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특신◆ 장벽공판 첫판결 내려져
(베를린=연합(聯合)) 洪成杓특파원= 지난 수개월간 논란속에 진행돼 온 소위 "장벽공판"의 첫 판결이 내려졌다. 베를린 지방법원이 20일 살인혐의로 기소된 구동독 국경수비대원 잉고 하인리히(27)에 대해 징역 3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한 것이다.
하인리히는 지난 89년 2월 5일 베를린장벽을 넘던 동독 시민 크리스 구에프로이(20)에 총격을 가해 숨지게 한 장본인. 동일 사건으로 하인리히와 함께 법정에 섰던 다른 3명의 동료대원 중 안드레아스 퀸파스트(27)는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으며 미케 슈미트(26)와 페티 슈메트(27)등 나머지 2명은 무죄로 풀려났다.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기 불과 7개월을 앞두고 친구 한명과 함께 탈출을 시도했던 구에프로이는 지난 61년 이후 이곳에서 숨진 90여명 중 마지막 희생자로, 이 사건은 지난해 9월 첫 공판이 개시되기 이전부터 군인으로서 상부의 발포명령을 이행한 것에 개인적 책임을 추궁할 수 있는지를 둘러싼 법적용상의 논란을 일으켰었다.
변호인 측은 수비대원들의 발포가 당시 동독법에 따라 적법한 것이었으며 구동독 법에 의해 죄가 되지 않던 것을 지금에 와서 처벌할 수 없다고 주장, 재판자체의 무리함을 지적했었다. 변호인들은 또 이들이 독재정권의 명령을 어쩔 수 없이 따른 "꼭둑각시"에 불과했다며 이들에 대한 무죄를 호소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베를린법원은 수비대원들의 발포는 불법행위이며 명령에 의한 것이라도 자신의 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판정을 내놓아 재판의 길을 열었다. 발포후에는 항상 모든 흔적을 제거하기 위한 조치가 뒤따랐고 사격 당사자는 즉시 다른 곳으로 이동배치되는 등 발포명령 자체가 불법임을 수비대원들도 알수 있었다는 것이 법원측의 해석이었다.
4개월이 넘게 진행된 공판과정에서는 따라서 발포에 대한 당사자들의 블법성 인식여부와 사격 당시 살해의도의 유무, 그리고 수비대원들이 명령에 따르지 않을 수 있었는지에 공방이 집중됐다.
변호인들은 탈출을 시도하는 사람에게는 무차별 사격을 가하라는 명령이 수비대원들에게 내려져 있었음을 강조했다. 또 탈출을 제지할 경우 1백50마르크의 보너스지급 등 각종 포상이 내려졌고 실패하면 상당한 처벌이 뒤따랐음을 상기시켰다. 피고들 자신도 어쩔 수 없이 명령을 수행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생자를 죽게할 생각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반면 통일 이전 국경수비대에서 탈출한 병사들의 증언도 이뤄졌다. 60년대에 동독인의 탈출을 돕다 2년여의 옥고를 치룬 수비대원의 사례도 제시되는 등 피고들에 대한 법정심문은 이들에게도 선택의 여지가 있었음을 신랄하게 추궁했다. 또한 재판과정에서 구에프로이는 37미터 밖에서 하인리히가 쏜 직격탄이 심장을 관통, 숨진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사체를 확인한 의사들은 그것이 의도적인 저격이었다고 증언했으며 구에프로이와 함께 탈출을 시도하다 부상당한 친구 크리스티안 가우디안(20)은 그들이 세차례에 걸쳐 총알이 날아오는 가운데 장벽을 타 넘으려 했으며 탈출을 포기하고 동작을 멈춘 후에 구에프로이를 죽게한 치명적인 총탄은 날아왔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재판장 데오도르 자이델판사는 판결에서 구에프로이를 죽게한 사격은 마치 "처형"과도 같은 것으로 처벌이 마땅하다고, 탈출자에 대한 사격은 인간권리의 가장 기본적인 영역을 침해한 것으로 수비대원들은 발포명령을 거부했어야 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이같은 판결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에 대한 논란은 법정 안팎에서 계속될 전망이다. 하인리히의 변호사도 이미 항소의사를 밝혔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들 병사들이 구 동독체제에 대한 서독의 분노표시에 이용된 꼴이라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사격명령을 내린 사람은 간데 없고 방아쇠를 당긴 사람만 법정에 섰다는 언론의 문제제기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태다.
정작 판결을 내린 자이델판사도 하인리히등이 "책임져야할 사람들의 긴 연결고리중 마지막 부분"에 지나지 않음을 인정하고 있다.
동.서독의 분단시절 국경을 넘다 죽임을 당한 희생자는 모두 2백명에 이른다. 국경은 사라지고 베를린장벽도 흔적을 찾기 힘들게 됐지만 앞으로 수년간 발포명령과 관련된 재판이 1천건은 잇따르게 될 것으로 당국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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