 중반 이후 멸망때까지는 연개소문 같은 귀족세력이 정권을 장악함에 따라 왕권은 미약해졌다고 보고 있다.(사진있음)

taeshik@yonhap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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